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크록스마스

by cakes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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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인을 하는 사람으로서 납득하지 못하는 브랜드가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크록스였다. 크록스를 디자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어글리해서 도구로 밖에 보지 않았다. 주관이 뚜렷한 편이라 절대다수가 좋다고 해도 취향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무려 3억 켤레의 크록스가 팔렸을 때도 내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지비츠가 출시되었을 때 꽤 재미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내 발을 그 안에 담고 싶진 않았다. 그런 나에게 처음으로 크록스가 호감으로 다가온 적이 있었는데 바로 영화 데드폴2에서였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순간 데드풀은 크록스를 신고 있었다. 그래. 저런 위트라면 크록스를 한번 신어볼 만하지 하고 말이다.



넉 달 전 지방에서 샵 인테리어를 시작했고, 난 현장을 방문하지 못한 채 서울에서 바닥 작업지시를 해야 했다. 작업이 끝날 때쯤에서야 현장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바닥이 울퉁불퉁 엉망이었다. 늘 달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고 그 동경심은 예전에 ¹루나 샘플 리턴 백까지 만들게 했는데, 바닥을 보곤 내가 드디어 달 표면에 온건가 착각이 들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때 바닥 공사를 한 부산 사내를 만났는데 시커만 발에 크록스를 신고 있었다. 잠시 싹텄던 크록스에 대한 호감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데드폴이 목숨까지 바쳐가며 나에게 심어준 호감이었는데) 그렇게 크록스는 내 마음에서 영원히 멀어지는 듯했다.



찬 바람이 매서운 어느 날, 집으로 가는 길에 한 커플이 크록스를 신고 있었다. 지비츠 구멍에 가지각색의 장식이 꽂혀 있었는데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불이 반짝였다. 크리스마스 커밍을 크록스 때문에 알게 되다니. 그때 뭔가에 홀렸나. 저렇게 귀여운 커플이 될 수 있다면 나도 크록스를 신으리라 망상을 하고 말았다. 올해는 그냥 ²예쁜 트리를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올 겨울엔 ³추억을 팔아야지.



주석

¹ 달의 암석을 담아온 가방을 ‘루나 샘플 리턴백’이라 하는데 그 가방을 몇 년 전에 복각해서 만들었었다.

² @suure.lounge 에서 만나볼 수 있다.

³ @suure.lounge 에선 12월에 추억을 팔기로 했다.


#크록스가내맘에들어온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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