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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꼭그래 Sep 23. 2018

사물의 상태

영화, 감각의 언어

비극의 탄생


아테네 히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출처 :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 logid=04eS4&articleno=15715072&categoryId=86980&regdt=20180221120123


디오니소스의 축제장에서 여러 작가들은 최대 3개 정도 연극을 올릴 수 있었다. 인기 있는 작가는 더 많은 작품을 올릴 기회가 주어졌을 것이다. 연극들은 주로 신적인 능력을 가진 영웅들의 활약상이었다. 자신들에게 풍요를 가져다준 신과 영웅에게 감사와 찬양을 하기 위해, 또 축제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시작된 연극은 같은 내용의 반복으로 관심은 떨어져 갔다. 또 다른 이유로는 영웅들에게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천편일률적으로 뻔한 서사인 악인을 처벌하는 연극은 통쾌하기는 하지만 흥미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선인과 악인이라는 확실한 구별은 자신과 연결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영웅도 아니고 악인도 아닌 관객과 같은 평범한 인간을 등장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평범한 인간의 고난과 성취라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관객들의 삶과 같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을 눈치챈 작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에게 묻다


극이 시작되면 도르래 같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묶여 허공에 매달려 신의 역할을 한다. 우리 선조들이 저승 명부에 인간의 수명이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스인들도 신에 의해 모든 존재의 운명과 서사까지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극이 시작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  :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좀처럼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를 신을 등장시켜 문제를 해결하고 극을 마무리하는 무대 장치. 신을 연기하는 배우가 기중기로 허공에 매달리고 등장한다 해서 신을 등장시키는 기계, deus ex machina(God from the machine)라 한다. 그리스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에서 처음 등장했다.


고난과 재앙을 초래하게 되는 원인은 평범한 인간의 신체적, 지적 결함에 의해서 초래되어야 설득력을 갖는다는 것을 작가들은 알았다.  인간의 결함에 의한 실수가 초래한 재앙의 크기가 인간이 해결하기에는 커지면 신의 권능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그런데 등장하는 인간에 공감하면서 재앙의 크기가 부당하게 느껴지게 된다. 물리적 힘과 예언자적 통찰은 여전히 신에게 맡겨져야만 했지만 이 부당함은 보상받지 못했다.


고난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이 해결을 함으로써 마무리가 너무 쉽게 정리됐다. 작가는 관객의 비판에 직면한다. "공정함은 어디 있는가?" 작가뿐만 아니라 신에게 질문이 던져진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이야기를 보면 신에 의한 서사가 아니라 결함이든 능력이든 인간이 능동적으로 운명을 만들어 낸다.


프레데릭 샌더스, 독약을 만드는 메데이아

출처 : 중앙시사매거진, 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321799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이야기에서 비극을 초래한 것은 메데이아가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메데이아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현자 케이론 밑에서 헤라클레스와 함께 수행했던 이아손은 아르고호 원정을 통해 황금 양모를 구하기 위해 콜키스로 향했다. 콜키스 지배자의 딸이었던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죽이려던 아버지의 명령에 따른 동생을 죽이고 이아손을 구해낸다. 조국과 가족을 배반하면서까지 이아손을 사모했지만 이아손이 새로운 아내 크레우사를 맞아들이자 이아손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크레우사에게 독약이 묻은 옷을 입혀 죽게 했으며 이아손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자신이 낳은 아이들마저 죽게 한다. 이아손을 떠나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 1세와 결혼해 아들 메도스를 낳지만 아이게우스의 장자인 테세우스가 찾아오자 그를 독살하려 했으나 실패한다. 고향 콜키스로 아들과 돌아가고 아들 메도스는 콜키스의 왕이 된다. 메데이아는 고향 콜키스에서 죽는다.  사랑, 질투, 권력에 대한 탐욕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극 초반에 메데이아가 뱀이 끄는 수레를 타고 자신의 운명을 예언하는 장면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사용된다. 그녀의 운명을 좌우한 것은 신이 아니라 가슴 안에 있었던 감정이었던 것이다. 에우리피데스는 관객들의 인간적인 격정을 끌어내려했다. 그것은 적중했다. 그의 연극에 그리스인들은 열광했다.


사물의 상태


그리스인들이 신에게 질문을 던졌다면 1982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사물의 상태(The State of Things)는 인간인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의 의미는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과 세상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알거나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인간적인 삶의 지향점이라는 것이다. 빔 벤더스 감독은 영화 "사물의 상태"를 통해서 물음은 무엇인지, 질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말하고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현대적 변용


작가주의 영화들이 그렇듯 사물의 상태도 간략한 스토리에 감독의 생각을 담아냈다. 이 글에서는 영화를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것들만을 언급할 것이다. 먼저 간략한 스토리를 보자면, 프리드리히라는 독일인 감독이 포르투갈에서 생존자라는 흑백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제작비가 바닥나자 촬영은 중단된다. 감독 프리드리히가 미국의 LA이로 찾아가 투자자 고든을 찾지만 고든이 돈을 끌어온 곳은 마피아였다. 둘은 마피아의 총에 죽는다. 스토리가 가진 내용으로 보자면 저예산 영화의 현실을 고발하는 것 같다.


