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의 현장을 찾다
설화를 찾아서
운명인가?
"운명이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은 이 말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한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수지에서 미끼도 없는 낚싯대를 던져 놓고 해가 져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날들로 보냈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 해서 내 삶이 나아진 것도 아니다. 또 세상이 좋아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준 것이라고는 "자신감"이다. 지역주의에 맞서 도전하고 실패해도 늘 자신감에 찬 표정과 말씨. 그것은 내게 큰 용기로 보였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태어나 처음으로 경상도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홍오와 빨갱이라 비하하는 말들이 넘쳐났었다. 타지로 직장을 구한 친구들이 고향에 돌아오면 지역차별이 간혹 있다는 말도 들었다. 대학을 나와 좋은 기업에 취직한 친구들보다 그러지 못한 친구들이 받는 차별이 심했다. 괜한 차별과 이상한 시선으로 위축될 것 같아 타 지역에는 거의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경상도 출신의 노무현은 빨갱이 소리를 들어가면서 지역주의에 맞서 당당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첫 주말에 경상남도 함양에 갔었다.
함양의 시장과 도심을 걸으며 들려오는 사투리. 방송에서나 들어 봤던 말들이 내 삶에 들어왔다. 시골인심은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멀리서 왔다며 한 움큼 더 주시는 시장 할머니의 인심에 그동안 내가 이유도 모른 체 마음의 벽을 쌓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은 사람이면 지역이 어떻고 무슨 일을 하면 어떻겠는가. 사람들에게 나쁜 짓 해 본 적 없는 내가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더 많은 지역을 갈 수 있었다.
마룡지와 용샘
마룡지를 찾은 것은 우연이었다. 낚시꾼들이 저수지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일이 많아져 저수지 인근의 마을 사람들은 낚시꾼을 반기지 않는다. 그리고 낚시 금지푯말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곳은 가까울 뿐만 아니라 간혹 누군가 낚시하는 모습이 보여 가게 됐다. 물고기 잡기 위해 낚시 했던 것도 아니다. 낚시는 나에게 생각을 비우는 시간이었다. 오랜 시간 앉아 있으며 사색을 하지만 조금 하다보면 아무 생각 안 하게 된다. 생각들을 지우는 시간이다. 깨끗하게 생각을 비워냈다. 대부분의 낚시꾼들이 그렇듯이 생각을 비우고 집에 돌아가면 아내들의 잔소리로 채우게 된다. 다행히 나에게는 잔소리 할 아내가 없고 부모님도 더 이상 아무 말 없으셨다. 그래서 다른 무언가로 채울 수 있었다. 그것이 서동설화다.
마룡지는 원래 두 개의 연못이 합쳐진 저수지다. 연이 많아 연방죽이라 불리던 연못과 수신인 용과 서동의 어머니가 관계하여 백제 무왕이(서동) 태어났다는 탄생신화가 깃든 용못. 두 저수지가 훗날 합쳐지게 되었은데, 서동이 마를 팔았었다는 것과 용과의 결합된 의미인 마룡지라 한다. 마룡지 북서쪽에는 서동의 어머니가 빨래를 했다는 용샘이 있다. 설화라 전해지는 이야기가 생생한 현장감을 줄지는 몰랐다. 그리고 마룡지의 서쪽에는 대왕릉과 소 왕릉이 있는데,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 추정하고 있다.
무왕과 노무현, 그 둘의 공통점이라면 가난하게 성장해 통치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갔지만 남겨진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가 준 자신감 만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서동설화는 그리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저 흔한 교과서에서 일연의 삼국유사에 실렸다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 새롭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노무현이 준 자신감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설화가 됐다. 그리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기준왕과 궁남지
국가, 이념, 지역, 세대를 넘어 전해 온 것이 설화다. 이념으로 재단할 수 없으며 세대를 이어 전해질 수 있는 것, 옛사람들의 삶과 감정이 담긴 설화는 높디높은 지역주의라는 장벽을 넘어설 도구가 될 것만 같았다. 무왕이라는 권력자가 아닌 서동이라는 평범한 청년의 이야기. 설화 속의 수많은 평범했던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고자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무왕의 무덤이라는 쌍릉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삼국지에 기자 조선의 40대 왕이라 추정하는 준왕(準王)은, 진시황秦始皇의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무렵 위만이 조선에 망명을 요청해 준왕이 수락했으나 위만이 중 국민 들을 규합해 모반을 일으켰다 한다. 위만을 피해 지금의 전라북도 부안 해안가에 도착한 준왕은 지금의 익산 쌍릉이 있는 곳인 금마지역에 한韓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자신을 무강왕武康王이라 칭했다. 그의 왕위를 승계한 아들은 마한을, 다른 두 아들은 진한과 변한을 세웠다는 향토사료의 기록이었다. 또한 무왕의 탄생신화는 마룡지에만 전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충남 부여의 궁남지에서도 전해지고 있었다. 설화에는 사실이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는 것일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부여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기나 긴 여정이 될 줄 은 모른 체 설화의 세계에 들어가게 됐다.
