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기업들이 숨겨온 '3년 목표 전문가 양성법'
"임원이 되는 게 꿈입니다"
요즘 주니어들은 이런 낡은 소리를 하지 않죠.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조직 내의 승진보다, 시장에서 통하는 '압도적인 전문성'입니다. 어디를 가든 나를 모셔갈 수밖에 없는 '자신만의 권위'를 갖는 것. 이것이 요즘 똑똑한 주니어들의 진짜 욕망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스템은 정반대로 작동합니다. 평가 기준이 1년에서 6개월, 때로는 OKR 도입으로 3개월까지 점점 더 짧아지면서, 큰 그림을 그릴 근육은 오히려 퇴화하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이 ‘3년 단위 목표 설정’입니다. 보통 글로벌 기업에서 내부 용어로 ‘Multi-Year Goal Setting’이라고 말합니다. 1년이 아니라 최소 2년, 길게는 5년. 이 긴 호흡의 설계를 통해 당신의 커리어와 회사의 방향성을 전략적으로 일치시키는 겁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3년은 한 분야의 '초심자'를 '숙련자'로 키우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입니다. 3년 단위로 핵심 테마를 잡아보세요. 6년을 근무하면 두 개의 강력한 무기가 생기고, 9년을 버티면 세 가지 필살기를 가진 괴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외국 기업들이 오랫동안 숨겨온 Retention 기술, ‘Multi-year Goal Setting’이 그런 비밀이었습니다. ‘숨겨온’이라는 표현도 맞지만, 우리가 ‘무시했던’ 이라는 표현이 더 맞지 않나 생각듭니다.
믿기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여기, 이 전략으로 30대 초반에 '몸값 대폭발'을 이룬 제 미국인 동료, 저스틴의 실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스틴은 만 22세에 대졸 갓 신입으로 미국 보험회사에 입사했습니다. 2000년대 중후반이었습니다. 그때는 신재생에너지가 여러 업종에서 아주 ‘핫’해지기 시작하던 시기였었지요. 남들이 "이번 달 실적 어떻게 채우지?"를 고민할 때, 리포팅 매니저 그리고 HR 담당자(전담HRD 코치)와 의견을 교환하고 '3년짜리 프로젝트'를 가동했답니다. 회사는 구조적으로 MBO에 3년, Multi-Year Goal Setting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막 태동하던 '신재생 에너지', 그중에서도 '풍력 발전'을 깊게 파기로 한 것입니다. 저스틴은 공대 배경이 아니라, 미국 동부 평범한 경제학 전공 신입 사원이었습니다.
물론 비즈니스 성과(Business Goal)는 남들처럼 6개월마다 냉정하게 평가받았습니다. 팀의 실적과 개인의 실적이 합쳐지는 하이브리드 방식의 숫자 위주의 평가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성장을 이끈 핵심 엔진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3년 단위의 성장 목표(Development Goal)였습니다.
첫 3년, 그는 미친 듯이 풍력발전기(Wind turbine)를 파고들었습니다. 워크숍이 열리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기로 마음먹고, 엔지니어들을 통해 현장을 누볐으며, 기어이 발전 타워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는 경험까지 했습니다. 3년이 지나자 그는 사내에서 '풍력발전 현장 답사기'를 들려주는 강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까진 귀엽고 흥미로운 수준이었습니다. 북미 여러 곳을 탐험하는 이야기와 현장의 흥미로운 사진을 보여주는 정도의 강의였으니까요.
하지만 진짜 마법은 그다음 3년에 일어났습니다. 첫 번째 ‘3년 블록’을 완성한 그는 두 번째 3년의 테마로 '해상 풍력 발전'을 잡았습니다. 육지에서 바다로, 난이도를 높여 심화 학습에 들어간 것이죠.
그렇게 3년 단위의 블록을 세 번 쌓아 올린 입사 9년 차. 31살의 저스틴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단순히 '보험 상품을 꽤 아는 대졸 보험회사 직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풍력 발전기의 기술적 메커니즘을 꿰뚫고, 그 리스크를 헷지(Hedge)하는 보험 상품을 직접 기획하고 시장에 판매하는, 시장에 몇 안 되는(제 기억으론 거의 유일한) '하이브리드 전문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보험회사를 대리하는 헤드헌터들의 이직 제안(Offer)이 이메일과 전화로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시장과 사내에서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 복잡한 프로젝트? 저스틴한테 물어봐야지. 걔가 그쪽은 꽉 잡고 있어." 군대를 가지 않는 미국인 저스틴은 겨우 31살이었을 뿐입니다.
회사는 어땠을까요? 저스틴을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방어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봉 인상, 승진, 특별 대우... 회사가 그에게 매달렸죠.
이것이 진짜 '퍼스널 브랜딩'입니다. 인스타와 유튜브 숏츠에 '갓생', '오늘도 열일하는 나'를 업로드하는 것이 브랜딩이 아닙니다. 3년 단위의 묵직한 내공이 쌓여,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것. 그게 진짜 전문가의 이름값입니다.
