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30대를 일컬어 '허리'라고 치켜세우는 건 이제 너무나 식상한 위로입니다. 30대 직장인이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마주하는 감정의 실체는 묵직한 책임감보다는 차라리 '비참함'과 '분노'에 가깝기 때문이죠.
조직 생활에서 30대는 잔인한 시기입니다. 20대 때는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이 면죄부가 되었지만, 30대가 되는 순간 그 말은 무능의 증거가 됩니다. 후배가 물어보는 업무 프로세스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할 때 느끼는 그 '쪽팔림'은 등줄기에 식은땀을 흐르게 하죠. 반면, 위에서 내려오는 불합리한 지시를 거부하거나 판을 뒤집을 '권한'은 쥐꼬리만큼도 없습니다. 책임은 임원급으로 요구받으면서, 결정권은 사원급에 머물러 있는 이 기형적인 구조. 이것이 오늘날 30대가 느끼는 '화남'의 근원입니다.
단순히 업무량이 많아서 힘든 것이 아닙니다. 실무자로서의 유능함을 증명해야 하는 동시에, 관리자로서의 정치력까지 요구받는 이중고 속에서 30대는 길을 잃고 있습니다.
조직 생활과 커리어에 몰입하는 요즘 30대를 잠 못 들게 하는 5가지 진짜 이유는 이런 것 아닐까요.
30대는 조직 내에서 가장 고독한 '이중 통역사'입니다. 조직 내 '소속감(Belonging)'은 단순한 친목이 아니라, 구성원이 자신의 기여를 인정받고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생깁니다.*1) 하지만 30대는 위아래로 단절된 소속감의 진공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잘난 것도 죄인가요>라는 칼럼에서 고스펙을 갖추고 입사했음에도 조직의 불합리한 관행에 시달리는 30대 과장의 분노를 다룹니다.*2) 30대는 과거의 위계질서에 순응해야 했던 마지막 세대이자, 공정과 합리성을 무기로 따져 묻는 주니어 세대를 설득해야 하는 첫 세대입니다. 임원들은 "요즘 애들은 왜 그래?"라며 30대를 쪼아대고, 후배들은 "팀장님, 선배님, 이게 정말로 효율적인가요?"라며 30대를 들이받습니다.
윗선의 '라떼'식 훈수를 후배가 상처받지 않게 번역해서 전달해야 하고, 후배의 날 선 불만을 윗선이 노하지 않게 포장해서 보고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 소모는 오롯이 30대의 몫입니다. 나의 기여(Contribution)가 조직의 성과로 이어지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인간관계의 완충재 역할만 하다 하루가 끝납니다. 내가 회사에 다니는 건지, 심리 상담 센터에 다니는 건지 헷갈리는 자괴감, 이것이 30대를 지치게 만듭니다.
실무를 기가 막히게 잘해서 팀장이 되었습니다. 30대 중후반이 되면 대기업에서도 초보 팀장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외국계, 해외 오피스에선 Emerging Leader라며 존재감을 인정해 주기도 합니다. 보상형 연수 기회를 주거나, 주니어 리더십 코스에서 공부할 기회를 제공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팀장이 되고 나니, 어깨에 '뽕'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곰' 세 마리가 올라타 탭댄스를 추는 듯한 육중한 스트레스가 매일 짓누릅니다. 이럴 때, 어려움은 30대 초보 리더들이 가장 많이 빠지는 함정, 바로 '영웅의 함정(The Hero Trap)'에 있습니다. 리더가 변화를 주도할 때 모든 해결책을 혼자 제시하고, 과도한 주인의식(Psychological Ownership)을 가질 때 실패한다고 경고합니다. *3)
30대 리더는 "내가 실무도 제일 잘하고, 관리도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아직 업무가 서툰 팀원이 답답해 "그냥 줘봐, 내가 할게"라며 일을 가져오는 순간, 리더가 아니라 '비싼 실무자'로 전락합니다. 딜레마가 생깁니다. 위임은 불안하고, 교육은 너무 귀찮기 때문이죠.
