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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ys Nov 16. 2021

라끄마 (LACMA)

내가 좋아하는 우리 동네 미술관

캘리포니아에는 모두 58개의 카운티(County)가 있다. 카운티라는 개념은 몇 개의 도시를 하나로 묶은 행정단위로 로스앤젤레스는 도시 이름이기도 하지만, 카운티 이름이기도 하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는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해 모두 88개 도시가 있다. 한국인이 비교적 많이 거주하는 세리토스, 토랜스, 다이아몬드바 같은 도시도 엘에이 카운티에 속해 있다. 또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 위치한 엘에이와 롱비치 두 항구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물류의 40%가 이곳을 통해 전국으로 공급된다.


남가주에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갤러리 말고도, 이런 카운티가 운영하는 미술관들이 있다. 앞서 언급한 엘에이 카운티가 운영하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이하 라끄마)과 오렌지 카운티가 운영하는 오렌지 카운티 미술관(OCMA. 이하 오끄마)이 우리 집에서 가깝기도 해서 흥미로운 전시가 있을 때마다 방문하는 곳이다. 하지만 미술관의 규모나 컬렉션의 방대함과 다양성을 고려한다면, 두 카운티 미술관을 동격에 놓고 보기엔 좀 곤란하다. 오끄마가 비록 몇 년 전 대대적인 미술관 건립 계획을 발표한 후 2022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에 착수하였지만, 라끄마는 이미 수십 개의 상설 전시관이 있으며 최소한 삼 개월 이상 지속되는 특별 전시도 줄을 잇는다.  (2021년 봄부터 브로드 컨템퍼러리 미술관과 레즈닉 전시관을 제외한 라끄마 캠퍼스의 구 건물들은 모두 철거되었고, 2024년 오픈 목표로 현재 공사 중이다)


라끄마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7천억 원가량을 모금하여 <빌딩 라끄마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몇 년에 걸친 레노베이션과 신축 공사 결과, 2008년 브로드 컨템퍼러리 미술관이 보강되었고, 2010년 레즈닉 전시관도 오픈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미술관 건물뿐만 아니라, 소장품 역시 현대적 색채를 많이 가미하게 되었다. 특히 브로드 컨템퍼러리 미술관은 건축물 자체도 매우 현대적이고 아름다워 라끄마를 방문하면 수많은 전시관 중 반드시 들려야 할 곳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재학 시, 여름 방학마다 라끄마에 그림 보러 놀러 갔다. 그때 투탕카멘의 유물, 살바도르 달리, 데이비드 키엠홀츠 (이전 글 참조) 그리고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회를 관람하였다. 이런 특별 전시전은 입장료 외에 따로 티켓을 구매해야 볼 수 있다. 티켓 구매 시, 특별 전시까지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상설 + 특별 전시 티켓을 끊을 수 있다. 2021년 현재 라끄마 상설 전시 성인 입장료는 카운티 거주민이면 20불, 비거주민의 경우 25불이다. 만일 무료 관람을 원한다면, 한 달에 한번 모든 관람객이 무료입장할 수 있도록 정해놓은 매달 두 번째 화요일에 미술관을 방문하면 된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그림에 대한 흥미가 감소됐기 때문에 미술관에서 주최하는 여름 야외 콘서트 하는 날 방문했다. (아마도 어렸을 땐 엄마 손에 이끌려했던 그림 구경이었던 모양이다)  라끄마의 후미는 라브레아 파크와 바로 연결이 되어 있는 관계로 야외 콘서트가 있으면 사람들이 블랭킷이랑 음료, 맥주나 와인, 음식 등을 싸와 피크닉을 하기 좋다. 애들은 잔디밭에 블랭킷 깔고 편하게 앉아 음식 싸온 거 먹으면서 음악 듣고, 난 음악 듣다가 그림 보러 미술관에도 들어가고 그랬다. 콘서트는 보통 저녁 6시부터 시작하고 미술관은 밤 9시면 닫기 때문에, 이렇게 콘서트 있는 날 저녁 미술관 입장은 무료다. 라끄마는 전시와 콘서트뿐만 아니라, 예술 영화도 상영하고, 십 대를 위한 파티도 주기적으로 연다.


수 차례 방문했던 라끄마이긴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난 2007년 열렸던 초현실주의 작가인 살바도르 달리의 대규모 전시회다. 지금 나는 비구상 계열 작품을 좋아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현대 추상 미술에 대한 이해도가 넓지 않았다. 또한 달리는 괴짜로 이름난 사람인만큼 작품 역시 명성에 맞게 기괴해서 나처럼 매사 low-key를 추구하는 사람의 취향과는 코드가 맞지 않는다. 당시 나는 라끄마 회원이었기에 전시회 오픈 전 프리뷰 파티에 초대받아 프라이빗한 분위기 가운데 달리의 많은 작품을 한 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었는데, 내 생애 처음 미국 미술관 행사를 경험한 것이었다. 영화에서 보는 것만큼 화려하진 않아도, 재즈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칵테일을 손에 들고 잘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림을 보는 기분이 꽤 괜찮았던 기억이 난다.


<Levitated Mass>

흥미로운 건 <빌딩 라끄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2년 <Levitated Mass>가 한진해운에 의해 리버사이드 카운티에서 라끄마로 운송될 때, 이 커다란 돌의 엘에이 입성을 축하하기 위해 당시 로스앤젤레스 시는 대대적인 퍼레이드를 벌이기까지 했고, 뉴스에 보도까지 됐다. 이 작품은 1969년 마이클 헤이저에 의해 처음 구상되었고, 12년 후인 1981년 캘리포니아 주 리버사이드 카운티에서 자신의 작품으로 적당한 456 피트 길이에 340 톤의 무게가 나가는 거대한 돌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당시 뉴스 보도를 통해 이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예술작품으로 거듭난 이 커다란 돌을 라끄마 야외 전시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관람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고 느꼈다. (위 사진 참조) 또한 그제야 작품의 제목을 그렇게 붙인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었고, 작가가 머릿속에 구상하던(envision)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라끄마는 2015년 개관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있었다. 그만큼 역사도 오래되고,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미술관 개선 공사뿐만 아니라 좋은 (혹은 유명한) 작품도 뮤지엄 컬렉션에 계속 추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동네 미술관이라는 명칭보다 사실 규모와 컬렉션 측면에서 그리고 도우너(donors. 기부자) 프로파일을 보더라도 월드 클래스 미술관에 더 가깝다. 그래도 나에게 라끄마는 부담 없이, 시간이 허락하면 언제나 방문할 수 있는 우리 동네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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