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회화의 전시관
"임제선사(~ 867년, 당나라 선승)의 소식은 전해 왔는가?",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전해오지 않았습니다." 제자가 답했다. 임제라는 선사의 소식은 끊겼으니 스승의 의식과 경험의 세계에서는 나타날 수 없다. 진리, 혹은 지식이라는 개념적인 용어가 선명한 것인가 아니면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 선명한 것인가. 이 질문에 인류는 오랫동안 진리, 혹은 지식이라고 답했던 시절이 있었다. 종교와 사상적인 것들을 구체적인 삶 속에서 마주치기를 바라왔고 그것을 실현하기를 원했었다. 관념의 세계를 선명하게 하기 위해서 개념이라는 범주를 만들고 이념을 만들며 신념으로 실천했다. 하지만 여전히 관념의 세계는 안갯속과도 같았다. 오히려 선명하게 다가온 것은 직접적인 삶에서 마주치는 경험적인 것들이었다.
에도 시대의 목판화 "우키요에"의 대가 안도 히로시게의 동해도 오십삼 경이다. 세차게 불어오는 비바람을 맞으며 탁발승들은 어느 곳으로 향하고 있다. 어디로 향하는지는 몰라도 그들의 방향만이 선명하다. 멀리 있는 나무와 갈길이 아닌 곳은 희미하다. 직접적인 경험의 관계가 아닌 것은 그림에서 생략된다. 시야가 확보된, 눈 안에 들어오는 것들 중에서 선별해서 생각에 담는 것처럼 그림은 탁발승의 시야로 그렸다. 이것이 서양 인상주의 화풍에 커다란 영향을 준 일본의 목판화 우키요에의 특징이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에른스트 셰스너는 일본 회화에 관해 장식적(mise en scène 미장센)이라며 혹평했다. 로코코 양식이 유행하던 유럽에서 일본 미술은 장식성 때문에 귀족들의 호평을 받았고 예술 비평계에서는 로코코 시대를 벗어나려던 의욕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에른스트 셰스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셰스너도 말년에는 장식성에 가려진 인간성이 담겼다고 고백한다. 일본의 우키요에에 감명을 받은 작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을 후대에 일컬어 인상주의 화가들이라 말한다. 중세를 넘어 근대와 현대를 열어준 인상주의는 유럽이 아닌 저 먼 일본에서 시작된 것이다. 일본 회화는 미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도 예술가들에게 일본 회화는 상상력의 원천이다. 그 공로에 헌사하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개들의 섬을 통해서 서양 미술사에 무엇을 주었는지 말해보고자 한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용어의 선택이다. 훌륭한 미장센의 향연이라거나 미장센이 압도적이라는 말로 영화를 말하고, 그 미장센 자체를 설명하는 것을 생략하기도 하는데, 이 글에서는 그 미장센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장식성이라는 회화 용어를 사용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들은 장식적이다. 색채, 배우, 소품들마저 철저히 계산해 배치한다. 그의 미적 감각에 영감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의 회화다. 일본 회화에 찬사를 보낸 작품이 개들의 섬이다. 개들에게 전염병이 퍼지고 개들을 싫어한 시장 고바야시는 개들을 모두 없앨 생각으로 외딴섬으로 보낸다. 한 소년이 개들을 구한다는 아주 간단한 스토리다. 스토리가 간단하다면 영상은 간단하지 않다. 영와 내 장면들은 일본 회화의 기법들이 모두 동원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면 장면 모두 일본 회화에서 착안한 장면들이다. 첫 장면부터 웨스 앤더슨 감독이 일본의 회화 역사에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의 시작은 한 신사에서 시작한다. 빈 여백이 없이 화면 가득한 장면은 11세기 일본 헤이안 시대 여류 소설가인 무라사키노 우에의 겐지 모노가타리 에마키의 작품의 삽화의 기법을 그대로 가져왔다. 겐지 모노가타리 에마키(모노가타리는 이야기, 에마키는 두루마리를 의미한다)의 삽화는 여백 없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시야는 제한적이다. 이렇게 가득 찬 화면은 가상의 공간을 의미한다. 바로 이어서 개들의 섬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 삽화에서 착안한 가상의 공간에서 시작한다. 이것 또한 헤이지 모노가타리 에마키(미나모토 가문과 타이라 가문의 유혈극) 삽화다.
일어난 적 없는 일이나 과거에 있었던 일을 재구성해 이야기로 만든 두 이야기의 삽화는 화면을 가득 채운다. 가상의 공간은 저 안의 시선이 아니라 그림이나 이야기를 읽는 사람의 시선이다. 그래서 삽화는 가상의 공간이 된다.
마네, 르느와, 고갱, 고흐 등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일본의 우키요에를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다. 그들은 무엇에 열광해서 일본에서는 한 물 간, 도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쓰였던 우키요에에 열광했던 것일까.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파도와 후지산의 모습을 담은 우키요에다.
하늘과 물은 오랫동안 관념의 세계였다. 서양에서는 미의 여신 비너스가 바다에서 육지로 향했으며 일본의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동생 스사노가 바다의 신이다. 이처럼 신화와 관념의 세계이기에 평온하게 그려졌다. 그런데 에도시대의 우키요에에서는 물리적 단위로서 그려졌다. 성난 파도의 끝은 스모선수들의 손처럼 배들은 위태롭게 하고 그 사이에 멀리 후지산이 보인다. 하늘은 침묵하듯 무채색이다. 바다는 신화적 공간이면서 인간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 좌우의 대칭성을 깨뜨림으로써 위기라는 심리적 극대화를 이끌어낸다. 관념의 존재였던 바다가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우키요에를 통해서 물리적 공간이면서 인간의 심리적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상주의 화가들은 보았던 것이다. 이것을 보다 확장시킨 화가가 고흐다.
