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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김홍재 Oct 30. 2020

번아웃에 효과 빠른 치료제

비행기는 밤새 펑펑 내린 첫눈 같이 몽글거리고,

해마다 가을이 끝나가고 옷장에서 패딩을 꺼내 놓을 때가 되면, 첫눈은 꼭 ‘펑펑’ 내려주기를 바란다. 첫눈이면서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로 폭설급으로 내리는 눈을 말한다. 그리고 꼭 내가 잠든 밤에 몰래 내려주어야 한다. 첫눈이면서 폭설이고, 밤새 내려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을 꼭 맞추는 날이 있었다. 그렇게 내린 첫눈은 하룻밤 만에 서울의 풍경을 하얗게 바꾸어 놓는다. 어제와 완전히 다르게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몽글몽글 뒤덮인 포근한 아침이다. 침대에서 눈을 뜨면 창가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밤새 펑펑 내린 첫눈’은 휴가를 위해 나를 유럽으로 데려다주는 비행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휴가에 비행기를 타고 10시간쯤 지나 유럽의 어느 공항에 내리면, 밤새 내린 첫눈처럼 비행기는 짧은 시간만에 나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데려와 주었음을 발견하곤 했다. 밤새 내린 첫눈이 어제와 완전히 다른 아침의 풍경을 열어주었고, 비행기는 10시간 만에 나를 아름다운 유럽의 어느 도시로 데리고 와준다.


태어나서 자란 부산에 계속 살았다면, 이런 첫눈이 비행기 같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눈 구경도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곳이 부산이니까.) 부산에서 폭설은 20년 넘게 살아도 한번 본 게 전부다. 서울에 살면서, 새로 알게 된 서울의 맛이라는 생각이다.


내 인생에 들어온 서울의 맛은 몽글몽글한 첫눈이면서 밤새, 펑펑 내려야 하는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나는 경우라야 볼 수 있었고, 서울에 살아도 몇 년에 한 번 정도로 조금은 드문 일이었다. 대부분의 일상은 항상 바쁘고, 때로는 아프고, 사람들과 상처를 주고받으며 일하는 시간이었다. 보험회사와 재보험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을 즈음, 몸과 마음이 서서히 예전과 같지 못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만큼 나도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서 회사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고 컨디션도 예전 같지 못하다는 느낌도 들기 시작했다.


번아웃의 시작


스마트폰에 있어서 ‘라떼’를 말하면 ‘블랙베리폰’이라는 게 있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문제는 10여 년 전 회사에서 블랙베리폰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한국에 아이폰이 출시되기 전이라 블랙베리폰을 들고 일하는 것은 있어 보이게 해주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어처구니없이 느린 3G 속도이기는 했지만, 지하철에서든, 식사자리에서든, 어디서든 이메일을 확인하고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때는 '일잘러'의 필수품 같은 느낌을 주는 잇템이었다.


정장에 블랙베리를 들고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멋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즈음, 내 손에도 블랙베리가 들려있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뭐 이런 걸 다 주네' 하면서 친구들을 만나 자랑하던 폰이었다. 아이폰이 없던 시절이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회사에서 받은 블랙베리를 들고 다니던 것은 나를 포함해서 딱 두 명뿐이었던 때였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어디서나 모바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습관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출근도 하기 전에 이메일을 열어보거나, 잠들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이메일을 확인하는 나쁜 루틴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성능 좋고 빠른 아이폰이 나오고 아이폰에 업무용 이메일과 프로그램을 설치하면서 출퇴근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지는 상황으로 일상의 모습이 악화되었다. 휴가 중에도 스마트폰은 항상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이 되어버렸으니, 휴가를 가도 완전한 휴식은 없었다. 블랙베리에서 시작한 연결 사회가, 아이폰으로 꽃을 피우더니, 지금은 초연결이라는 말을 쓴다. 스마트폰의 기능에 감탄하면서도, 눈은 자주 피곤해지고 확인하기 싫어도 확인해야 하는 메시지나 이메일이 오는 순간에는 스마트폰과 이메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들게 한다.