감각의 제국, 할리우드


사물의 상태가 제작되던 198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ET, 블레이드 러너, 백 투 더 퓨처, 고스트 버스터즈, 다이하드, 배트맨, 스타워즈 등이 제작되었다. "사물의 상태"가 제작되기 이전에도 이미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제작되었다. 대부, 지옥의 묵시록, 스타워즈가 제작되어 블록버스터의 서막을 알렸다. 1980년대 영화의 공간은 우주로 확장되고 색채와 음향을 통해서 감각의 즐거움까지 주기 시작하던 때였다. 80년대부터 영화계는 블록버스터의 전쟁터가 되었다. 마피아와 베트남 전쟁을 통해 주류 사회를 비난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며 당대 예술계에서도 비주류의 하위문화를 통해서 주류 사회를 공격하던 때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빔 벤더스 감독은 할리우드이 추구하던 방식과는 상반된 영화를 제작한다. 간결한 스토리, 흑백 영상, 음향은 멋진 음악이 아니라 대화와 파도소리, 라디오, 악기 연주 등 인간 삶의 생활 소리다. 그럼으로써 신의 은총이나 불행의 전복이 일어나지 않는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 영화적 재미가 전혀 없다. 대체 이런 영화를 왜?라는 질문이 영화"사물의 상태"의 오프닝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영화는 빔 벤더스의 메시지를 주의 깊게 읽어야 하는 대화 같은 영화다.


생존, 인간에게 묻다

생존자라는 영화 속의 영화 촬영 장면에서 시작된다. 생존자의 배경은 온통 황량한 사막으로 변한 지구다. 한 아이가 살아갈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어른이 하얀 붕대에 약품을 묻혀 죽인다. 그리고 그들이 찾아낸 곳은 아테네 히로데스 아티쿠스 극장과 비슷한 곳이다. 영화상에서는 감독과 배우들이 머무르는 호텔이다. 영화 속의 영화는 이곳에서 촬영을 중단하게 되지만 빔 벤더스의 영화는 이곳에서 인간의 고난을 보여주게 된다. 아이의 죽음과 같이 그들의 운명도 그러할 것이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도 같은 암시를 주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존재의 대사슬, 샹하이 비엔날레  the great chain of being,  planet trilogy

출처 :  https://www.artsy.net/article/artsy-editorial-the-shanghai-biennale-finally-ditches-the-overdone-dichotomy-between-east-and-west


하나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그들의 연결고리가 풀어지려 한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의 연결고리가 얼마나 느슨했었는지, 신뢰의 고리가 강력하다면 생기지 않을 배우들의 불안한 심리를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에서 3분의 2 가량을 차지한다.


흑과 백, 매카시즘


"흑백은 사물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영화 속 감독인 프리드리히는 흑백영화를 만드는 이유에 관해서 이렇게 말한다. 촬영기사는 바비 먼로(메릴린 먼로)를 이야기하며, 감독과 배우가 읽으려는 책은 1956년 존 웨인이 주연한 "수색자"의 원작이다. 이것들을 통해 빔 벤더스 감독은 미국의 매카시즘을 이야기한 것이다.


바비 먼로 : 마르릴 먼로를 섹스 심벌로 한 인형
수색자 : 매카시즘 열풍으로 흑백 논리에 따라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해 내던 미국을 상징한다.


서양 철학에서 대립적인 흑백논리와는 다르게 동양에서는 상호 관계성에서 존재한다. 흑이 있어 백이 있을 수 있다. 부정적이며 악마적 상징인 흑과 긍정적이며 선함의 상징인 백이 세상 어느 곳 어느 문화에서도 확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인도 출신의 영화감독 라트윅 가탁(Ritwik Ghatak 1925~1976년)의 영화 이유, 토론 그리고 이야기(reason, debate and story)에서의 한 장면의 의미를 빔 벤더스는 그대로 가져왔다.

