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FK 북토크 <십분의 일> -
유독 회사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운 때가 있다. 긴 연휴 다음 날, 비오는 월요일 아침, 따사로운 봄 햇살이 내리쬐는 점심 시간, 야근이 확정된 저녁 시간 등... 그럴 때면 회사원 말고 내가 사장이 되어 나만의 사업장을 꾸려가는 모습을 그려보곤 한다. 향긋한 커피향과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카페도 좋고 퇴근 후 긴장을 풀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선술집이나 와인바도 좋을 것 같다. 하루종일 좋아하는 책과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동네 서점 주인도 좋아보인다. 하지만 막상 내가 퇴사를 하고 회사 밖에서 할 수 있는게 있을까 떠올려보면 막막하고 “회사 밖은 춥다”라는 구절만 맴돌 뿐이다.
(만약 주변의 누군가가 같이 한번 해보자고 권유했거나, 퇴근 후 일상에서 벗어나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자고 했다면, 막연하게 ‘언젠가 퇴사하면...’이 아니라 진작 뭐라도 시작해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이런 직장인들의 로망을 6년 전 실현한 이들이 있다. '청년아로파'.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에서 본 아누타 섬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협동조합 성격의 공동체라고 한다. 단순 와인바 공동 창업을 위해 모인 줄 알았는데, 이쯤 되니 이들 범상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지난해 겨울 저녁, 코로나와 추위를 뚫고 멤버들과 오아시스에 모여 청년 아로파의 핵심 인물이자 <십분의 일>의 대표인 이현우님을 모시고 <십분의 일>을 만들게 된 계기와 과정 그리고 책에 담지 못한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을지로를 대표하는 와인바 <십분의 일>은 ‘청년아로파’라는 10명의 평범했던 직장인이 모여 월급의 10%를 월회비로 내고 함께 사업을 운영해가는 프로젝트 그룹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과거 언론사 취업 준비를 같이 하던 청년 4명이 중심이 되어 10명의 구성원을 모으고, 을지로 철공소 골목에 공간을 마련하고, 손수 페인트칠해가며 와인바로 탈바꿈하기까지...“엄청 싸웠어요, 지긋지긋해요”라고 토로했지만, 현우님의 표정과 말투에선 멤버들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느껴졌다. 6여 년 시간동안 청년아로파의 ‘정관’도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사업장도 늘어나고, 시즌2도 생겨났다. 단순히 돈을 벌고 싶어서가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나눔과 협동 정신으로 함께하는 청년아로파 10명의 멤버들이 있었기에 시작할 수 있었다.
"열분의 멤버가 공통으로 공유하고 추구하는, 공동의 가치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현우님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행복"이라고 답했다. 현우님이 생각하는 10년 후 청년아로파 공동체의 모습에 대해 들으면서 이는 단순히 가게를 만들기 위한, 창업을 위한 모임이 아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북토크는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의 ‘5장 공동체’ 챕터의 구절 인용으로 마무리 되었다. “물리적 공동체에는 가상 공동체가 따라갈 수 없는 깊은 차이가 있다.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아파 누워 있으면 캘리포니아의 온라인 친구들은 내게 말을 걸 수는 있어도 수프나 차를 주지는 못한다”
언택트가 강조되었던 2020년은 온라인에서도 참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구나를 깨닫고 다양한 온라인 활동들이 시도되었던 한해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상 공동체에서 누리는 삶이 더 많아지리란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온라인 연결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각자의 취향도 중요하고 독립적인 공간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연대하며 살아갈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따뜻한 사람의 온기가 그리운 시간이었다. 2021년에도 오아시스에서의 물리적인 만남보단 Zoom으로 만날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HFK에 모인 이유, 지식, 관계, 성장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며 서로를 지지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만은 지속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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