블랙베리폰과 스마트폰이 세상에 없던 때는, 지하철이나 버스에 앉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책을 읽고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가족 생각, 친구 생각, 잘 살고 있는지, 그리고, 내 몸은 이상이 없는지를. 무엇보다 아무 생각 없이 지하철에서 이동만 할 뿐, 뇌에는 휴식이 되는 시간이었다. 초연결이라는 기술을 얻은 대가로 뇌가 닳아가는 것 같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어야 공평하다지만 이건 그러면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블랙베리와 스마트폰이 나오고 나서부터는 이동 중에도 이메일을 열어 일을 하려고 하고, 내 이메일을 확인했는지, 답장이 왔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의자에 앉아 이동을 하면서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아도 뇌가 쉬지 못했다. 요즘 들어 문제는 더 심각해져 이동 중에 업무가 아니더라도 항상 핸드폰으로 SNS를 하고, '좋아요'가 늘었는지, 댓글이 달렸는지를 확인해가며 완전히 SNS와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중독을 넘어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어 한시도 손에서 놓지 못한다.


그런데, 그렇게 일을 항상 손에 들고 다니고, 하루 종일 모니터만 보면서 살다 보니, 오후 4시만 되면 눈알이 흔들려오는 이상한 증상이 생겼다. 회사 동료들은 오후 늦은 시간이면 오른쪽 눈동자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오후 4시가 넘어 화장실 거울 앞에 서면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오른쪽 검은 눈동자가 아래로 떨어지는 무서운 내가 거울 속에 있었다.


당장 신촌에 있는 대학병원에 가서 내과, 안과, 신경과 선생님을 만나고 MRI 기계에 누워 원인을 찾으려 했지만, 특별한 이상 소견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6개월 후에 다시 MRI를 찍고 검사를 해보자는 시원섭섭한 답을 주셨다. 병명이 나오지 않았으니 비싼 MRI 검사 비용은 건강보험 처리가 되지 않았고, 회사 보험으로 진료비 환급을 청구할 수도 없었다. 백만 원에 달했던 검사 비용을 6개월 후에 또 쓰러 오라시니, 휴가를 내고 검사를 받게 한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병원에서 특별히 건강의 문제가 없다니 다행이었지만, 자꾸 한쪽으로 흘러내리는 눈동자 때문에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 했다. 그때쯤, 스트레스로 인한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말도 함께 유행하고 있었고, 혹시 나도 번아웃 증후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몇몇 글을 읽어보니, 짜증이 늘고, 두통이 자주 찾아오고, 눈이 침침해지고 등의 내 증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보건 기구에서 나온 글을 읽으니 번아웃 증후군을 만성 직장 스트레스라고 확인시켜 주었다. 의사 선생님도 MRI 기계도 찾아내지 못한 내 병을 스트레스성 '번아웃'이라고 자가 진단을 내렸다. 학교를 졸업하고 10년을 조금 넘게 일하고 있던 때였다.


  자가 진단이어도 번아웃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니 뭐라도 조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아니면 푹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검사를 더 받아야 할지. 일단 쉬어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쉬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회사에는 처음으로 2주나 되는 휴가를 내고, 바로 비행기표를 검색했다. 친한 고등학교 선배가 파견근무로 레지던스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파리’가 떠올랐고, 네덜란드 '헤이그'에는 연수 중인 법대 동기가 공부하고 있었다. 비행기표를 결제하고 바로 떠났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블랙베리와 스마트폰으로 끊임없이 일에 메여 있어 '탈진 증후군', 번아웃이라는 질병을 만들었다고 믿었다. 핸드폰을 뜯어보면, 최고 성능의 최신 반도체, 보고 있으면 감탄이 나오는 화질의 디스플레이 패널, 자동차와 석유의 시대를 완전히 탈바꿈시킬 배터리 기술, 세계 최고의 IT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는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구동되는 현대 과학 기술의 결정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현대 문명의 결정체, 비행기로 멀리 떠나는 여행은 번아웃을 치료해줄 효과 빠른 치료제라고 믿었다. 열 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 끝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에 도착했고, 서울보다 시원한 공기가 코로 들어와 폐를 가득 메우니 온몸에 상쾌함과 시원함이 퍼져나갔다.


비행기 덕분에 10시간 만에 다른 세상으로 왔고, 밤새 세상의 풍경을 하얀 첫눈으로 포근하게 덮어주던 서울의 첫눈을 바라보던 겨울의 아침 풍경이 같이 떠올랐다. 유럽의 허브 공항이라지만 낡은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의 시골스러운 풍경을 마주하면서, 유럽의 와이파이가 짱짱하게 살아나지 않아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 있음을 느꼈다. 암스테르담 구경을 뒤로하고, 먼저 친구가 있는 '헤이그'행 기차를 탔다.


