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내가 뭘 좋아했지?

3) '내'가 좋아하는 것 하기

by 하봄

남편은 나와 입맛이 참 다르다. 나는 생선, 닭발, 곱창을 매우 좋아했는데 남편은 생선 냄새도 싫어하고 닭발, 곱창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결혼 후 자연스럽게 나는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같이 먹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이제는 아이의 취향에 맞게 내가 변해가고 있었다. 노래를 들어도 항상 동요를 들었고, 내 밥은 아이가 먹다 남긴 밥이 될 때가 많았다.


어느샌가 '나'는 없어지고, '남편의 아내', '아이의 엄마'만 남은 그런 삶이 되어버렸다. 쳇바퀴 같이 도는 하루를 보내며 아이 낮잠을 재우고, 집안일을 하다 허리가 아파 잠깐 '후~' 숨을 내뱉으며 멈췄는데 순간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뭘 좋아했지?'




잊고 있던 '내가' 수면 위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설거지를 하다 중간에 멈췄다. 고무장갑을 빼고, 식탁의자에 앉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오늘은 하나쯤 나를 위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을 적었다. 번호를 적어가며 하나씩 나열해 보았다. 처음부터 쉬이 생각나진 않았다. 곰곰이 떠올려보며 적어 내려갔다.


해외여행, 호캉스, 날 예쁘게 꾸미기, 자연을 보며 산책하기, 마사지받기, 좋은 노래 듣기, 맛있는 음식 먹기, 친구들과 만나서 놀기, 문화생활, 좋은 향기, 독서, 창작 활동하기 등 어느새 15개의 목록이 완성되었다. 아이가 새근새근 자는 소리만 들리는 집.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목록을 보며 무엇부터 해볼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만으로도 미소 짓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한 감정이었다.




노래를 틀기로 했다. 가장 간단한 일이었는데, 못했던 일. 아기동요가 아닌 내가 듣고 싶은 우아한 클래식을 틀었다. '호텔라운지에서 듣는 고급스러운 재주 연주'라는 제목의 음악을 틀고 커피 한 잔을 내려 들고, 의자에 앉았다. 눈을 감고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호텔라운지에 머무는 것 같았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남겨둔 설거지를 하러 일어났다 음악 때문인지, 집이 호텔로 느껴졌고, 집을 정리하며 관리하는 나는 호텔리어가 된 느낌이었다.


집안일을 마치고 나니 샤워가 하고 싶었다. 뭔가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 것이 오랜만이었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만 로봇처럼 처리하고 있던 차에 내 안의 욕구가 반가웠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기분이 개운했지만, 한 가지 찜찜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좋은 향기가 나는 바디워시를 좋아하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늘 가장 저렴한 2개 묶음짜리 무향에 가까운 바디워시를 시켰었다. 그래서 집에는 무향 바디워시밖에 없었고, 무향으로 씻은 것이 아쉬워서였다.


'가격 차이가 얼마나 난다고. 아이에게 쓰는 것은 늘 가장 좋은 것으로 사면서. 나를 위해 그까짓 것 못 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머리도 다 말리지 않고, 쇼핑 앱을 열어 바로 내가 좋아하는 향의 바디워시를 시켰다. 그다음 날 배송을 받자마자 좋은 향을 맡으며, 샤워를 했고 찜찜한 기분 없는 산뜻한 기분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찾아서 하는 것들에 점점 재미가 들렸다. 내가 좋아하는 것 중 부동의 1위인, 해외여행이 매우 가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상 당장은 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을 가지고 좌절만 하고 있을 순 없으니, 간접 여행이라도 먼저 해보고 아이가 조금 자라 기회가 생기면 가기로 했다. 세계테마기행을 틀어보니 이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차올랐다. 여긴 꼭 가봐야지. 하는 마음과 함께 메모를 남겼다.


외면했던 나의 내면의 소리를 들어주며,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을 내 일상에 포함시켰더니, 큰 변화가 일어났다. 나를 돌봐준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고, 행복감이 차올랐다. 행복이 멀리 있을 줄만 알았는데, 지금-여기에서도 가능하구나를 느꼈다. 그 뒤 적극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리스트를 늘려가며 실행하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는가. 오늘은 당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해야 하는 일만 처리하는 삶에서 벗어나 온전히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언제부터? 오늘부터! 시간이 없다면, 딱 10분이라도 괜찮다. 당신의 삶이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풍성해지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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