하늘 뿐만이 아니라 달과 별, 바람도 물리적 단위로 표현했다. 고흐는 그것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개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인간사회처럼 대자연도 저마다의 무게와 빛깔로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당대에 고흐의 작품은 인정받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하늘은 보다 더 관념적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경호견이었던 스포츠를 찾아 나서는 소년 아타리가 개들과 함께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장면이다. 일본에서는 관념의 세계가 표현된다. 중국의 남송 화풍의 영향을 받은 문인화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것이 다시 우키요에에서는 기법이 아닌 생각으로 표현된다. 삶의 영역과 죽음의 영역으로 분리하기는 하지만 둘은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음와 양이 그렇듯 함께 공존한다. 음은 무채색으로 표현하고 삶의 영역인 양은 화려한 채색으로 장식된다. 감독은 친절하게도 채색 비율인 듯한 1대 8이라는 숫자까지 제시해 주고 있다.
한 여인이 늦은 밤 등을 들고 신사를 찾았다. 바람이 거세지자 우산을 접고 등의 불이 꺼지나 살펴본다. 날씬한 육체는 이내 바람에 꺾일 듯 비튼다. 스즈키 하루노부의 비 오는 한 밤에 신사 참배를 하는 미인도에서 인간 삶의 것들은 화려하게 채색되어있다. 나머지 여백은 무채색이다. 의미 없는 무채색의 바탕을 무시하고 여인에게 모든 시선이 모아지게 된다. 옛 일본 화가들의 관심은 인간 삶에 있었다. 화면 가득 의미 있는 것들로 채워야 했던 서양화가들은 일본 화가들의 여백의 이용에 감탄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그려 넣을 필요 없이 감각으로 받아들인 인상적인 것들을 그려 넣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채워도 된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낯빛이 어둡다, 혹은 밝다는 말을 통해서 한 인물의 심리적 상태, 감정을 알 수 있다.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측의 고바야시 시장과 좌측의 그의 집사의 얼굴의 빛깔로 늙음과 사악함을 표현해낸다.
얼굴 표정을 보면 꽉 다문 입술과 치켜뜬 눈동자가 있는 힘을 다해 부딪칠 상대를 향하고 손은 앞으로 향하며 상대를 밀쳐낼 준비가 되어있다. 얼굴 표정은 아주 단순한 평면이면서 검은 선으로 표현한 입을 통해서 배우의 내면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있다. 10개월의 짧은 활동 동안 140여 점의 우키요에를 남겼지만 그것만으로 일본의 천재화가라 평가받는 샤라쿠의 가부키 배우 우키요에다. 아마도 배우는 스모선수의 역할이었던 모양이다.
우키요에는 가부키 출연자들의 브로마이드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래서 잘 그려진 우키요에는 관객이 소장하기도 했다. 가부키 흥행에 중요하기도 했다. 샤라쿠의 정체에 관해서 수많은 샤라쿠 연구자들만큼 샤라쿠도 존재한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추측을 낳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당대에 샤라쿠의 작품은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가부키 배우의 우키요에는 극 중 한 장면을 그렸다. 하지만 샤라쿠의 우키요에는 너무 과도하게 내면의 심리를 표현하다 보니 배우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졌다. 아마도 샤라쿠의 활동이 단 10개월이었던 점은 수준 미달의 실력으로 평가받았거나 가부키의 흥행이 참담할 정도로 관객의 외면을 받은 이유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스즈키 하루노부의 미인도의 표정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무채색이다. 샤라쿠의 가부키 배우는 붉은 눈과 엷은 피부로 표정을 그려낸다. 서양화가들이 표정을 표현할 때 얼굴 근육을 밑바탕에 놓고 그렸다면 하루노부와 샤라쿠는 면에 아주 단순한 선으로 표정을 완성했다. 단순하면서도 내면의 깊이가 표현되었다는 점이 놀라웠을 것이다.
개들의 섬은 단순한 스토리 안에 다양한 시각적 볼거리로 가득하다. 블록버스터처럼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으로 채우지도 않았으며 액션영화처럼 인간육체의 무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만 한 국가의 회화 역사를 넣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영화다.
소년 아타리가 개들의 섬으로 타고간 비행기가 추락하는 장면을 보고 2차대전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의 야만성을 전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일본회화가 미국에 알려진 것은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 한창일 때 워너 페네로사에 의해서다. 그는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 교토와 나라는 폭격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미국 정부에 했다. 적국의 미술을, 반일감정이 최고조였던 시기에 역설적이게도 일본회화를 미국에 알렸고 미국 예술가들은 환호했다. 웨스 앤더슨도 일본의 폭력성 이전의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가득했던 예술가들의 시대로 시간을 되돌리고자 한 것이다. 관객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장면까지 철저히 일본회화적이다.
일본의 문인화가 중국 남송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일본풍경화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산천을 뾰족하게 그렸던 중국과 한국의 수묵화와는 다르게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그렸다. 개들의 섬에서도 쓰레기산의 표현은 곡선이다. 개들의 섬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멈춘다. 감독의 색채, 장식성은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지 않은 많은 것들은 당신의 세심하고 사려깊은 시선을 개들의 섬은 기다리고 있다. 서양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일본 회화에 대한 헌사인 개들의 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