글감이 부족한 탓을 하고 글쓰기를 미룬다. 하지만 글감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마음이 긴장했던 탓이었다. 오늘 그린 그림에서 내 마음을 보았다.
그림에서는 선이 부드럽지 못하고 윤곽이 날카롭게 처리되었다. 내 마음이 완벽을 원했나 보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붓질이 보인다. 긴장하면서 붓질을 하게 되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그다지 통쾌하지 못한 작업이 되곤 한다.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기에 전경과 배경에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고 싶지 않은 경직된 붓 터치가 되고 말았다.
완벽함을 추구하면 할수록 그림은 경직되어간다. 대충하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잘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 그림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려니 한다. 너무 세부적인 묘사에 집중하면 전체의 균형이 깨지기 쉽고, 완벽을 원하면 경직된 글이 나오는 것이지 싶다.
글감도 있어야 하고, 글의 메시지도 좋아야 하고 사례나 마무리도 깔끔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글쓰기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글쓰기도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림처럼 일단 해보고 한발 뒤로 물러나 나의 마음 상태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거울로 삼기로 했다. 완벽한 글보다는 정감 있고 균형감 있는 글을 써 내려가는 데 더 심혈을 기울여야지 싶었다. 그런 마음가짐이 매주 한 편씩 글 쓰는 사람의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나의 마음을 접할 기회가 늘었다. 피곤하고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으면 일단 그림을 그리러 간다. 피곤해도 그림을 그리면 답이 보일 때가 있다. 마음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들여다봐 주는 것만으로도 회복력이 발휘되는 듯하다. 나에게는 꽤 잘 통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마음의 모습도 그저 바라만 봐줄 수 있으면 친구가 그러하듯이 위안이 되곤 한다. 글쓰기를 통해서도 마음의 모습을 가끔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다면 또 좋을 것 같다. 오늘은 김재식 시인의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 시집에서 한 시를 발췌하며 나의 마음을 그려본다.
당신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지쳐 있을지 모른다.
익숙하게 하던 일도 더뎌지고
즐겁게 하던 일들도 재미가 없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중략]
당신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인지 모른다.
열심히 노력한 것들에 대해
생각과 다른 결과에 지쳐
모든 게 의미없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게으른 게 아니라
우울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혼자 길을 나서라.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라.
그 사람은 가까운 사람일 수도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은 사람 때문에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사람으로 치유받을 수 있다.
갑자기 쓰러진 사람이
스스로 심폐소생술을 해서
살아날 수는 없다.
그러니 쓰러지기 전에 살펴주고
보듬어주어야 한다.
그림은 이렇게 완성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