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또 하나의 생명체가 들어왔다.
아이의 고집으로 물고기를 한 마리 들인 것이다.
강아지 한 마리도 꾸역꾸역 키우는 나로선 물고기의 등장이 결코 달갑지 않았다.
아이는 강아지 똥오줌 정도는 도맡아 치울 수 있다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데려온지 4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똥오줌 치우는 건 물론 산책, 목욕 등등 강아지에게 정성을 쏟는 건 가족 중 나 한 사람밖에 없다.
물고기 역시 물 갈아주는 일부터 배식, 관리 모두 도맡겠다고 손가락까지 걸며 약속을 하고 데려왔지만 왠지 모르게 어항을 닦고 있을 내 모습이 눈에 선했다.
어쨌든 물고기를 데려온 첫 날부터 나는 물고기에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아이에게 책임감을 강요했다. 다행히 강아지를 처음 데려왔을 때보다 아이가 많이 성장해서 물고기는 제법 잘 관리하는 중이지만 그래도 내 성에 차지는 않기에 의식적으로 어항을 보지 않는다.
저녁 반찬으로 소고기를 구워먹은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치우고, 씻고, 자리에 누워 아이에게 물고기 밥을 줬는지 확인을 하는데 문득 '고기'라는 말이 굉장히 낯설고 불쾌하게 느껴졌다.
고기? 고기? 고기!
보통 고기는 살아있는 생명에게 쓰이지 않는 말이다. 살아있는 소는 '소'라고 부르지, 살아있는 소에게 '소고기'라고 하지는 않는다. 돼지, 말, 양, 닭 모두 그렇다. 죽고나서야 '고기'라는 단어가 따라 붙는다.
그런데 왜... 물고기는 살아서도 '고기'인거야?
심지어 어떤 물고기들은 죽을 때까지 사람에게 잡아먹힐 일 없는 관상용이기도 한데 왜 '고기'라는 끔찍한 이름을 살아서도 달고 다니는 걸까?
물고기가 새식구로 들어온 후 처음으로 물고기를 가만히 들여다 봤다.
"물고기야, 오늘부터 너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줄게.. 살아서 '고기'라는 말은 이제 듣지 말자"
그날 밤, 아이와 나는 물고기 이름을 짓기로 했다. 아이의 의견 99%를 반영해 입에 붙지도 않는 파루라는 이름을 지었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생명에게 고기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것에 만족하며 이렇게 식구를 하나 더 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