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전에
한동안 책에 대한 권태기가 왔다. 아니 그건 인생의 권태기였을까. 독서모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했던 책을 제외하고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친구에게 에세이 한 권을 추천받았다. 약속시간이 남은 어느 날 생각난 김에 서점에 들러 그 책을 펼쳤다.
'아이고 유치해라.'라고 생각하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그래 나도 유치한 인간이었어. 아씨, 재밌어.' 글쓴이의 유치한 유머 코드에 그만 동조해버렸다. ‘유치하지만 참 정감 있는 글이야.’ 그래. 난 정감 있는 대상에 약한 스타일이다. 약속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그 책을 다 읽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몇 편의 에피소드를 읽고 다시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 이후로 매일 점심시간에 서점에 들러 에피소드를 3편씩 읽었다.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책을 사면 한 번에 다 읽어버릴 것 같아서 일부러 사지 않았다. 하루 일과 중 서점에 들러 에피소드 3편씩 읽는 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되어버렸다.
처음 옷을 디자인하게 된 것은 내가 예쁜 옷을 입었을 때 더 특별해지고 멋있어지는 것 같은 미적 환영 때문이었다. 그런 기분 좋은 감정을 다른 이들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에세이를 한번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이다. 내가 그 에세이를 보면서 느꼈던 작은 위로나 소소한 즐거움을 다른 이들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위로를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면. 그저 피식 한 번이라도 웃게 해주는 글을 쓸 수 있다면. 그래서 누군가 내 글을 읽는 게 하루의 소소한 행복이 된다면.
몇 년 전 친구(남자)와 각자의 여자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기 위해 팬시점에서 엽서를 고를 때였다. 우리는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라서 글을 적는 공간이 가장 작은 카드를 찾기 바빴다. 가장 여백이 작은 카드를 찾았고, 거기에 '할 말은 많지만 여백이 작아서 비좁게 글을 쓸 수밖에 없었어'라는 뉘앙스를 퐁기며 메시지를 담았다.
그랬던 내가 이제 조금은 긴 호흡의 글을 쓰려한다. 여기에 근사한 미사여구나 휘몰아치는 감동 같은 건 아마 찾긴 힘들 거다. 그저 하루 일과 중 시시하게라도 피식 한 번쯤 웃을 수 있다면 난 그걸로 족하다.
영화 그린북에서 토리 발레롱가는 돈 셜리와 여행을 하는 동안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필력이 일취월장하게 된다. 내가 에세이를 쓰는 이 여정 동안 나도 그처럼 멋진 편지를 쓸 수 있는 사내로 일취월장했으면 좋겠다.
그땐 글을 쓸 수 있는 여백이 가장 큰 크리스마스 카드를 고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