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서 주어는 말 그대로 주인공
수동태가 중요한 이유
태어나고 자라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모국어 외에 다른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가 일상생활 가운데 전반적으로 사용되는 제1 언어(primary language)로 정착하는 과정은 멀고도 험하다. 그 여정 가운데 많은 걸림돌들이 있지만, 초창기 나를 힘들게 했던 건 한국어에는 없고, 영어에만 있는 영어의 특수한 용도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예를 들자면, 정관사 the 그리고 수동태가 대표적인 예다. 어떤 명사 앞에 언제 the를 붙여야 하는지 가늠하기 힘들었고, 매번 능동형 문장만 구사할 줄 알았지 수동태 쓸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작문이라면 교정이라도 볼 수 있고, 표현의 다양성을 위해 이런저런 문장을 시도해볼 수도 있겠지만, 미국인과 대화를 하는 자리라면 이런 옵션은 없다. 따라서 내 스트레스 지수가 당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한국어에는 없는 정관사와 수동태를 처음부터 틀리지 않고 사용하기란 힘들긴 하지만, 내 경험상 정관사는 수동태만큼 중요하지 않다. 일단 미국인들도 정관사 붙여야 할 때, 안 붙이고 넘어가는 경우를 보게 된다. 나처럼 영어를 제2 언어(English as second language)로 배우기 시작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편의성 때문에 광고나 기사 제목에서 제외시켜 버리는 경우도 많다. 또 다른 이유는 정관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엄밀하게 지시하는 바가 틀려지긴 하지만, 의미 자체가 통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예를 들자면 내가 말하는 사과가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사과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개념의 사과인지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냥 사과인 건 똑같다. 사과에 정관사가 붙는다고 배나 포도로 뜻이 바뀌진 않는다. 따라서 한국에서 시험을 치러야 하는 수험생의 경우가 아니라면, 신경을 덜 쓰고 지나가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다고 본다.
하지만 수동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능동태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하는 정도로, 시험문제에 나온 걸 맞힐 정도로만 알고 지나가기엔 일상생활에서 너무 자주 사용될 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말하다'는 의미의 tell이라는 단어가 수동형으로 사용되는 경우 '듣다'라는 의미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수동태의 용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제대로 사용할 자신도 없고, 또한 수동형으로 된 문장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수동태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내가 수동태를 언급하면서 굳이 문법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언어란 이해와 습관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국어를 하면서 문법 생각하며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말은 하던 대로 나오는 습관에 가깝다. 영어가 모국어라서 모든 미국인은 문법적으로 완벽한 영어를 구사할 거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 경험상 미국인들도 문법 틀리는 경우가 있다. 특히,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그럴 확률은 더욱 높다. 문법적으로 하나도 맞지 않는 문장을 구사하지 않는 이상, 조그만 꼬투리 한두 개 때문에 언어를 배우는 과정 자체가 영향을 받아 위축되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수동태의 용도를 알고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지, 문법적으로 맞냐 틀리냐를 판단하는 게 관건이 아니란 이야기다. 그러면 수동태란 무엇이며, 어느 때 사용되는 걸까? 수동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어에서 주어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영어에서 주어가 차지하는 비중
우리가 영어에서 주어라고 알고 있는 subject는 그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다. 예를 들어, 한 문장이 열 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고 치자. 그럼 단어 하나가 그 문장에서 각각 10% 씩 비중을 차지할 거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주어가 차지하는 비율이 반이라고 보면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이 있어도 주인공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것처럼 한 문장의 subject는 그 문장이 묘사하고 있는 주인공이다.
영어에서 ‘카더라’ 이런 표현이 거의 쓰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불분명한 주어 때문이다. 문장의 주인공인 주어가 명확하지 않으면 문장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예를 들자면, 자전거가 가고 있는데 막상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격이다. 따라서 그런 문장은 미국인들에겐 논리에 안 맞는 이상한 문장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타임>이나 <뉴욕타임즈> 기사는 서너 줄 이상 되는 긴 문장이 나오기 일쑤인데, 이런 긴 문장을 해독하기 가장 쉬운 방법도 주어를 먼저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긴 문장을 주어와의 관계에서 풀어나가면 생각보다 간단하게 독해가 된다. 후일 다른 글에서 긴 문장 해석하기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수동태를 이해하기 위한 컨텍스트
2012년 오바마 행정부는 어렸을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성년이 된 후, 미국 이민법상 합법적 신분이 없는 이들이 대학에 다니면서 학위를 받고, 취업도 할 수 있도록 구제해주는 DACA(이하 다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USCIS(미국 이민국) 웹사이트에 의하면, 신청자는 2012년 6월 15일 기준으로 31살 미만, 16살 생일이 되기 전에 미국에 입국했으며, 이민법상 합법적 신분이 없으며,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거나 아니면 미군에서 복무를 했으며, 그리고 중범죄 전과가 없는 경우 다카 신청이 가능하다.
일명 ‘드리머즈(DREAMers)'라고 불리는 이들은 자격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한 2년마다 미국 내에서 대학도 다니고,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퍼밋을 갱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45대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는 선거 캠페인을 할 때부터 다카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하였고, 2017년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행정부는 다카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 현재 미국 내 드리머즈의 수는 약 70만 명이다. 어린 나이에 태어난 나라를 떠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여 성장하였기에 미국이 실질적으로 그들의 고향인 셈이다. 게다가 이들의 부모는 밤낮으로 생활전선에서 일하다 보니, 자녀에게 모국어를 가르칠 겨를이 없어 영어가 드리머의 모국어가 된 경우도 빈번하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드리머즈가 불법 체류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낯선 출신국으로 강제 추방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던 것이다.
내가 영주권 때문에 지문 인식(fingerprinting)하러 갔던 2014년, 이민국 사무소에서 다카 신청하는 것으로 보이는 듯한 이십 대 초반 남매 둘과 마주쳤던 기억이 난다. 한눈에 봐도 뭔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합법적 신분 없이 캘리포니아에서 일은 물론이고, 운전 면허증 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따라서 드리머즈에게 다카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는 셈이다.
영작은 한글을 영어로 직역하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 설명한 다카의 주요 포인트는 신청자가 어린 나이에 자의가 아니라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케이스다. 이때 신청자를 주어로 놓고 ‘자의가 아니라 부모를 따라’ 10살 때 미국에 왔다는 표현을 영어로 어떻게 할까? 우린 따라왔다 하면 ‘follow’란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릴 분들이 많을 거 같다.
I followed my parents to the U.S. when I was ten.
말은 되는데, 뜻은 좀 달라진다. follow란 단어는 실제로 뒤를 따라가는 거고, 비유적으로도 발자취를 쫓아 그 사람이 갔던 길을 따라간다는 의미다. 따라서 위 문장은 부모 뒤를 쫓아 10살 때 미국에 온 게 돼 버린다. 한글을 영어로 직역하면 때로는 이처럼 의도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I came to the U.S. when I was ten.
이 문장엔 부모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10살짜리 아이가 혼자 미국에 이주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모가 데리고 왔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때로는 실제로 10살짜리 아이가 혼자 이주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문장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
I was brought to the U.S. when I was ten.
수동태를 쓰고 있는 이 문장은 가장 자연스럽고 정확하게 '나는 10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왔다'를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의가 아니라 부모가 자신을 데리고 미국에 왔다는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되고 있다. bring이라는 단어의 과거분사형인 brought는 능동형인 경우 '가지고 오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단어를 자녀가 부모를 따라왔다는 의미로서 사용하는 건 수동형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