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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치과

당신은 치과 주치의가 있나요?

by 허용수

어느 화창한 봄날의 아침.

여느 때처럼 무심히 출근을 하는데 직원들이 화려한 꽃바구니를 안기며 깜짝 서프라이즈를 해준다.

개원 30주년이란다.

조그만 동네 치과로 개원해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화려하지는 않아도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치과를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실장님은 개원 당시부터 지금까지 나랑 같이 늙어가는 우리 치과의 산증인이고 20년 이상 장기근속하는 직원도 있다.

직원들에게 고맙고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그간 성원해 주신 환자 여러분께 너무나 감사하다.

치료할 때 울면서 실랑이하던 꼬마가 어느새 성인이 되어 자기 아이를 치료하러 데리고 오는가 하면, 역시 꼬마 환자였던 친구가 어엿한 제약회사 사원이 되어 내게 영업하러 온 적도 있다.

어찌나 반갑고 기특한지 흔쾌히 거래를 터주었다.

이런 잔잔한 보람은 터주대감처럼 묵묵히 한 자리를 지켜온 동네 치과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의 지하철 역사에 도배되어 있는 대형 치과들의 광고판을 보노라면 여러 명의 치과의사들이 다들 팔짱을 끼고 서서 `여기는 치과 공장입니다` 하고 내세우는 것 같다.

치과 치료는 내과처럼 한 명의 의사가 무한정 많은 환자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꼼꼼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마이크론 단위의 정밀성이 요구되고 그 결과물들은 입안에 증거처럼 남아있게 된다.

대규모 덤핑치과에는 화려한 데스크에 멋진 유니폼을 입고 훌륭한 용모를 지닌 전문 코디네이터가 유창한 언변으로 치료법과 재료, 가격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들은 치료 결과까지 책임을 지는 의료인이 아니다.

반값 이벤트라 해서 최저가로 환자들을 유인해 놓고 일명 페이닥터라는 젊은 월급의사들을 마구 고용해 마치 컨베이어 돌아가듯 공장식으로 환자들을 쳐낸다.

이들의 영업 전략은 박리하니 다매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는 필연적으로 과잉 진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페이닥터들은 조금이라도 월급을 더 주는 곳이면 언제든 쉽사리 이직할 수 있기에 몇 년 후의 장기적 예후까지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겨서 환자와의 신뢰 관계가 깨어지면 이미 선금은 받아놓고 감당이 안되니까 야반도주하는 일명 '먹튀 치과'가 되는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무책임한 행동은 선량한 전체 치과의사들을 매도하기에 치과의사 협회에서도 자체 단속에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가 협회에 미가입한 비회원이라 소재 파악이 어렵고 잠적한 후 다른 지역에서 다른 이름으로 또다시 개업해 이런 짓을 반복하므로 뿌리 뽑기가 어렵다.


아무리 규모가 작고 소박한 동네 치과라 해도 한 자리에서 10년 혹은 20년 이상 버티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할 만한 치과라는 반증이다.

소중한 자신의 몸을 최저가의 유혹에 맡겨서야 되겠는가.

공연히 화려한 광고를 통해 이벤트다 뭐다 해서 유인하는 곳보다 이웃집 아저씨 아줌마처럼 친근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네 치과 주치의를 두는 게 현명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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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