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의 일상

Life Goes On

by Crys

물론 나의 영향이긴 하지만, 우리 아들들은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중반에 유행하던 올드스쿨 가요를 안다. 가수나 노래 제목을 안다기보다는 멜로디를 기억하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거 같다. 차에서 틀어놓은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이승철의 <인연>, 이은미의 <기억 속으로> 등을 들으며 자라났기에 요즘도 이런 노래가 흘러나오면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린다.


우리 둘째 아들이 노래방에서 트와이스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솔직히 우리 두 아들들의 한국어 실력은 가요를 외워 따라 부를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굳이 따라 부르려고 안간힘을 쓰는 노래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G.O.D의 <어머님께>다. 한 번은 노래 가사나 제대로 이해하고 저러는지 궁금해 어머님이 왜 맛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시는지 아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대답이 가관이었다. 가난했던 시절 자식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이기 위해 고사하는 짠한 그 마음을 읽지 못하고, 짜장면이 싫은 이유가 개인적 선호도로 비칠 따름이었다.


G.O.D <어머님께>는 당시 신세대 보이 그룹의 랩이 반항적 메시지를 담고 있기보다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복고풍 가사에 서정적인 멜로디가 더해져 좋아하던 노래였는데, 1996년 발표된 투팍의 마지막 앨범 <All Eyez (고의적으로 철자를 틀리게 한 것임) on Me>에 속해있던 노래 <Life Goes On> 이랑 매우 비슷하단 걸 우리 큰 아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같이 차를 타고 다니면 Spotify(한국으로 치면 음악 앱 멜론이랑 비슷)를 연결해서 듣는데, 이 노래가 흘러나와 처음엔 <어머님께>를 조를 바꾸어 편곡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들 왈 "이 노래 <어머님께>랑 너무 비슷하죠?"


한국에선 투팍을 잘 모르지만, 사실 미국 음악계에서 투팍의 존재는 매우 독보적이다. 미국은 사는 동네에 따라 빈부차, 교육의 정도, 학교 수준이 매우 다르다. 그래서, 자녀 교육에 열성인 미국 부모는 좋은 동네로 이사해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저소득, 교육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은 흑인층이 사는 동네를 후드(hood)라고 하며, 이런 곳에서는 대낮 거리에서 약물 거래가 이루어지고, 밤에 총소리 들을 기회도 만만찮다. 따라서 어린아이들은 일찍부터 약물과 총기에 노출된 채 자라나게 된다.


투팍과 같은 흑인 래퍼는 대부분 후드 출신으로 랩을 들어보면 약물 복용, 섹스, 폭력(갱) 등 좀 불편한 내용이고, 게다가 대부분 힙합이라 비트도 강하다. 일명 갱스터 랩(gangster rap). 하지만 투팍이 이들과 구분되는 점은 그의 노래 가사는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시처럼 운율(rhyme)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멜로디도 아름다워 가사를 무시하고 들어 보면 그냥 슬픈 음악 같다. 다시 말해 래퍼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시각으로 봐도 음악성이 인정된다는 뜻이다.


<Life Goes On>은 후드에서 같이 성장했던 고등학교 친구가 총에 맞아 죽은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내용이다. 노래 가사를 잘 들어보면, 죽은 사람 역시 갱의 일원이다. 평범하게 잘 살고 있다가 재수 없게 갱단 총싸움에 말려들어 어느 날 갑자기 죽은 게 아니다. 후드에 살고 있는 흑인 남자들의 운명은 갱이 되는 걸로 정해져 있고, 결국 젊은 나이에 총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우울하고 슬픈 노래다. 래퍼로서 크나큰 성공을 거두어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투팍 역시 25살이 되던 해 총에 맞아 살해되었다.


펜데믹으로 인해 한동안 바깥출입을 자제하다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무렵 오랜만에 바닷가에 나가 산책을 하면서 오디오북도 듣고, 석양도 구경하였다. 실내 활동에 제약이 많아서인지 야외로 모인 사람들의 수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았다. 서서히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태양과 해변가에서 타고 있는 모닥불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우울한 현실이 되살아나 갑자기 마음이 울적해져서 투팍의 노래를 들었다.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사람들은 호흡곤란으로 입원하고, 심지어 많은 이가 죽어가도 우리의 삶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뉴스에 따르면, 겨울을 맞이하여 가주 중환자실(ICU) 침대가 거의 동나고 있다고 하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환자가 시설 부족으로 인해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작년 봄 이탈리아에서 사망자가 많았던 이유가 바로 인공호흡기가 설치된 중환자실이 동나버려서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의 확진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지만, 미국 소매업계의 대목인 크리스마스를 코 앞에 두고 소매업계는 손님의 발길을 막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듯했다. 년 매출의 20% 정도가 크리스마스 때 달성되기 때문이다.


바닷가 산책 후엔 저녁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잠시 한국 마켓에 들렸다. 순두부찌개 재료랑, 미역국에 넣을 소고기를 사 가지고 계산하려고 서 있는데, 매장 내 폐쇄회로 TV 화면에 BTS의 <Life Goes On> 뮤직 비디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금 전 바닷가에서 투팍의 <Life Goes On>를 들었는데 신기한 우연의 일치였다. 그런데 노래 제목, 마스크 착용, 잠옷 입고 있는 멤버들, 한눈에 봐도 어떤 내용의 노래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작년 3월 봉쇄령이 처음 내려졌을 당시, 남가주는 말 그대로 유령이 사는 도시 같았다. 원래 길에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볼 수 없는 곳이 남가주인데, 그나마 사람 보는 게 더 힘들어졌었다. 필수 산업을 제외한 모든 사업체가 문을 닫아 출퇴근 차량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후리 웨이(freeway) 역시 한산했다. 많은 사람들은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장 보러 가는 거 외에는 바깥출입도 삼갔었다. 이런 상황이 한 달, 두 달 지속되더니 자가격리에 대한 피로감(quarantine fatigue)이 누적되어 사람들의 의식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5월 중순부터 사업체가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했고, 레스토랑 역시 주차장에 탁자와 의자를 놓고 영업을 재개하였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우리의 삶을 여러 면모로 드라마틱하게 변화시켰다. 당시 병원 중환자실은 환자를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꽉 차가고 있고, 미국 내 사망자 수는 삼십만 명을 넘어섰었다. 그런데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돌아왔고, 사람들은 성탄을 축하하기 위해 선물을 사러 쇼핑몰에 줄을 서서 기다렸으며, 슈퍼마켓에 가서 홀리데이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위한 장보기를 하느라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팬데믹 때문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외출을 할 수 없고, 학생들이 몇 달째 교실에 앉아보지도 못했으며, 삼십만 명 넘는 사람들이 외롭게 쓸쓸히 죽어나가도 우리의 삶은 계속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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