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아를, Arles
손에 꼽을 횟수로 푸아그라를 먹어 보았다. 주로 프랑스에서 먹었고 유럽에서는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다. 가능한 붉은 육류의 섭취를 줄이려는 식습관에도 잘 맞을 것 같았고, 와인과 먹으면 고급스러운 플레이팅에 사르르 녹는 고급스러운 지방이 입안에 풍부하게 남는 느낌이 좋았다.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자주 먹을 수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말이 앞뒤가 안 맞는 자기모순으로 보이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먹고 싶은데로 먹으면 거위들이 잔혹하게 더 많이 다뤄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푸아그라를 먹을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먹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변명은 반복되었고 식탐과 본능 앞에서 이성은 한결같이 마비증세를 보였다.
계획된 파리 일정을 마치고, 남프랑스의 프로방스 지역에 있는 '아를, Arles'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한 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마을 아를을 배경으로 '빈센트 반 고흐'는 유명한 작품들을 여럿 남겼다. 고흐의 흔적이 구석구석 남아있는 좁은 골목을 걷다가 유명한 그림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에서는 사진을 찍으며 아를을 즐겼다.
아를과 첫 만남의 감동이 이 곳을 20년 만에 다시 찾게 했다. 첫 아를과 두 번째 아를을 이어준 20년의 시간 동안 학교 공부와 비즈니스에 매진하였고, 그 과정에서 이기적인 세상의 이치를 체득하면서 성장했다. 기대가 큰 경우에 실망 또한 큰 것임을 경험으로 배웠고, 비즈니스 협상에서 'expectation management(=의도된 기대치 관리)'는 필수라는 것을 배워 익혔으며, 여행 일정을 잡으며 스스로에게 이 영악한 기술을 적용하였다. 20대 초반에 느꼈던 첫 만남의 감동보다 덜한 감동을 이번에 확인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지구 한 바퀴 세계일주 일정에 한번 방문한 적이 있는 작은 마을을 재방문하는 일정을 잡는 데는 이런 내적 갈등과 루트 선정에 있어 고충이 많았다. 세상에는 아직 안 가본 곳이 훨씬 더 많으니까.
기대가 어긋나면 실망을 주지만, 걱정이 쓸데없는 기우였음을 확인하면 여행자에게는 무조건 즐거운 일이 된다. 두 번째 아를은 20년 만에 다시 만나면 감동이 덜 하겠지라는 상상을 완전히 깨부숴 준 여행이 되었다. 20대 초반에 즐겨 듣는 노래는 평생 부를 수 있는 것처럼 20대 초반에 고흐를 만나게 해 준 아를의 풍경을 평생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가 될지 실현될지도 모르는 아를과의 세 번째 만남도 기대하면서......,
20년 전 학생 시절 배낭여행을 떠올리면 아를에 도착해서 관광안내소 'i' 표시를 찾아 지도를 받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했고, 화장실 무료 이용이 가능한 맥도널드나 저렴한 식사가 가능한 곳을 찾아다녔었다. 매번 감탄하는 IT 혁신으로 여행하는 방법이 변화했고, 이제는 학생 신분이 아닌 나도 변했다. 종이 지도 없이 구글맵으로 길을 찾고, 레스토랑의 위치, 음식 사진, 가격까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저녁식사를 위해 평점이 높은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에 즐거운 마음으로 자리를 잡았다. 반드시 늦은 밤에 가봐야 하는 아를 여행의 하이라이트 '고흐 카페'에 대한 기대를 남겨둔 채 먹었던 양고기 스테이크와 푸아그라는 첫 조각부터 기대치를 넘겨 버렸고, 자꾸 들어가는 와인에 푸아그라 플레이트를 깨끗하게 비워버렸다.
대부분의 시간을 물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거위를 좁은 곳에 가두고 먹이를 강제로 많이 주입해서 살을 찌우면 간을 기름지게 하고 정상적인 간의 크기보다 10배까지 키워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거위의 식도에 20센티미터가 넘는 튜브를 넣어 매일 과도하게 먹이를 주입하는 방법을 가바쥬(gavage)라고 하고, 영어로는 'force-feeding'이라고 한다. 'force+동사' 형태의 표현을 군함도 강제징용을 언급할 때 읽은 적이 있다. 우리가 주장하는 'forced to work'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 이웃 섬나라 사람들. 실제 악행에 비추어 절제된 'forced to work'라는 말도 분노하게 만드는데, 거위에게 'force-feeding'이라니 말문이 막힌다. 가바쥬를 당한 거위는 다치고, 아프고, 병들어 죽기도 한다.
다행히 2020년까지 모든 유럽 국가에서 가바쥬를 금지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접한 소식이지만, 푸아그라를 너무 사랑하는 소수의 국가들과 가바쥬가 고용을 유지하고 경제에 작은 역할을 하는 일부 국가들만 적극적으로 가바쥬 반대에 동참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EU는 모든 회원국이 2020년까지 가바쥬를 금지하도록 계획하고 활동 중이다. 푸아그라의 생산량이 1/10으로 줄어들 2021년부터는 훨씬 적은 양의 푸아그라 플레이트가 나오겠지만 양심의 부담을 내려놓고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너무 기름져 많이 먹을 수도 없으니 양이 줄어든다고 서운해하지 않을 일이다.
가바쥬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 벽화에도 발견될 만큼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2020년은 5,000년의 악습을 끊는 의미 있는 해로 기록될 것이다. 이성이 모이고 집단이 반성하면 본능이 잘못된 방식으로 진화한 5,000년의 나쁜 문화도 고쳐갈 수가 있다고 배운다. 쇠고기를 먹되 거세소를 찾지 않으며, 푸아그라를 즐기되 가바쥬가 없어졌는지 확인할 것이다. 사육되는 사향고양이로 만든 너무 비싼 루왁커피와 야만스럽게 채집하는 샥스핀은 다시는 찾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너무 비싼 탓에 동물복지 제품을 자주 구입하지 못하지만, 가능한 동물복지 제품을 구입하고, 구입하더라도 조금만 가져오기로 한다. 우리 너무 많이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