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도중에 죽는 사람들
눈뜨라고 부르는 소리
니콜라예바의 죽음
1924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된 '니콜라예바'는 66세가 된 1990년에 처음으로 서구 자유주의 세계에 진출하였다. 동서 냉전의 갈등으로 오랫동안 서방 세계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러시아의 예술가였다.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곡의 초연을 부탁받아 연주하기도 했고, 바흐 평균율 전곡뿐만 아니라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명성이 높았던 피아니스트이다.
1993년 69세이던 니콜라예바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피아니스트로써 아직 전성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나이지만, 자유진영 서구 세계에는 알려지기 시작하고 명성을 얻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원숙미와 노련함을 가졌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뛰어난 신인의 연주회 장면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연주를 하던 니콜라예바는 갑자기 무대에서 쓰러졌다고 한다. 뇌출혈이었다.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죽음을 맞았다.
축구 스타의 죽음
유럽 리그에서 뛰는 톱클래스 축구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쓰러져 사망하는 사고 소식이 가끔 들려온다. 경기중에 심장마비로 그라운드에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죽음이다. 사실 전 세계의 축구팬들을 위해 톱클래스 축구 선수들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주말마다 자국 리그의 경기에 나서고, 주중에는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출전하고, 틈이 나는 데로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아 국가대항전 경기를 소화한다. 8월 말에 시작하는 축구 시즌은 다음 해 5월 말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일정이 없어야 하는 6,7월에 주로 올림픽, 월드컵, 유로, 코파 아메리카 등의 큰 대회가 열리니 극심한 체력소모와 과로로 인한 사망 사고들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무대에서 쓰러진 피아니스트, 그라운드에서 일어나지 못한 축구선수, 모두 일하는 현장에서 맞은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다. 가끔 먼 나라에서 들려왔던 일하는 현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피아니스트와 축구선수의 소식이지만, 우리는 조금 더 자주 뉴스에서 비슷한 죽음의 사고 소식을 접하며 살고 있다. 지난봄에도 창고 건물 공사현장에서 화재사고로 일하는 도중에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안타까움으로 맞았다. 겨울부터 봄까지 훨씬 더 건조한 기후 조건 때문에 이 시기에 공사현장에서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불꽃이 폭발과 화재로 더 빈번하게 이어진다. 일하다가 죽음을 맞는 것은 피아니스트도, 축구 선수도, 용접공도 피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사고였으며, 같다면 같은 일하는 도중에 맞는 죽음일 테고, 다르다면 너무 다른 죽음의 모습이다.
즐겨 듣는 니콜라예바의 바흐 연주는 마음의 평화를 만들어 주고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해 주었고, 주말 밤마다 에너지 넘치는 축구경기는 가슴 뛰게 하는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일하는 현장에서 무대 위 피아노 앞에서, 축구 경기장 그라운드에서 쓰러진 그들의 죽음을 통해 감사함과 추모를 떠올린다면, 창고 건물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죽음 앞에서는 안타까움이 더 크게 남는다.
일하는 도중에 맞는 죽음 앞에서 느끼는 안타까움은 피할 수 없겠지만, 그 안타까움이 분노로 이어지는 죽음은 막아야 한다. 분노는 혐오와 차별을 넘어서는 아마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감정이다.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면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어야 한다. 겨울에서 봄까지 유난히 건조한 환경을 가진 우리는 비극적인 안전사고를 줄일 수 있도록 비용이 더 들어도 안전 장비를 철저하게 확보하고, 작업 시간에 쫓겨 무리한 공사 일정을 이어가지 않도록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일하는 도중에 맞는 죽음은 모두 마음이 아프지만, 니콜라예바와 축구 선수의 죽음보다 더 아픈 죽음은 막아야 하니까. 죽음이라는 최종적이고 운명적인 단어가 분노라는 가장 비극적인 감정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니콜라예바의 피아노 연주 중에서 바흐의 '샤콘느', '평균율 전집'을 즐겨 듣는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곡은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라는 제목의 피아노 연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