가난해도 괜찮아!
부여와 공주를 갔다 온 뒤로 설화를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았고 계획을 세워 답사를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필요한 장비와 경비를 위해 돈이 필요했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많은 돈을 저축했던 것도 아니다. 겨우 차 한 대뿐이었다. 그리고 글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돈인 세상에서 일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글로 정리할 시간을 내야 했기에 많은 돈을 모을 수도 없다. 가난한 자에게는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래도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만이 문제였다.
장비
글을 정리하고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가벼운 노트북과 현장을 기록할 카메라와 현장을 찾을 내비게이션이 필요했다. 노트북과 카메라를 담는 카메라용 가방, 삼각대, 취사도구 등등의 물품들의 준비가 먼저였다. 그리고 자료가 될 책을 구입하고 논문들을 검토했다. 논문들을 읽으며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 때문에 현장을 더욱 찾게 되었다는 점에서 고맙기는 하지만, 텍스트에 갇힌 해석이라 실망할 수 있다. 그나마 책에 채록되지 않은 설화를 확인할 수 있기는 했다.
시기 정하기
해가 길어지는 봄부터 짧아지는 가을까지 답사와 글로 정리할 시간으로 정했다. 아무래도 해가 길어야 여러 곳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거리가 긴 여행이 될 수도 있고 하루에 산을 몇 곳 올라야 할 때도 있다. 기록할 카메라는 빛이 있어야만이 대상을 담아낼 수 있기도 하다.
몸 만들기
많이 걷거나 산을 올라야 하기에 가벼운 몸은 필수다. 그리고 적게 먹을 수 있게 위의 크기도 줄여야 한다. 그래서 일할 때에는 많이 먹어 살을 찌우고 답사 가야 할 때가 오면 점차적으로 먹는 양을 줄였다. 먹는 양만 줄여도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살이 빠졌다.
먹거리
고기만을 먹기로 했다. 일하면서 알게 된 것은 힘든 일일수록 육류를 많이 먹게 한다. 소화가 잘 되지 않아 포만감이 오래가고 열량이 높기 때문이다. 또 고기에는 기름이 많아 여름철 삶으면 기름이 물 위에 떠 부패를 방지한다. 며칠 놔두고 먹을 수 있다. 가장 저렴하면서 많이 먹을 수 있는 돼지고기로 정했다. 고기만 먹을 수는 없기에 간장이나 소금과 함께 먹기로 했다. 무더운 여름에는 염분 섭취로 탈수현상을 막아준다.
여행할 돈
식비와 숙박비는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래서 차 안에서 잠을 자고 거리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주로 개방화장실이 있는 곳이나 대형병원이 주차하고 식사할 곳이 됐다. 자동차 연료비는 아낄 수 없었다.
여행 방법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그 지역의 지도가 있는 시청과 군청이다. 그곳에 없으면 관광안내소를 찾는다. 지도를 얻은면 도서관에서 자료를 검토하고 찾아갈 곳을 정해 지도에 동선을 짠다.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다음 찾아갈 시와 군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마지막 행선지로 정한다. 산은 하루에 두 곳 이상은 오르지 않는 것이 좋다. 시간이 남는다면 올라도 좋지만 체력 소모가 심하면 다음 날 여행에 지장을 준다. 해뜨기 전에 식사와 세면을 마치고 도서관이 열리는 9시 이전에 두어 곳 갈 수 있다. 대체로 열 곳 찾으면 두 곳 찾을 수 있었다. 시골을 다니다 보면 농번기 철에는 좁은 길에서 농기계를 마주치기 일쑤다. 그래서 8시 이후와 점심시간 집에 돌아가는 시간, 그리고 일을 마치는 해질녘에는 되도록이면 피했다.
잘 몰라도 괜찮아!
이 분야를 전공하지 않았고 글을 써본 적도 없다. 사전 지식이 없기에 봐야 할 자료와 현장이 많았다. 전문가가 보기에는 실패한 기록일 수도 있다. 작가가 아니라서 보기 좋은 글이 아닐 수도 있고, 의도를 지속시키며 써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역사라는 것이 권력자들의 이야기이지만, 설화는 이 땅에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애환과 감정을 설화를 통해 지역을 넘어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 선조들이 지역을 넘어 이야기를 통해 삶을 함께 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그래서 지역주의라는 것을 벗어날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설화 여정이 끝난 것이 아니지만, 지역과 세대를 넘어 설화를 찾아가는 평범한 누군가의 설화여정에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