결국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다 번아웃(Burnout)이 옵니다. 본인은 조직을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때로는 팀원의 성장을 막고 조직의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영웅 놀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이 회사가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30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밤잠을 설치며 채용 사이트를 뒤적이는 이유입니다. 경력 관리의 유형을 주가에 빗대어 설명하며, 잦은 이직으로 경력이 망가지는 '롤러코스터형'과 꾸준히 우상향하는 '우량주형'을 비교합니다. *4)
30대의 딜레마는 여기서 옵니다. 현 직장에서 참고 견디면(존버) 임원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지금이라도 몸값을 튀겨서(점프) 나가는 게 맞을까요? *4) DBR 아티클은 당장의 연봉이나 직급보다 '직무의 전문성(Specialty)'이 쌓이고 있는지를 보라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30대는 불안합니다. 동기 누구는 경쟁사로 이직해서 연봉을 30% 올렸다는 소리가 들려오면, 내가 쌓고 있는 이 전문성이라는 게 사실은 '이 회사에서만 통하는 잡기술'은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떠나자니 밖은 겨울이고, 머물자니 안은 지옥입니다. 커리어의 방향성을 정하지 못한 채, '남들보다 뒤쳐지면 안 된다'는 공포심만이 30대의 등을 떠밉니다.
과거의 30대는 '경험'이라는 무기가 있었습니다. "이건 내가 해봐서 아는데"가 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데이터와 AI가 그 경험을 압도하는 시대입니다. 지금은 기술의 발전으로 스킬의 반감기(Half-life of skills)가 급격히 짧아지고 있으며, 3년 내에 전체 인력의 절반 이상이 재교육(Reskilling)을 받아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1)
단순히 엑셀이나 코딩을 배우라는 차원이 아닙니다. AI 시대의 리더는 기술적 이해도는 물론, 인간과 기계의 협업을 조율하는 'CITO(Chief Innovation and Transformation Officer)'급의 역량을 요구받는다고 말합니다. *1)
"지금 내가 가진 노하우가 5년 뒤에도 쓸모 있을까?" 이 질문 앞에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 30대는 많지 않습니다. 자신의 효용 가치가 알고리즘에 의해 대체될지 모른다는 공포, 이 지점이 30대가 느끼는 서늘한 위기감입니다.
통장에 찍힌 성과급 숫자만큼이나 강력한 각성제는 리더의 따뜻한 '관심'입니다. 심리학에서는 누군가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호손 효과'라 부릅니다. 묵묵히 일하는 30대에게 지금 필요한 건 '고생했어'라는 상투적인 위로가 아닌 '이 문제의 실제 맥락을 가장 잘 아는 건 당신이야'라는 대체 불가능한 인정(Recognition)일지도 모릅니다. 신입사원에게는 칭찬과 피드백이 쏟아집니다. 임원들에게는 성과급과 명예가 따르죠. 하지만 묵묵히 허리 역할을 하는 30대에게 돌아오는 것은 "원래 네가 해야 할 일"이라는 차가운 침묵뿐이었던 적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6)
여기까지 읽고 고민하면서 공감하시는 당신이 30대라면 이미 훌륭한 'Young Professional'이라고 생각됩니다. 'Young Professional'이라는 칭찬은 제가 30대 초반 미국인 상사로부터 들었던 표현이었습니다. 그 표현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저를 보면 그 표현과 칭찬이 이후에 자주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즈음의 저는 20대의 좌충우돌을 거쳐 실무의 맥락을 꿰뚫고, 후배들을 이끌며, 윗선의 기대까지 감당해내던 30대 어느 순간이었구요.
‘영웅 심리’를 내려놓을 필요를 고민하고, 교과서 없이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는 ‘낀 세대’의 막막함, 그리고 AI라는 거대한 파도까지. 지금 조직 생활을 하는 30대는 이 모든 챌린지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치열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온 탓에 미처 몰랐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당신의 지금 모습은 꽤 괜찮은, 이미 훌륭한 ‘프로’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좋은 회사 잘 다니고 있네”라고 부러워할지도 모르잖아요. 이제는 막막해하며 버티는 것을 넘어, 당신의 커리어를 즐겁게 '다시 상상(Reimagine)'해 볼 때입니다.
<Reference>
*1) Erica Volini et al., 2020 Deloitte Global Human Capital Trends: The social enterprise at work: Paradox as a path forward, Deloitte Insights, 2020.
*2) 전재영, "잘난 것도 죄인가요",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4호 (2009년 1월 Issue 1).
*3) David M. Sluss, "Change Management: How to Avoid the Hero Trap", MIT Sloan Management Review, October 01, 2025.
*4) 최효진, "몸값 올리겠다고? 직(職)테크의 함정에 빠지지 마라", 동아비즈니스리뷰(DBR), 71호 (2010년 12월 Issue 2).
*5) Faisal Hoque, Thomas H. Davenport, and Erik Nelson, "Why AI Demands a New Breed of Leaders", MIT Sloan Management Review, April 09, 2025.
*6) 하정민, "양아들과 호손 효과", 동아비즈니스리뷰(DBR), 78호 (2011년 4월 Issue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