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 로테이션 1
점심 식사를 마치고 가벼운 커피 한 잔을 들고 나누는 대화에서 "요즘 애들은 참 끈기가 없다"거나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라는 한탄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씁쓸한 한탄 뒤에는 '1년 5.3개월'이라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짧은 첫 직장 평균 근속 기간이 증명하는 냉혹한 현실이 숨어 있습니다.
어렵게 고르고 골라 뽑은 우리 회사의 소중한 신입들은 왜 그렇게 빨리 짐을 싸는 것일까요? 떠나면 다시 신입 공채의 문을 두드리는 일부터, 합격하더라도 이제는 '중고 신입' 딱지가 붙는데도 말이죠. 신입 사원의 이탈은 단순히 당장 빈자리를 메워야 하는 인력 공백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남은 팀원들의 업무 부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조직 전체의 사기와 활력은 눈에 띄게 꺾이기 마련입니다.
가장 뼈아픈 지점은 바로 '미래'의 상실입니다. 지금 복사기 옆에서 멍하니 서 있는 주니어, 회식 자리에서 소맥 농도를 세심하게 배우는 저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주니어 사원들 중 누군가는 10년, 20년 뒤 우리 회사의 명운을 짊어질 '미래의 CEO'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소중한 씨앗들이 단단히 뿌리 내리기도 전에 흩어지는 것은 회사의 뿌리를 흔드는 거대한 손실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기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동력이 소리 없이 빠져나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을 매일같이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막연한 한숨과 비난을 멈추고, 이 인재들이 조직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인재 관리 전략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그 대안으로, 우리가 그동안 귀찮고 어렵다는 이유로, 혹은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는 핑계로 외면해왔던 '잡 로테이션(Job Rotation)'을 주니어 시절에 과감히 경험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탈을 막는 가장 강력한 기술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보통 신입 사원들은 입문 교육이라는 설레는 관문을 지나면, 단 한 번의 결정으로 부서에 배치됩니다. 그 순간 그들에게는 '소속'이 생기고 본격적인 조직 생활의 막이 오르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지점에서 퇴사의 비극은 조용히 싹트기 시작합니다.
사실 냉정하게 말해, 큰 조직은 신입 1년 차에게 대단한 업무 성과를 기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 할지라도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신입 사원의 기여가 즉각적으로 빛을 발하는 분야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공채로 채용된 신입의 첫 1년은 업무 성과를 내는 기간이라기보다, '사회생활'과 '조직생활' 그 자체를 배우고 그 생태계에 천천히 적응해 나가는 소중한 학습의 기간입니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과 어울려 회합하고, 사무실 밖에서 회사 생활의 고충을 나누며 자신의 커리어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이 사실 1년 차 신입 시절에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고민이 깊은 시기에 배치받은 부서의 업무가 본인의 적성과 전혀 맞지 않거나, 가치관이 너무나 다른 상사나 동료와 갈등을 겪게 된다면 어떨까요? 그들에게 회사는 더 이상 꿈을 펼칠 공간이 아닌,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답답한 감옥이 되고 맙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결국 다른 조직이나 부서에서 '중고 신입'으로 다시 시작하기를 꿈꾸는 이들도 분명히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신입 입문 교육이 끝날 무렵, 회사는 이른바 '부서 배치'라는 결정을 내립니다.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던 1순위 부서에 가는 행운을 거머쥐지만, 훨씬 더 많은 이들은 2순위, 혹은 3순위 부서로 밀려나게 됩니다. 자신이 가장 가고 싶어 했던 부서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한 채 전혀 생소한 곳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불운을 겪게 되는 것이죠.
신입 사원의 동기부여는 바로 여기서부터 꺾이기 시작합니다. 희망하지 않던 부서에 배치된 사원에게 상사와의 작은 의견 충돌이나 동료와의 사소한 갈등은 퇴사를 결정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트리거가 됩니다. "역시 이곳은 내 자리가 아니야"라는 확신만 더 강화해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운 좋게 1순위 부서에 배치받은 사원들은 안전할까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막연히 꿈꾸던 업무와 현실의 괴리는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학부 시절 전공을 살려 화려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싶었겠지만, 현실은 주니어로서 처리해야 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의 연속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면, 아무리 원했던 부서라도 금세 흥미를 잃고 맙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단순히 "어딜 가나 똑같으니 참고 견뎌라"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는 명확한 '지도'를 쥐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Job Rotation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잡 로테이션은 국내 공기업이나 일부 사기업에서 관행적으로 실시하는 '순환근무'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보통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서 말하는 순환근무가 인기 근무 지역이나 특정 부서로의 과도한 쏠림, 혹은 비리를 방지하기 위한 행정적 목적이라면, 신입 사원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기업들의 잡 로테이션은 철저히 '인재 육성'과 '자기 발견'에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신입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이 제도는, 1년 차 사원에게 다양한 부서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폭넓게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3~4개월마다 부서를 옮기게 되면, 신입 사원은 단 1년 만에 회사의 핵심적인 3~4개 부서를 깊숙이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어깨너머로 구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 부서의 전문가들과 함께 호흡하며 실제 업무 프로세스를 몸소 익힙니다. 이렇게 서너 가지의 직무를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경험한 신입 사원은 비로소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질문들에 스스로 답할 수 있게 됩니다.
"회사의 수많은 업무 중 진정으로 내 성향과 맞는 직무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들과 일할 때 시너지를 내고 행복한가?"
"언제 내 심장이 뛰고, 업무에 대한 진정한 몰입(Motivation)을 느끼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냈을 때, 신입 사원의 성장은 비약적으로 가속화됩니다.
잡 로테이션이 가진 가장 큰 마법은 바로 '결정권의 이동'에 있습니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점지해준 부서에서 수동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본인의 커리어를 직접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죠.
1년 동안 서너 군데 부서를 거치며 만난 다양한 상사들은 신입 사원에게 훌륭한 멘토가 되어줍니다. "너는 기획 부서에서 수치를 다룰 때 눈빛이 달라지더구나", "너의 소통 능력은 영업 현장에서 가장 빛이 날 거야"와 같은 현장의 생생한 피드백은 그 어떤 직무 적성 검사보다 정확하고 힘이 있습니다.
신입 사원은 이러한 선배들의 조언과 본인의 직접적인 경험을 결합하여,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성과를 내고 인정받을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다음 커리어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어떤 자격증이 필요한지, 어떤 준비를 더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선배들에게 아주 상세한 가이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직접 경험해보고 내린 결정에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설령 그 길이 험난하더라도 "내가 직접 선택한 길"이라는 주체적인 의지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잡 로테이션은 단순히 부서를 옮겨 다니는 제도가 아니라, 신입 사원에게 '회사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할 권한을 부여하는 가장 민주적인 인재 육성 프로세스입니다.
신입 사원에게 1년 동안 4개의 부서를 돌게 한다는 것, 듣기에는 이상적이지만 현장에서는 벌써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업무 좀 가르칠 만하면 떠나는데 누가 좋아하겠냐", "이러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날 선 질문들이죠.
다음 편에서는 제가 직접 경험하고 목격했던 국내외 잡 로테이션의 구체적인 성공 및 실패 사례를 다뤄보려 합니다. 제도를 도입할 때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현장의 반발을 잠재우고 조직과 개인이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지 하드하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진정한 인재 관리는 그들의 퇴사를 억지로 막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곳에서 스스로 성장하고 싶게 만드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