법대 동기인 친구는 변호사로 일하다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에서 연수를 받고 공부하는 중이었다. 헤이그역에서 오랜만에 재회하고, 먼저 우리에게 아픈 역사가 있는 헤이그 특사 기념관을 둘러보았다.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외국에 알리기 위해 고종의 외교 특사가 파견되었던 곳이 이곳 헤이그이다. 그리고, '평화 궁전'이라고 불리는 '국제사법재판소'도 헤이그에 있다.


법학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고, 외교관을 꿈꾸기도 했었기 때문에 꼭 한번 보고 싶었던 곳이 헤이그였고, 국제사법재판소였다.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는 이름처럼 국가 간의 분쟁을 재판으로 해결하는 곳이다. 그럴 일이야 절대 없겠지만, 제주도 아래 이어도를 두고 중국과, 독도를 두고 일본과 영토 분쟁으로 재판을 하는 일이 된다면, 여기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하게 된다.


번아웃을 겪기 시작하면서 휴식을 위해 찾아온 헤이그에서 친구와 함께 법대 학생 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변호사로 일하다가 헤이그에서 열공 중이던 친구도 오랜만에 나를 만나 맥주로 낮술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하루가 되었다. ‘탈진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번아웃은 금방 치료되어 버린 것처럼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병원에서 비싼 검사 비용을 내고, 그렇게 찾아도 알 수 없었던 번아웃이었으니 약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먼 나라에서 친구를 만나고 서울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점점 번아웃 증상이 완화되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학창 시절 친구를 만나서 수다가 길어졌고 회사원이 되기 전, 학생 시절의 느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리프레시를 위해 온 헤이그에서 리셋 버튼까지 누르고 온 것 같았다. 번아웃 상태의 컨디션을 리셋했다고 믿었다.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했지만, 무엇보다 친구와 늦은 점심을 즐기고 나서 오후 4시가 넘어도 눈알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고 꺼내보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휴가를 헤이그에서 시작하자마자 생긴 변화였다. 오른쪽 눈알이 흔들리고 내려가는 증상은 거짓말같이 하루 만에 사라졌고, 다음 날에도 재발하지 않았다.     


파리에서 만난 선배


대학 동기와 즐거웠던 헤이그를 떠나 파리로 향했다. 파리로 파견근무를 온 선배는 주로 해외에서 만났다. 이 책의 첫 꼭지, ‘살려줘, 김네다’에서 도쿄 출장이 가장 힘든 이유를 24시간의 '시차' 때문이라고 말하는 선배이다. 부산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이후에 선배는 도쿄대에서 박사 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도쿄로 출장을 갈 때만 만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서울도, 부산도, 도쿄도 아닌 파리이다.


남자 둘이지만, 도쿄에서 만날 때마다 선배와 나는 쇼핑을 다니고 가성비 좋은 패션 아이템을 득템 하기를 좋아하는 공통의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선배를 휴가로 온 파리에서 만났으니 하루 종일 쇼핑의 성지, 마레 지구를 구석구석 걷고 쇼핑을 해도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여름 세일 기간이라 큰돈 들이지 않아도 신나게 파리 쇼핑을 즐길 수 있었다. 쇼핑을 즐기는 30대 남자 둘이 파리에 있었다. 쇼핑을 좋아하는 두 남자에게 파리는 취향저격의 여행지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선배의 레지던스에서 며칠을 보내는 동안, 선배가 라데팡스의 사무실로 출근하고 나면, 낮시간에는 혼자 파리 시내를 이곳저곳 걸어 다니고 커피를 사 먹으며 남은 휴가 시간을 즐겼다. 그리고, 학생 시절 살았던 파리대학 기숙사를 다시 보고 싶었고, 15년 만에 파리 지하철 RER B를 타고 기숙사로 향했다. 기적같이 내가 살았던 파리대학 기숙사의 사감 선생님은 지금도 근무하고 계셨고, 기숙사를 떠나는 날, 사감 선생님께 드렸던 하회탈 열쇠고리를 지금도 사용하고 계셨다. 퇴근한 선배를 세느강변의 맥주집에서 만나 기숙사를 방문한 하루의 이야기로 함께 즐거워했다. 낮에 선배도 SNS 피드에서 열쇠고리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헤이그와 파리에서 학생 시절의 친구와 선배를 만났다. 법대를 다니며 궁금해했던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를, 대학 시절 아름다운 기억이 많았던 파리대학 기숙사를 만난 여행이었다. 번아웃에 완전히 녹아내리기 전에 번아웃이 없던 학생 시절의 나로 다시 리셋시켜준 여행이 되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다시 스마트폰으로 회사 일을 항상 붙잡고 살고 있지만, 그때 유럽 휴가 시간 동안에는 절대로 회사 이메일을 열지 않기로 했었다. 번아웃 치료를 위해 꼭 그래야 한다고 믿고 곧바로 비행기표를 결제했던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서울로 돌아오고 6개월, 1년, 2년이 지났지만, 눈알이 빙빙 도는 것 같은 증상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에 백만 원에 달하던 MRI 검사 비용도 더 이상 지출하지 않게 되었다.

