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이탈리아
예전에는 '송로버섯'이라고 불렀던 트러플 요리는 입으로 혀로 맛보는 것이 아니라 코로 후각으로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후각 천재' '뭉이'에게 향에 대한 평가를 구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뭉이는 말을 못 한다. 뭉이는 3년째 같이 살고 있는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품종의 강아지이고 이름처럼 고향이 이탈리아다. 고향의 맛이 아니라 고향 이탈리아의 향기에 대해서 어떤 느낌인지 알려주면 좋으련만,
아직은 재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트러플 헌터들은 땅 속에 있는 트러플을 찾을 때 강아지들과 항상 함께 다닌다고 한다. 훈련된 강아지의 후각으로 땅속에 있는 트러플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좋은 트러플이 있는 곳은 알려질까 봐 밤에 산속으로 채취하러 나간다고 한다. 외롭고 힘든 노동의 모습은 우리 심마니들이 목욕재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산에 오를 때와도 닮아있다. 트러플은 강아지에게 최적화되어 있는 음식으로 보인다. 그래서 후각이 훨씬 열등한 우리는 트러플을 먹을 때 혀보다는 코에 감각을 예민하게 모으려고 한다.
은은하게 테이블 위로 퍼트려지는 트러플 향기를 코로 줄곧 느끼기만 해도 만족스럽지만, 트러플 파스타도 요리이기에 입으로 넣어 본다. 입 안에 들어가서도 트러플과 섞여있는 진한 치즈향을 뚫고 나와 한참을 감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 문을 빠져나올 때까지 요리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서울에서도 비싸다는 투뿔에 팁을 쥐어주면 내어주는 눈꽃등심 한우를 먹어도 요리에 집중하게 하지만, 소주와 와인이 오가는 사이 식사 자리의 주제는 금방 다른 이야깃거리들로 옮겨가 버린다. 그런데, 트러플을 먹을 때는 향을 내뿜는 작은 트러플 조각도 실수로 목구멍으로 넘겨 버릴까 차분하게 집중하게 된다. 트러플이 입 속으로 들어갈 때 목구멍까지 긴장시켜 음미하게 한다. 이 정도로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데에는 거의 유일한 요리가 아닐까. 고개를 끄덕이며 진짜 미식가가 된 것 같아 자존감이 조금 올라갔다고 느끼는 즈음, 트러플을 다 삼키고 그제야 "미쳤어 ! 미쳤어!"를 연발한다. 플레이트 위에서 소량이지만 음식 전체의 맛과 테이블의 분위기까지 좌지우지하는 대단한 존재감이다. 양은 작아도 엄청난 존재감 때문에 가격은 아마도 식재료를 통틀어 가장 비싼 것이 아닐까 한다. 1kg 당 수백만 원에 거래된다고 하니...
서울이나 도쿄에서 트러플을 사랑하는 미식가라면 가끔은 호객이 되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주문을 해야 한다. 밤에 강아지들과 소량으로 채취한 트러플은 오래 보관할 수가 없어서 비행기를 타고 오기 때문에, 가장 핫한 동네에 레스토랑이나 호텔의 쉐프님들이 직접 갈아주는 트러플의 가격을 수긍할 수 있지만, 사실 너무 비싸다.
그럼 맛도 풍미도 가격도 끝내주는 트러플을 어디서 먹어야 할까?
'흙속의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리는 만큼 비싼 가격을 납득해가며 서울이나 도쿄에서 먹어야 할까?,
지금 트러플 요리가 가장 발달한 파리에서?
아니면 로마, 밀라노, 피렌체 이탈리아에서?
꼭 내가 방문했던 레스토랑일 필요는 없지만 피렌체에서 트러플 파스타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안에서도 원래 피렌체 음식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딸이 프랑스의 왕 '앙리 2세'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피렌체가 고향인 메디치가의 금수저 딸은 시집가면서 피렌체의 쉐프들을 프랑스 시댁으로 데리고 간다. '메디치 엄빠 찬스!'라야 가능한 일이다. 고향의 맛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예감했을까. 이때 프랑스로 건너간 이탈리안 쉐프들이 트러플을 프랑스에 소개했고, 트러플의 맛과 향에 깜짝 놀란 프랑스 사람들이 더 즐겨 먹게 되었다. 흔히 프랑스 음식으로 알고 있는 '마카롱'도 원래 이탈리아 음식인데, 이 결혼과 함께 프랑스에 전해졌다는 설이 있다. 미식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하게 기록된 결혼이다.
그러니 트러플 파스타는 원래대로 피렌체에서 먹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카롱은 프랑스에 최고의 자리를 내어 주었고, 세계 어딜 가나 파스타는 잘하는 집들이 너무 많지만, '트러플 파스타' 만큼은 꼭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와인과 잘 어울리는 맛있는 요리를 마리아쥬(marriage, 결혼을 뜻하는 프랑스어)라는 기가 막히게 딱 맞는 말로 로맨틱하게 표현한다. 와인이 주인공이면 치즈나 푸아그라, 스시를 먹을 때는 사케, 우리나라에서도 홍어는 막걸리와 완벽한 마리아쥬를 이루는 것처럼 서로 잘 어울리는 술과 음식을 '마리아주'라는 말로 로맨틱하게 표현하는데 뜻도 어감도 너무 좋다. '마리아쥬'. 청담동 느낌은 아니고 이대 앞 웨딩 샾 이름 같기도 하지만 입 안에서 맛있는 음식과 술이 어우러지는 행복함을 표현하기에는 최고의 단어라고 생각된다.
같은 의미로 '마리아쥬'를 대신해서 '페어링'이라는 표현도 자주 쓴다. '마리아쥬' 보다 살짝 로맨틱함이 덜하지만 여전히 간질간질 꿀 떨어지는 느낌으로 가득한 '페어링'이라는 표현은 맛있는 음식과 그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장소나 분위기를 말할 때 쓰면 좋을 것이다. 'pair'는 '한 쌍', 'pairing'은 '한 쌍으로 묶어두기'라는 뜻이다. 트러플 파스타와 피렌체는 좋은 '페어링'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요리와 요리의 주재료가 생산되는 곳은 좋은 '페어링'이 된다. 가격이 완전히 착한 경우를 발견할 수 있으며, 가격이 착하지 않은 경우라도 생산지에서 먹는 음식은 충분히 만족할 만한 고퀄리티인 경우가 많다. 트러플 파스타도 피렌체에서 저렴까지는 아니더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만한 가격이었다. 가성비를 따지든 가심비를 따지든 산지에서 먹는 음식이 뛰어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바로 여기다"라고 생각했던 훌륭한 '페이링' 리스트이다.
햄버거는 미국,
타코는 멕시코,
쌀국수는 베트남,
초콜릿은 스위스,
플랫화이트 커피는 호주,
파스타는 이탈리아,
스시는......,
스시는 '강남'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예외'라는 게 있다. 실제로 강남 스시는 도쿄 긴자의 스시보다 비싸고 더 맛있다. 이웃 섬나라 스시 오마카세 분발하시던가! 말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