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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ys Oct 29. 2021

아줌마가 원어민 수준 영어하기까지 One

[프롤로그] 언어에서 컨텍스트(context)가 중요한 이유

2006년 여름,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그동안 영어를 쓰고, 읽고, 듣고, 말하는 능력이 얼마만큼 발전했나 뒤돌아보면 이런 말 대놓고 하기 그렇지만, 많은 발전이 있었다. 물론 좌절, 절망, 부끄러움 등 다양한 감정을 두루 느끼며, 때로는 내 영어는 왜 맨날 제자리일까 생각한 적도 많았다.  


영어가 실생활에서 얼마만큼 필요한가는 내가 살고 있는 남가주의 경우, 선택사항이다. 다시 말하면, 굳이 영어를 쓰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남가주란 곳이다. 한국 마켓은 물론이고, 휴대전화 서비스,  자동차 및 건강 보험, 심지어 주 정부기관 공문까지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학생들이 많은 초, 중, 고등학교 학군 (school district) 에는 한국어 통역이 있어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부모가 선생님과 상담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도움에 의존하다 보면 믿거나 말거나, 남가주에선 진짜 영어 한 마디 할 기회가 안 생긴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 말부터 1990년 대 초는 종로에 위치한 영어 학원 전성시대였다. 많은 대학생들이 영어학원 회화반에 등록하고, 토플(TOEFL)이나 토익(TOEIC) 강의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대학 캠퍼스 대규모 강의실에서 토플, 토익뿐만 아니라 뉴스위크나 타임 강좌가 제공되던 때였다. 학기 초가 되면 300명 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계단강의실이 가득 차지만, 학기 중반이 지나기도 전에 수강 인원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난 영어학원보다 수강료가 훨씬 저렴한 대학 캠퍼스 내 대규모 영어 강의를 즐겨 들었었다. 개강 이삼주만 지나고 나면 대규모 강의실은 매우 한가해졌고, 수준 높은 강의를 저렴한 가격에 들을 수 있는 장점 때문이었다. 또한 강의 시간표에 맞추어 영어 강좌를 들으면 시간표대로 움직이게 되서 잘 빠지지 않게 됐다. 학원 왔다 갔다하는 시간 절약되는 것도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었다. 그 당시 수강하였던 어휘 (vocabulary) 강좌는 미국에 와서도 도움이 된 매우 유익한 강의였다.


대학 3학년이 되면서 교내 어학원 영어 소규모 강좌를 듣기 시작했으며, 대학 4학년 시절 토플 준비를 마무리하기 위해 길 하나 건너면 되는 연세대학교 어학당 토플 강좌에 등록했었다. 나름대로 영어를 꾸준히 했고,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 중 그나마 듣기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다.


토플 580점(iBT 92 점) 수준의 30대 중반 아줌마가 남가주로 이주한 첫 해, 아파트 구하고, 전기, 전화, 가스 회사에 전화해 공급 신청하는 것 등을 가까스로 할 수 있었다. 요즘 한국도 콜센터의 보급으로 사람을 직접 대면하기보다는 전화 통화로 많은 걸 해결하듯이, 2000년대 중반 미국이 그랬다.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경우보다, 전화를 통해서 되는 일이 더 많았다. 사람 앞에 두고 영어 하기도 쉽지 않은데, 전화로 의사소통하자니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내가 미국 와서 느낀 점은 미국에서 쓰는 영어가 그동안 내가 배워왔던 영어와 다르단 사실이다. 우리가 국어 교과서식으로 일상생활에서 대화하지 않듯이 미국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상생활에선 이디엄(idioms)  위주의 관용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문제는 어려운 단어 하나 안 쓰는데 말을 못 알아들겠으니, 그게 더 답답할 노릇이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아기가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래서, 알아듣건 못 알아듣건 우선 환경에 자주 노출되어야 한다. 말을 못 하는 아기에게 엄마가 자주 말을 걸고, 책을 읽어주는 것과 흡사한 논리다. 그래서 난 100% 전부 알아듣지 못했지만, 소규모 학부모 모임이나 미팅 같은데 참여해서 미국인들 말하는 패턴을 고찰하고, 실생활에서 미국인들이 사용하는 영어를 직접 들었다. 아이들 학교뿐 아니라 과외활동 관련하여 크고 작은 학부모 회의에도 다 참석했었다.  같은 한국어라도 현대 국어와 조선시대 국어가 틀리듯이, 현대 미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과 대화를 시작하고 전개하는 방식들이 있다.  


