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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서백일 Apr 01. 2021

[서평] 공부란 무엇인가?

나에게 공부란 아주 단순하고 쉽고 편하다가 점점 더 이해 안 되고 어려워지고 노력해야 하는 것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어릴 적 공부 좀 할 줄 안다는 소리를 들었다. 미술도 못 하고 체육도 못 하고 연예도 못했는데, 나름대로 위안이 되던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 보면 공부 이외의 것들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 칭찬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우리 사회는 공부라는 단어에 상당히 긍정적인 신호를 주는 사회다. 학창 시절에 공부하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을 테임에도 불구하고, 연예하다 실패하면 연애 공부 찐하게 했다고 하고, 사업하다 실패하면 인생 공부 찐하게 했다는 표현을 쓴다. 참 여기저기 공부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기 좋아하는 민족이다.

우리 아들도 최근 임용고시 공부를 그만 두고, AI / Machine Learning 전문가가 될 공부를 새로 시작한다고 했다. 아들이 본인이 해야하는 공부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공부를 시작한다고 하니 조금은 대견스러웠다. 나는 그 나이 때에는 그럴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긍정적인 신호를 주는 '공부'는 '알고 보면, 공부 역시 맥주 마시는 일 못지않게 쾌락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결기를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핵심 메시지다.  


독서토론회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책은 기존에 나와 있는 에세이를 편집하여 책을 낸 것이 너무 티가 나는 책이다. 책자의 소제목과 책의 내용이 일치하는 것이 거의 없다. 다만 공부에 대한 메시지는 굵직하고 유머러스한 문장에 담아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살아가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몇몇은 별 빛을 바라볼 줄 안다."

한 때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것 같다고 자책한 적도 있었다. 금전적 지원과 동료 연구자들의 부재를 많이 부러워했다. 그러나 누구에게 보여주겠다는 욕심만 줄이면, 공부는 여럿이 아닌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씩 깨달아 간다. 성공을 위한 공부보다는 성장을 위한 공부는 조금 다른 것을 안다. 성공을 위한 공부는 새로운 지식을 누구보다 더 먼저 습득하여 전달하는 앵무새라면, 성장을 위한 공부는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을 더 쉽고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깊이를 만들어내는 우물 파기다.


"현실적으로 무슨 이득을 가져다주는지 언뜻 불분명한 힐들에 성심껏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자기 통제력을 놓지 않는 파계승 같은 간지가 감돈다."

독서토론회에서 만나는 분들은 요즘 공부가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반죽하는 법도, 요리하는 법도, 고객 접대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 재미있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몸을 써서 그림을 그리는 작업도, 머리를 고정하고 공을 멀리 보내는 법을 배우는 일도 모두 재미있다.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는 일은 맥주 마시는 일만큼 중독적이고 쾌락적이다.


이처럼 공부는 재미있고 쾌락적인 일인데, 왜 우리는 어린 시절 그렇게도 공부를 싫어했을까? 아마도 공부를 싫어한 게 아니라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싫은 게 아니었을까? 사회에서 필요하다고 요구되는 것들을 습득했다는 것을 사회에 증명해야 했으니까 그것이 너무나도 싫었을 것이다. 시험성적을 통해 나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공부는 정말로 '보여주기' 위한 공부다. 학교 시험, 입사 시험, 공무원 시험, 자격증 시험, 대학원 졸업 시험 등에서는 나의 능력이 이 정도 입니다를 보여주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공부가 필요한 때이다. 세미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정도는 알고 있다는 사실을 청중에게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다.


이런 '보여주기'를 위한 공부에는 쾌감이라곤 전혀 없다. 오직 경쟁과 좌절, 그리고 친구를 배신하고 더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의 우월감 말고는 없다. 누구는 붙고 누구는 떨어지는 절벽 위에서의 결투와도 같은 공부를 청소년기의 우리들은 요구받았다. 그래서 공부가 즐겁지 않았다.


그런데도 책 방에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는데', '공부란 평생 해야 하는 것' 부류의 책들이 넘쳐난다. 아마도 늦깎이 학생들이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막 시작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긴 되었나 보다. 경쟁을 뚫고 인생의 전반부를 보낸 사람들이 공부에 허탈해하고 진이 다 빠진 후에 한 번은 공부를 포기하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진정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에 빠져드는, 그리고 쾌락을 느끼는 파계승 같은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증거다.


"지적 갈등을 해소하고 자신의 인식 지평을 확대하려면 독자 역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혼자 하는 공부란 것은 수동적으로 되기 쉽다. 세상에서 혼자만 안다는 즐거움도 혼술 못지않게 쾌감을 준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지금 나의 상태를 알게 된 것이 가장 좋았다. '보여주기' 위한 공부에서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한 공부로 첫걸음을 띈 상태이다.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공부가 인생에 이렇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조금씩 경험하고 있다. 과거에는 몰랐었다. 이 공부를 시작한 지는 1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공부가 수동적인 것은 아닌가 의구심도 든다. 독서토론회에서도 이런 수동적인 태도는 책을 너무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마 책을 조금 멀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겠으나, 나는 대신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질문을 던지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영역에 뛰어들" 것이다. 저자는 "쉽지 않은 공부는 늘 결기를 요구한다." 라고도 했다.


나는 이제 공부 2.0시대로 진입하고자 한다. 책을 읽을 때마다 "질문"을 던지려 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질문"을 하는 한 방편이 될 것이다. "나의 공부 2.0을 위해 건배!" 맥주 한 잔을 들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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