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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ys Nov 10. 2021

예술과 영원의 상관관계 Part Two

[전시회] <The Theater of Disappearance>  

1980년 생인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출신의 조각가 에이드리안 빌라 로하스는 '예술작품을 구상하면서부터 설치 과정과 전시를 거친 후, 최종적으로 그 예술작품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The Theater of Disappearance>를 통해 하고자 했다. 모카 웹사이트 전시회 큐레이터에 따르면, 로하스는 전시물 설치 훨씬 이전부터 자주 게펜 센터를 방문해 전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시 계획을 짰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 사용된 주 재료는 전시용 냉동고와 온갖 잡동사니다. 전시 의도가 생성, 발전 그리고 보존(preservation)이 초점인만큼 작가가 택한 재료는 상하고 부패하는 어류 및 고기, 잘라내면 말라비틀어지는 나뭇가지와 꽃, 현대사회의 최고 보존 도구인 냉동고 그리고 생명이 없고 견고해 오래 시일 보존 가능한 콘크리트 덩어리 및 인간이 만들어 낸 생산물 등이다.

 


설치 미술은 작가의 작업실에서 완성된 그림이나 조각을 전시 공간으로 옮기는 게 아니라, 많은 경우 전시 공간에서 창조 활동을 다시 시작한다. 로하스 역시 꽁꽁 얼은 내용물이 가득 든 냉동고를 작업실에서 완성해 게펜 센터로 옮겼을 것 같지는 않다. 작가 머릿속에 있던 작품 구상을 토대로 전시 공간에서 작업을 시작해 작품을 완성했고, 전시가 끝난 후 해체 작업 역시 같은 공간에서 했다는 의미다. 마치 한 인간이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그의 작품은 게펜 센터에서 탄생하고, 전시되었고(성장하고), 그리고 해체의 과정(죽음)을 거쳤다.


 

대부분의 예술 작품들이 전시관을 '빌려' 단순히 '전시하는' 장으로 삼았다면, 로하스의 전시 <The Theater of Disappeance>에서 미술관은 전시의 장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럼, 전시가 끝난 후 이 작품들은 모두 어떻게 되었을까? 부유한 패트론이 구매해서 자기 집 거실 한편을 장식하고 있을지, 철거 후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전시 제목이 '사라지는 극장'인 것처럼 예술작품은 사라지고 게펜 센터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사실 이런 전시는 돈이 많이 든다. 그 넓은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냉동고 수십대에 재료값도 어마어마하고, 솔로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 냉동고 하나 옮기는 것도 혼자 힘으로 안되고, 사람 시켜 차로 운송을 해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일곱 달치 가까운 대관료는 또 어쩌고. 아무리 기막힌 구상을 예술가가 했다 하더라도 그걸 실행할 방법이 없으면 머릿속 공상에 그치고 만다.


이 전시가 가능했던 이유는 어떤 예술가의 정신 나간(?) 상상을 실현해 보라고 돈을 대준 후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비싼 돈 들여서 전기 플러그 빼 버리면 다 녹아버리는 그걸 작품이라고 만든 거냐고 반문하는 사람들한테 딱히 해줄 말은 없지만, 이 전시를 통해 로하스는 현대 미술에서 영원의 개념이 전통적인 그것과는 달라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밀로의 비너스처럼 백제 금동 대향로처럼 몇 백 년이 지나도 보존될 그럴 재료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만에 하나 이 작품이 후세에 발굴된다 하더라도 냉동고는 녹슨 고철 덩어리에 불과할 것이고, 내용물은 전부 부패해 버맀을 것이기에 작품을 완전한 형태로 감상할 수도, 작가의 창작 의도 또한 알 수 없을 거다.


예술이 과연 영원할까? 아니 꼭 예술 작품이 영원해야 하는 걸까? 로하스의 전시를 감상하고 난 후, 영원은 시간 개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퍼포먼스이기도 한 <사라지는 극장>을 통해 순간이 영원으로 통한다는 진부할 수도 있는 그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뇌어보게 되었다. 내 생애 처음 경험한 포맷의 이 전시는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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