MRI 기계의 소음 속에서 전체 뇌의 사진을 찍고, 내과, 안과, 신경과 선생님도 찾아내지 못한 번아웃에 대한 약은 여행과 오랜 친구 그리고 휴식이었다. 번아웃 증상으로 환자가 된 나를 유럽으로 데려가 여행을 하게 했고, 오랜 친구들을 만나게 해 준건 비행기였다. 번아웃 증상은 몇 년이 더 지나 다시 찾아와 또 나를 괴롭히기도 했지만, 어쨌든 헤이그와 파리로 떠난 순간만큼은 몸도 마음도 가벼웠고 무엇보다 눈동자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떠난 휴가는 스트레스가 유발한 번아웃 증상에 효과 빠른 치료약이었다. (나중에 일상이 반복되면서 무병명 유증상의 스트레스성 이명, 눈 떨림 증상이 다시 나타났지만, 비행기로 인한 치료 효과는 꽤 길게 유지되었다.)     


비행기 여행과 휴가라는 효과 빠른 치료제가 있어도 다시는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번아웃이 올 때까지 버티는 직장 생활은 결국 병원비 지출로 연결되었다. 비행기 여행으로 번아웃이 치료되는 짧은 기적을 볼 수 있었지만, 재발하면 더 큰 고통이 되었다. 한창 많은 경험을 하고, 가족을 위해 책임이 무거운 시기에 병상에 누울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도 번아웃에 발목 잡혀 아프면 결국 '나만 손해'인 일이니까. 주변의 위로가 있을 뿐, 아픔과 고통은 결국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다.

일과 스트레스와 건강, 세 가지 공을 들고 저글링을 하면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일을 놓을 수 없으니, 가끔은 일하는 뇌가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알림이 울려도 두 눈이 쉬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결국 내가 좀 쉬어야 한다는 말이다.


낮에 일하면 밤에는 쉬어야 하고, 일주일에 다섯 번 출근하면 주말은 쉬어야 한다. 일 년을 일하면 휴가에는 꼭 충분한 리프레시를 놓치지 말아야 하고, 긴 인생을 살면서 번아웃이 오면 리셋 버튼을 누르고 재정비하는 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번아웃으로 눈동자와 뇌가 녹아내리지 않게 해야 한다.     


서울에 살면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일, 스트레스, 건강’을 두고 균형 감각을 찾고 세 가지의 밸런스를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회피할 수 없는 경쟁이 있고, 남들과 비교당하려는 이상한 생각들이 넘쳐나는 곳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항상 일이 우선이었고, 스트레스와 건강 관리는 후순위로 밀려나곤 한다.


그럼에도 밤새 첫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잊었던 균형 감각을 찾게 해주는 순간이 있었다. 아름답다, 평화롭다, 포근하다를 생각하면서, 잘 살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끔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휴가에는 좋은 휴식을 택할 것이다. 휴가에 비행기를 타면 반겨주는 승무원의 차분한 안내 방송이 기내에 흐른다. 비행 중에 스마트폰은 비행모드로 바꾸거나 꺼두어야 한다고. 그러면 첫눈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어 놓는 마법처럼, 비행기는 아름다운 목적지의 공항에 나를 내려놓는다.


밤새 펑펑 내린 첫눈이 만든 거실 풍경
광화문 사무실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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