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rys Nov 09. 2021

예술과 영원의 상관관계 Part One

[전시회] <The Theater of Disappearace>

사람은 영적 존재다. 특정한 종교를 믿건 안 믿건 사람이 육체적 존재에 불과하지 않고, 그 너머 무언가 더 있다는데 어느 정도 합의점이 있는 거 같다. 이미 석기시대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장례 문화는 살아있는 자들이 망자에 대한 애도를 표현하는 의식이라는 측면과 더불어, 이생 이후 또 다른 생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초기 인류의 막연한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장례 문화의 등장이 종교의 시발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종교의 근간을 이루는 여러 중요한 교리 가운데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의 생이 끝이 아니고, 영원한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후세계에 대한 설명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


그런데, 영원(eternity)은 비단 종교만의 화두가 아닌 듯하다. 예술은 창조자인 예술가가 떠올린 순간의 발상(아이디어)을 시각 예술가인 경우 눈에 보이는, 작곡가인 경우 들을 수 있는 구체적인 형태로 남기려는 노력이다. 순간의 발상이라고 한 이유는 머릿속 생각은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림으로 그리지 않고, 곡으로 쓰지 않으면 소멸되고 말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작품은 창조자인 예술가가 생을 다한 후에도 이 세상에 남기 때문에 마치 개체는 죽더라도 그 유전자는 세대에 세대를 거쳐 영속하는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난 예술 활동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예술가의 영원을 추구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8년 5월 홍콩과 한국에 다녀오기 전, MOCA(Museum of Contemporary Art) Geffen Center에서 열리고 있던 에이드리언 빌라 로하스의 전시 <The Theater of Disappearance>에 다녀왔다. MOCA는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현대미술관으로 Grand Avenue 로케이션 외에 Geffen Center 그리고 West Hollywood, 이렇게 세 군데에 전시관이 있다. 모카 게펜 센터는 리틀 도쿄 내 경찰차 창고였던 곳을 유명한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 설계하에 레노베이션을 하여 현대미술관으로 거듭났다. (프랭크 게리는 2000년대 럭셔리 쥬얼리 브랜드인 티파니와 콜라보레이션하기도 했다)  


모카 게펜 센터는 1983년에 오픈한 이래 일 년에 두 번 삼 개월에서 육 개월 정도 지속되는 전시회를 연다. 372 평방미터 크기의, 벽이 없는 열린 공간으로, 창고였던 관계로 천장이 매우 높다. 따라서 전통적인 포맷의 전시보다 설치미술이나, 아방가르드한 포맷의 전시가 주로 기획되는 거 같다. 아래 사진을 봐도 이전에 창고였던 게 느껴진다.


에이드리안 빌라 로하스 <The Theater of Disappearance>


창고였던 게펜 센터의 건축학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한 전시가 바로 에이드리언 빌라 로하스의 <The Theater of Disappearance>이다. 이 전시회의 타이틀을 한국말로 번역하면 <사라지는 극장> 쯤 된다. 연극은 무대 위에 올려지면, 관중이 그 연극을 관람하고, 연극이 끝난 후에라도 극장은 존속된다. 마치 이 지구 상에 수많은 인류가 태어나고, 자라고, 생활하고, 수명이 다한 후 사라졌지만, 그 생활무대였던 지구는 50억 년 이상 존재해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로하스의 전시 제목은 '사라지는 극장'이다. 제목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전시인 게 느껴진다.


현대 미술은 쟝르 간 경계가 모호해지고, 테크닉이나 재료 역시 전통적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 대리석을 쪼아내고 갈아내거나, 쇠를 녹여 주물에 부어 넣어 하나의 오브젝트를 만드는 게 과거의 조각품이었다면. 현대 조각은 식음료부터 시작해 생활용품, 섬유, 플라스틱 등 사용하는 재료가 무궁무진하다. 설치방법 또한 벽에 걸거나, 천장에 매달거나, 방 전체를 사용하여 설치하는 등 전시방법과 그에 따른 관람 방식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땅속에 묻혀있던 밀로의 비너스와 백제 금동대향로가 천년이 지난 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는 재료의 견고성 때문인데, 현대 미술 작품의 보존방법은 그리 간단치 않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위해 쓰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