영어권에서 생활하면 직접 언어 환경에 노출될 기회가 많겠지만, 비영어권에 살면서도 노력을 하면 그 노출이 가능하다. 요즘 유튜브를 통해 시청 가능한 비디오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에 관심 있는 청소년이라면 유튜브에 있는 온라인 게임 관련 채널을 구독해서 보면 재미도 있고,  영어에도 노출된다. 미드나 뉴스에 관심 있는 청장년층의 경우, 시트콤이나 뉴스 채널을 구독해도 된다. 나 역시 시트콤을 통해 많은 관용표현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고, CNN은 여전히 즐겨보고 있다.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읽어도 되고, 외국인 친구와 사귀거나 펜팔을 해도 된다.  찾아보면 길은 있게 마련이다.  


영어 교육 12년 받아도 영어가 안 된다고 하는 이유는 영어를 텍스트(text)로 학습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어떤 법칙으로 운용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문법 따져가며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미국에 와서 영어를 하면서 문법책 한번 본 적 없고, 동사나 명사의 어원 분석한 강좌 같은 거 들어본 적도 없다. 숙어나 단어 외워본 기억도 없다. 생활 속에서 영어를 꾸준히 접하고, 사용하다 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영어를 듣고, 말하고, 읽고, 쓰게 되었다.  


아기가 처음 태어나서 말을 배우기 시작할 , 문법 먼저 배우지 않고, 사지선다 가운데 맞는 답을 고르지 않는다. 특정 컨텍스트의 언어 환경에 노출되면서 그렇게 언어를 배운다. 예를 들어 엄마가  먹어라   아기는 그게 무슨 뜻인지 처음엔 이해하지 못하지만, 먹을 것을 준비해놓은 상태에서 자주 듣다 보면 이게  먹으라는 소리구나 알게 된다. 이런 맥락 없이 표현 하나를 던져주고 말을 배우려면  것이 되기 쉽지 않다.  표현을 사용하려고  , 떠오르는 상황(컨텍스트) 없기 때문이다.


영어가 왜 안되는지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 이유를 안다고 내 영어가 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내가 영어로 소통하고 싶다는 의지와 욕망이다. 난 기왕 미국에 왔으니 필요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일반 미국인들과도 버벅거리지 않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다른 학부모들이랑 부딪힐 기회가 많이 생겼는데, 다른 사람들끼리는 서로 잘 알고 이야기도 잘하는데, 나 혼자 외딴섬과 같단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국 중, 고등학교는 학부모들이 학생들 활동을 서포트하는 경우가 많다. booster이라는 학부모회를 조직해서 학생들 과외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미국 학부모들 가운데 자식에게 관심을 갖는 부모들은 하나같이 이 학부모회를 통해 적극적인 활동을 한다. 같은 학부모회에서 오래 활동하다 보니 학부모끼리 얼굴도 익히게 되고, 대화도 트고, 그러다 보니 친해지게 되는 거다.


내 영어가 늘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른 학부모들처럼 학부모회에서 활동하면서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욕망이 있다 보니,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나는 사람 붙잡고 broken  English (콩글리쉬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를 쓸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영어를 컨텍스트 안에서 배웠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상황과 주변 환경 그리고 화자의 의도는 언어와 함께 전달되는 패키지다. 그 컨텍스트 가운데 언어를 배워야 내 것이 되기 쉽다. 강제 학습보다 더 효과적으로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그와 비슷한 상황에 다시 맞닥뜨리게 되면 그때 배운 표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써먹을 수 있게 된다.


 영어공부의 여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대학에서 영어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미국에 와서 뒤늦게 영어를 배운 사람이다. 영어학습 이론의 기반 없이 순전히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글이기 때문에 영어 학습 방법론으로 보기도 힘들다. 다만,  예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영어가 마냥 제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느끼는 분들에게 영어공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영어를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있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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