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에 자족하는 법

코로나바이러스와 우리 삶의 타협점

by Crys


그리피스 천문대와 엘에이 야경


그리피스 천문대(Griffith Observatory)는 헐리우드에 위치한, 엘에이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이다. 1935년 처음 대중에게 문을 연 이 천문대는 2002년 시작된 레노베이션을 거쳐, 2006년 새 단장한 모습으로 다시 관광객을 맞이했다. 산타 모니카 북쪽 산 위에 위치한 게티 센터(The Getty Center)와 더불어 엘에이 야경을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이다.


솔직히 야경 자체만으로 놓고 보면, 서울이나 홍콩 야경이 엘에이보다 더 멋지다. 아래 사진에서 보다시피 오른쪽에 고층빌딩이 밀집한 지역이 다운타운 엘에이고, 왼쪽에 보이는 환한 길쭉한 타원형이 야구장인 다저스 구장이다.



그 외의 지역엔 고층빌딩이 별로 없고, 집들이 띄엄띄엄 있는 엘에이의 야경은 서울이나 홍콩의 그것보다 덜 화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천문대는 야경뿐만이 아니라, 별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서 좋다. 천문대 측에서 제공한 커다란 망원경 세 대를 셋업 해놓고, 방문객들이 줄을 서면 차례로 토성, 목성 그리고 달을 관찰할 수 있었다. 또한 천문대 안의 planatarium에서 천체쇼도 관람할 수 있다.


당시 하늘엔 초승달, 더 가깝기도 하고 사이즈도 더 커서 환하게 보이는 목성, 그리고 목성보다 덜 밝지만 토성 역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난 이날 처음 토성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는데, 토성의 띠뿐만 아니라, 두 개의 위성 또한 같이 볼 수 있었다. 천체 망원경을 통해 확인한 토성은 마치 손을 뻗치면 잡힐 것만 같은 착각이 들만큼 선명하고, 너무나 생생했다. 난 천체 과학자들이 머나먼 우주에 매료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았다.



그리피스 천문대를 방문했던 날, 관광 명소답게 캘리포니아 외 미국의 다양한 주 번호판을 부착한 차량들을 주차장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고, 영어 외의 언어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물론, 가족과 연인끼리 좋은 시간 보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코비드 19 팬데믹이 불러온 변화 중의 하나가 실내 활동에 제약이 많아지다 보니, 미국인의 실외활동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가? 일요일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천문대 올라가는 산 아래 입구에서부터 차량이 줄을 이었고, 넓은 주차장임에도 불구하고 차량들은 주차공간을 찾지 못해 빙빙 돌고 있었다.


물론, 팬데믹 이전에도 미국인들은 야외활동을 즐기긴 했다. 아이가 있는 가족이라면 주말엔 아이들 스포츠 이벤트로 야구장이나, 축구장 등지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고, 아이가 없는 커플이라면 카누와 보트 타기, 서핑, 낚시, 골프, 싸이클링 그것도 아니면 공원이나 집 뒤뜰에서 바베큐라도 했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날씨가 좋기 때문에 야외활동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주말에 뭐 할 거냐는 질문이 여기 금요일 인사 중 하나인 것만 봐도, 미국인에게 주말은 주중 근무에서 오는 피로를 풀기 위해 휴식을 취하기보다는 뭔가 재밌는 일을 하는 시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팬데믹 초창기 봉쇄령이 내려졌을 당시, 청소년 스포츠 경기뿐만 아니라, 공원에서 열리던 바베큐 파티까지 자취를 감추어 버리게 되었다. 놀이공원도 문을 닫았고, 박물관과 미술관도 모두 임시 휴관 조치되었다. 미국 내 프로 스포츠 경기마저 중단되었기 때문에 한동안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사인 ESPN에서 한국과 대만의 프로야구 경기를 중계방송해 주었다. 당시 리틀리그 야구를 처음 시작했던 6살짜리 내 직장동료의 막내아들은 실망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고 한다. 두 형들의 야구 게임을 보며 자라나서 어린 마음에 첫 시즌을 매우 기대했었는데, 두 게임 후 그만 김 빠지게 시즌이 끝나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두 달 참는다고 끝날 팬데믹이 아닌 게 점차 분명해져 갔다. 그리고 팬데믹이 장기화돼 갈수록 사람들의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이 무뎌져 갔고, 인내심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특히 대규모 콘서트나 코아첼라 뮤직 페스티벌 같은 행사가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인해 연기됨에 따라 사람들은 팬데믹 이전의 삶을 더욱 그리워하게 되었다.


올해 들어 백신 접종이 보편화되고, 인구의 상당한 비율이 면역력을 갖게 되면서 팬데믹의 제한된 생활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도 사람 만나는 것을 되도록 피해왔지만, 백신 접종 이후 레스토랑 패티오에서 사람을 만나 식사도 하고 그런다. 6월엔 마스크도 없이 스테이플즈 센터에서 NBA 플레이오프 경기 관람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왔다. 델타 변종 때문에 높아진 경계심 덕분에 실내에서는 다시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었지만, 야외활동은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나게 되었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해가며 산다고 했나? 아직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완전히 지나간 건 아니지만, 우린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며, 그 가운데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나고,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인류의 역사는 계속된다고 했다. 오늘의 행복을 볼모로 불확실한 내일을 기약하기보다는, 제한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오늘의 행복을 놓치지 않는 삶이 후회 없을 뿐만 아니라, 더 값지게 느껴질 것이다.


팬데믹 가운데 내려다본 도시의 야경은 변함없이, 여전히 아름다웠다.



이전 14화팬데믹과 코로나바이러스 음모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