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한 족보
나의 큰딸 희진이는 고1 때 교환학생으로 미국의 자유로운 교육제도를 맛보더니 본격적인 유학을 보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2는 학비 부담이 적은 캐나다로 보내야 했고 고3이 되어서야 미국 사립학교로 보낼 수 있었다.
경제적 여건상 캐나다로 보낸 게 부모로서 마음이 아팠지만 인종차별을 하던 미국 친구들에 비해 좋은 친구들과의 추억도 많았고 퀘벡주라 불어도 익힐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단다.
여름방학을 맞아 국내에 왔을 때 일본으로 함께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현지에서 일본어도 유창하게 하며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어려서부터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였던 탓에 자연히 일본어도 체화된 모양이다.
대학 졸업과 취업까지 미국에서 하더니 결국 미국인과 결혼해서 아이 놓고 미국인으로 살고 있다.
미국인을 사귄다고 했을 때 처음엔 신경이 쓰였고 솔직히 흑인일까 봐 걱정도 했다.
아랍 왕족이라는 남학생이 대시한 적이 있었다는데 몇 번째 와이프가 될런지 몰라 패스했단다.
지금 사돈 내외는 미국으로 이민을 해서 정착하신 중국분들이고 2남 1녀의 자녀들은 모두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들이다.
상견례와 결혼식을 위해 우리 가족들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사위의 누나는 전형적인 미국 백인 남자랑 결혼을 했고, 형의 와이프는 베트남 사람이었다.
그래서 상견례 자리는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 베트남어 등 다양한 언어와 인종이 모인 유엔 총회장 같은 느낌이었다.
사돈은 중국식 영어로 나는 한국식 엉터리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알아들어도 웃고 못 알아들어도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럭저럭 시종일관 화기애매했던 상견례 자리였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나서 한국에서 한 번 더 성대한 결혼식을 하기는 했지만 미국에서는 우선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만 초청해 야외 결혼식을 올렸다.
시간에 쫓기며 정신없는 한국식 결혼식과는 달리 넓은 파티룸에서 거의 자정까지 신랑 신부와 지인들이 여유 있게 피로연을 가졌다.
신부 아버지인 나는 사전에 준비한 축사를 구글번역기로 번역해 낭독했다.
과연 내 발음을 알아듣기나 할런지 걱정스러웠지만 중간중간 박수도 치고 호응을 하는 걸 봐서 웬만큼은 알아들었나 보다.
신랑 신부를 에워싸고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댄스 플로워의 한가운데서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찬란한 조명 아래 춤을 추는 딸아이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발달장애가 있는 나의 아들이 술이 잔뜩 취해 춤을 추는 신랑 친구 중 한 명과 서로 열심히 귓속말을 하면서 웃고 떠드는 신기한 장면도 보인다.
나중에 대체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간간이 아는 영어 단어를 섞어 한국말로 얘기를 했고 그 미국인은 영어로 뭐라 뭐라 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란다.
그래도 뭐 서로 고개도 끄덕이며 웃고 함께 춤추니 즐거웠단다.
사돈은 사업으로 자수성가하셨지만 사위는 뉴욕 맨해튼에 직장도 있고 미국인답게 부모님의 도움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힘만으로 브루클린의 아파트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브루클린엔 흑인들이 특히 많았는데 거리를 다니다 보면 흑인이 우리에게 알아듣지 못할 욕을 하며 공연히 시비를 거는 일이 종종 있었다.
희진이는 그러려니 하고 상대하지 말라고 한다.
미국 내 흑인들은 백인들로부터 차별받는 분노를 우리 같은 동양인이나 히스패닉들에게 퍼붓는 것 같다.
실제로 미국 내 흑백갈등과 경찰의 공권력 남용문제로 촉발된 로드니킹 사건이 애꿎은 한인타운 상가들이 약탈당한 LA폭동 사태로 번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자기들을 제외한 모든 인종들을 유색(colored) 인종이라며 차별한다.