이러한 3년 설계 전략은 저스틴처럼 평범한 오피스 잡에서도 전문성을 인정받게 만들었습니다. 유럽, 특히 독일어권 국가에서는 석박사 취득 기간이 비교적 짧아 실무 경력과 학문적 배경을 모두 갖춘 30대 초중반의 '대단한 실력자'들을 어렵지않게 볼 수 있는데, 이들 역시 장기적인 목표 설계를 통해 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미국인 저스틴과 달리 유럽 기업들의 Multi-Year Goal Setting은 그 설계 자체가 더욱 입체적입니다.
물론 이 화려한 3년 설계도는 공짜가 아닙니다. 회사의 지갑을 꽤나 묵직하게 여는 고비용 투자이자, HR 전문가들이 밤새워 설계해야 하는 정교한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경영진이 마른수건을 짜내는 불황에도 이 예산만큼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직원의 3년 성장이 곧 회사의 10년 경쟁력이라는 확신, 결국 사람에게 쓰는 돈은 무조건 '플러스(+)가 되는 장사'라는 계산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꼭 나오는 볼멘소리가 있습니다. "에이, 저스틴은 특수 분야니까 그렇죠. 저는 그냥 인사팀(혹은 총무, 영업지원)인데요?"
저스틴은 아주 평범한 공채 신입사원이었습니다. 문송한 출신에, 석박사도 아닌 대졸이었습니다.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핑계는 넣어두세요. Multi-year Goal Setting은 직무를 가리지 않습니다.
당신이 백오피스라면? 'AI를 활용한 업무 자동화 마스터'를 3년 테마로 잡고 파고들어 보세요. 단순히 챗GPT 몇 번 써보는 게 아니라, 우리 부서의 업무 프로세스를 AI로 혁신하는 프로젝트를 리딩할 수 있습니다. 영업직이라면? '비즈니스 영어'나 '고급 협상학'을 3년 동안 파고들어 남들과 차별화된 무기를 만드세요. 관심있는 분야를 성장 계획의 주제로 먼저 회사에 제안하는 주니어가 될 수 있어요. 저스틴이 딱 그런 케이스랍니다.
중요한 건 '주제'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최소 3년은 이 조직을 떠나지 않겠다는 신뢰를 회사에 주는 동시에, 회사는 나에게 단순 업무 외에 전문가로 성장할 시간과 자원을 지원하라는 거래(Deal)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회사가 먼저 우수 인재에게 거래를 제안하는 의미도 포함되겠지요.
이 글을 읽고 가슴이 조금이라도 뛰었다면, 당장 이번 주 면담 시간에 리더에게 제안하십시오.
"팀장님, 이번 분기 목표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향후 3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이 리더라면, 당장 주니어를 불러 앉혀 3년 뒤의 성장 로드맵을 함께 그리자고 제안하십시오.
이 대화는 더 이상 상사와 부하의 지루한 면담이 아닙니다. 회사의 비전과 나의 성장을 맞교환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자리입니다. 3년이라는 시간을 묵직하게 베팅하십시오. 저스틴처럼, 10년 뒤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로 우뚝 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승부수입니다.
노트북의 깜빡이는 커서 앞이라도 좋고, 묵직한 만년필을 쥔 손이라도 좋습니다. 당신 앞에 놓인 백지 위, 첫 번째 3년의 밑그림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요?
[Last tip] 치열하게 '갓생'을 사는 당신에게 제안하는 3가지
우리는 매일 치열하게 소위 '갓생'을 삽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 회사는 이런 시스템이 없는데...", "한국 현실에선 힘든데..."라며 힘 빠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시스템의 부재를 탓하며 멈춰 있기엔 당신의 30대가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불평 대신, 상황을 내 편으로 만드는 세 가지 관점을 제안해 봅니다.
첫째, 경쟁의 판을 넓히세요. "한국에선 안 돼"라고 생각하시나요? 착각입니다. 당신이 이직 시장에서 만날 경쟁자는 옆자리 김 대리와 선배가 아닙니다. 글로벌 시장에는 이미 3년 단위로 단련된 괴물들이 득실거립니다. 제도가 없다면 '셀프'로라도 설계해야 이 정글에서 살아남습니다.
둘째, 시스템의 공백을 기회로 만드세요. 제도가 없다는 건, 역설적으로 당신이 그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남들이 시키는 일만 할 때, 먼저 3년의 로드맵을 들고 오는 팀원을 마다할 리더는 없습니다. 빈 도화지니 오히려 더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기회입니다.
셋째, 철저히 이기적으로 회사를 이용하세요. 회사의 돈으로 실패 비용을 치르고, 회사의 인프라를 지렛대 삼아 내 몸값을 올리는 가장 영리한 투자 전략입니다. 탓만 하며 멈춰 있기엔, 당신의 시간은 너무 비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