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Sycamore Row by John Grisham
난 추리 소설을 너무 좋아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괴도 루팡과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땐 더 읽을 책이 남아 있지 않게 되자,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 손을 댔다. 추리 소설의 여왕이라는 별명답게 크리스티는 66권의 장편과 14편의 단편 추리 소설을 저술하였다.
난 출판된 크리스티의 소설 거의 전부를 읽었을 정도로 푹 빠져있었다. 에르큘 포와로와 미스 마플이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은 중, 고등학생이던 당시 나에게 지적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려줬다. 이후 엘러리 퀸의 <X, Y, Z의 비극> 트릴로지를 읽으면서 현대 추리물에 맛을 들일 기회가 있었지만,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을 처음 읽었을 때와 같은 흥분과 놀라움은 다시 느낄 수 없었다.
죤 그리샴은 저술하는 소설마다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저명한 미국의 작가이다. 그는 현재까지 모두 42권의 책을 출판하였다. 로맨스 소설이 주로 여성 독자를 위해서 쓰인 책이라면, 그리샴은 스릴러 및 법정 장면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기 때문에 좀 더 넓은 독자층을 형성하는 것 같다. 1989년에 출판된 그의 데뷔작 <A Time to Kill (타임 투 킬)>은 소규모 출판사를 통해 달랑 오천 부만 인쇄되었다. 1991년 그를 유명하게 만든 소설 <The Firm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의 데뷔작도 다시 빛을 보게 되었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속죄 나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Sycamore Row>는 그리샴의 데뷔작인 <A Time to Kill>의 속편 격으로 전편에서 칼 리 헤일리의 변호를 받았던 제이크 브리갠스가 다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실 난 전편은 소설로 읽지 않고, 매튜 매커너헤이와 새뮤엘 L. 잭슨 주연의 영화로만 봤다. 미국 남부에 위치한 주 미시시피 출신의 죤 그리샴은 1981년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하다가 <A Time to Kill>의 모티브가 되는 사건에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데뷔작인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고향인 남부 지역에 뿌리 깊게 박힌 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 그리고 K.K.K (쿠 클럭스 클랜)의 행패 등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또한 변호사 출신답게 어린 딸을 강간하고 폭행한 백인 두 명을 죽인 흑인 아버지가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에게서 무죄 선고를 받아 내는 법정에서의 과정이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Sycamore Row>는 부유한 백인 사업가인 세스 허버트가 자신의 흑인 가정부 레티에게 270억 원에 달하는 전 재산의 90%를 남긴다는 자필 유서를 제이크 브리갠스에게 보낸 후, 자살하면서 시작된다. 헤일리 재판에서 이긴 제이크 브리갠스는 변호사로서 명성을 얻긴 했지만, 수임료로 달랑 백만 원을 받았을 뿐이다. 게다가 재판 도중 백인 우월주의 집단에 의해 집이 소실되었지만, 보험회사와 합의가 되지 않아 삼 년째 집수리를 하지 못하고, 세를 살고 있는 형편이었다. 아마도 세스 허버트는 신문에 보도된 헤일리 재판에 대해 읽었을 것이고, 제이크 브리갠스가 편견 없이 공정하게 자신의 유지를 실행할 변호사로 적임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세스 허버트의 성인 자녀인 아들과 딸은 암 말기 환자였던 아버지가 심신 미약 상태에서 자필 유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한다. 이 소설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은 하나이다. "왜 세스 허버트는 그 많은 재산을 자기 집 흑인 가정부에게 상속하려고 했을까?" 마치 추리 소설의 주인공인 탐정이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존 그리샴은 <Sycamore Row>라는 법정 추리물을 통해 역사적으로 미국 남부에 만연하던 흑인에게 가해졌던 린치를 현대 시점에서 화해를 모색할 수 있는 방향으로 풀어가고 있다.
미국에서 흑인을 나무에 (목) 매단다는 건 린치를 의미하는 '은어'이다. 그런데, 세스 허버트는 같은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함으로써 1930년 자신의 아버지 때문에 린치로 죽임을 당한 흑인 남성(레티의 할아버지)에 대한 속죄의 뜻을 전달하고 있다. 놀랍게도 1960년대 말까지 미국 남부의 전원지역에서는 백인이 흑인을 린치하는 관습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난 2012년 LACMA에서 진행 중이던 Edward Kiemholz의 Five Car Stud: 1969-1972, Revisited 전시를 통해 남부에서 행해졌던 린치를 처음 시각적으로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아래 작품보다 훨씬 끔찍한 설치 미술도 있었는데,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서 더더욱 놀랐었다.
난 법정 장면을 즐기는 사람이라서 재판 과정이 나오는 그리샴의 소설을 좋아한다. 따라서 로스쿨을 졸업한 초년생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재판 과정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 <The Firm> 같은 소설은 별로 재미가 없어서 읽다가 말았다. <The Rooster Bar> 역시 반 넘게 읽다가, 소송 과정은 나오지 않아서 관뒀다.
자신이 자라난 지역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린치라는 소재를 추리물의 형태를 빌어서 재밌게 쓸 수 있는 건 아마도 존 그리샴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