서양 유럽인들은 대항해 시절 아프리카와 남미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원주민들을 마치 동물처럼 노예로 부렸고, 산업혁명 이후 근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다른 유색인종들을 진화가 덜된 미개한 인종으로 취급을 해왔다.
하지만 오히려 동물계에선 선천적으로 멜라닌 색소가 결핍되어 피부와 털이 하얀 '알비노'들을 유전적 질환을 가진 변종으로 본다.
백인들은 햇빛에 매우 민감해 피부암등의 손상을 받기 쉽고 눈 보호를 위해 선글라스를 껴야만 한다.
어디 그뿐이랴.
사람의 혈액이 원숭이의 혈청과 서로 섞이지 않고 응집반응이 일어나야 당연하건만, Rh(-) 혈액형이란 Rhesus monkey라는 원숭이의 혈청과 응집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혈액형을 말하는데, 한국인에서는 전체 인구의 0.1~0.3% 정도로 비율이 낮은 반면 서양인에선 15% 정도로 높다.
그러니 대체 누가 더 원숭이에 가깝다고 해야겠나.
그러고 보면 서양인들이 원숭이처럼 털이 더 많기도 하다.
그리고 현재 유럽과 서아시아 인구의 약 1~2%는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밀려 약 4만 년 전에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은 체구가 크고 근육질이며 두개골이 앞뒤로 커서 짱구머리처럼 얼굴이 돌출되고 눈썹 위엔 두드러진 능선과 코가 큰 신체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서양인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진화가 덜된 유색인종 운운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원래 다른 종끼리는 자손을 번식할 수 없는 법이다.
예를 들어 말과 당나귀의 혼종인 노새나 사자와 호랑이의 혼종인 라이거는 생식 능력이 없다.
하지만 백인이든 흑인이든 어떠한 유색인종이든 현생 인종끼리는 서로 간에 얼마든지 자손을 남길 수 있는 같은 호모사피엔스 종인데 차별을 해서야 되겠는가.
그렇지만 흑인 사위를 볼까 봐 걱정했던 나부터도 인종적 편견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동남아 외국인 근로자들을 은연중에 멸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뜻한 나라에서 온 그들을 한 겨울 매서운 추위에 열악하기 그지없는 비닐하우스에서 재웠다지 않은가.
불법체류자를 임시로 수용하는 외국인보호소의 인권 문제도 종종 오르내리고 있다.
이제 지구촌 세계에선 더 이상 인종차별은 없어야 하고 인종의 다양성과 그 문화는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인종적인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해서 애니메이션 영화 실사판의 블랙워싱(Black washing)은 좀 아닌 것 같다.
인어공주의 에리얼에 레게머리를 한 흑인 여배우가 캐스팅된 것이나 백설공주 역을 라틴계 배우가 맡아 흑설공주가 된 것, 그리고 피터팬의 팅커벨이 흑인 요정인 것 등 백인으로 설정된 캐릭터를 흑인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두고 비판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인종, 종교, 성별 등의 차별과 편견을 없애는 것이 옳다는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에 기인한 바이지만, 원작의 시대적 배경이나 취지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흑인을 등장시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고 심지어는 환상이 깨져 버려 우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만약에 심청이나 춘향이를 금발의 서양 여배우가 연기한다면 얼마나 어색하겠나.
그런 점에서 비록 애니메이션이긴 하지만 K-pop과 K-food에다 한국의 배경에서 철저히 한국적인 캐릭터만으로 승부했던 케데헌(케이데몬헌터스)이 오히려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본다.
나의 사위는 한국의 음식과 K-pop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한국인 아내를 얻었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내의 나라에서 일 년 반동안 살면서 한국어를 익혔다.
무려 5개 국어를 구사해서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두려울 것 없는 딸네 부부가 부럽다.
우리 가족 계보에도 글로벌한 인종이 넘치는 만큼 지구촌 세계란 말이 실감 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