리트윅 가탁, 이유, 토론 그리고 이야기(1974년)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vemvzCE6GAU


알코올 중독 때문에 자신을 떠난 아내를 찾아가는 지식인 닐칸다는 숲 속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대기근, 인도 분할, 파카스탄으로부터 독립 전쟁, 닉살라이트(마오주의)들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하지만 경찰의 급습으로 모두 죽고 만다. 경찰들이 쏜 총탄의 화약 연기가 숲 속을 하얗게 채운다. 하얀 연기는 경찰에게는 선한 의지이지만 숲 속으로 도망 온 사람들에게는 잔인한 학살이다. 흑백논리,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각각의 사람들이 무엇과 관계하고 있는지에 따라 선악이 결정된 것이다. 닐칸다는 그들과 잠시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죽게 된다.


노자도덕경을 보면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낳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이루며, 긺과 짧음은 서로를 드러나게 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존재는 서로를 생성시키며, 이루어지게 하며, 한 존재의 소멸을 통해서가 아니라 서로 존재하는 상태에서 서로를 드러나게 한다. 5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쓴 매카시즘으로 인하여 미국인들은 흑백논리에 따라 공산주의자라는 악인이 결정되고 그들과의 관계에 따라 자신이 미국과 미국의 역사에서 퇴장이라는 결정을 지켜본 것이다. 70년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운동이 확산되고 80년대 하위문화를 통해서 주류사회를 동양 사상으로 미국의 주류사회(정치, 경제)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사물의 상태


노충현, 동물원

출처 : http://www.mise1984.com/magazine?article=1282


노충현 작가의 동물원의 한 공간이다. 원숭이들이 오가던 사다리가 좌우로 걸려 있다. 이곳에서 원숭이들을 빼낸다. 작가는 그런 다음 벽면에 원숭이 그림을 걸어 놓는다. 원숭이들을 이 공간에서 빼낸 것이다. 어쩌면 자유를. 그런 다음 원숭이 그림마저 없앤다. 그렇다면 이 공간은 새로운 공간으로 생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동물원이라는 말에 따라 여전히 보이지 않는 원숭이가 저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어떤 단어나 말에 의해 상태가 결정 된 곳을 역사적 공간이라 한다. 그리고 그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창조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삶이다.


반전을 외치면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히던 60 - 70년대의 불안감을 미소로 감추지만 그들의 내면은 늘 불안했다. 영화 속에서 배우들은 각 방에 걸려있는 거울을 마주하지 않는다. 천으로 가리거나 존재조차 의식하지 않는다. 그런데 불안이라는 말로 내면의 공간은 재창조되지 않는다. 이미 닫혀 있는 공간 이라서다. 외부와 관계할 수 없고 들여다볼 수 없는, 무덤과 같이 감각이 죽은 공간이다. 우리는 이성보다는 감각을 통해서 외부와 연결된다. 감각이 죽은 공간은 시대의 표준이라는, 어떤 수식어로도 외부와의 관계 설정을 통해서 재창조될 수 없는 역사가 된 곳이다. (가령, 광화문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를 지금 한다고 상상해보자. 그곳은 지금 폐쇄된 역사의 공간이 되었다)그렇다고 감각이 진실을 알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수채화 허상

우리가 본다는 것은 진실을 보는 것일까. 저 도화지 안 파란 곡선의 막대는 파란색과 흰색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눈으로는 중간에 푸른색 하나가 더 있다고 보인다. 색을 찾는 뉴런보다 경계를 찾는 뉴런이 더 많아 생기는 현상을 수채화 허상이라 한다. 자신의 시선이 정확하지는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자신들의 불안했던 내면을 미국 사회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어 미국이라는 물리적, 사상적 공간을 등지고 숲으로 향했던 히피들처럼 캠핑카에 몸을 의지한 채 미국을 떠도는 고든을 프리드리히는 찾아낸다. 그렇다고 빔 벤더스 감독은 히피들을 칭찬하지 않는다. 캠핑카를 운전하는 허버트를 히피의 상징으로 등장시킨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시선을 고집하는 것으로 그린다. 영화 내내 차분한 말투와 표정으로 자신의 불안을 감추는 위선자인 프리드리히와 자본에 기대어 살던 고든과 함께 죽는다.


빔 벤더스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이야기(역사)는 이야기(역사) 속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인생은 이야기(역사)가 없어도 진행된다.
그러므로 역사가 계속되듯이 내 삶이 계속되는 한, 역사에서 빠지겠다.


빔 벤더스 감독의 "사물의 상태"는 죽은 역사의 공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삶의 공간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기준에 좌우되지 않는 시선, 나와 외부와의 관계는 끊임없이 생성되는 삶의 이야기, 피부를 뚫고 저 깊은 내면에 도달하려는 감각의 언어로 끊임없이 관객에게 질문을 던져 관객을 살아 있게 하려는 것이 영화라고 말한다. 그래서 영화 속의 감독 프리드리히는 죽음은 영화속의 영화의 죽음이자 감독의 죽음으로 미완의 역사로 폐쇄된다. 빔 벤더스 감독은 지금까지 늘 새로운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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