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아수 폭포,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터닝포인트
큰 일을 앞두고 백두산 천지를 종종 찾는 그의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또 가냐?" 하는 물음과 궁금증, 그리고 전 세계에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미국인 베프와 함께 세기의 이슈메이커. 운명의 순간에 현명한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신중을 기해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데 대자연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런 경우에 필요한 과정인 것 같다. 앞으로의 운명을 위해 심사숙고하는 시간은 터닝포인트가 되는데, 누군가는 백두산 천지라는 '위대한 대자연' 앞에서 터닝포인트를 맞고, 의미 있는 깨달음을 찾으려는 것 같았다.
'위대한 대자연'을 찾아 적극적으로 터닝포인트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지만, 평범한 경우는 대개, 수동적으로 터닝포인트를 만난다. 순탄한 일상을 살아가는 중에 입시, 입사지원에서의 실패, 실연, 투병생활, 가족을 잃는 슬픔과 같이 큰 고통을 겪은 후에 터닝포인트를 맞게 된다. 생각해보면 기쁨과 행복, 그리고 아픔과 고통이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터닝포인트는 주로 고통의 순간에 만난다.
체력이 고갈되고 정신력이 소진되는 지점, 시간 만이 약이 되는 고통의 정점을 맛보는 지점에 이르러야 그곳이 터닝포인트라고 느끼고 반전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이렇게 맞이한 수동적인 터닝포인트에서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써보며 'to do list(할 일 목록)'를 작성하기도 한다. 실패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고민하고, 아픔이 있었다면 마음을 추스르며, 달려오기만 했던 과거를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갖는다. 나에게 결여된 부분을 찾아 새로 할 일을 찾거나, 노력이 충분하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새로운 결심으로 하나하나 'to do list'를 채워나간다. 작심삼일이 되던 부지런히 'to do list'를 챙겨 행동에 옮겨서 살아가든 실패와 아픔을 딛고 터닝포인트에서 다시 출발한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이 있는 밀림 속에서 이구아수 폭포를 만나려면 서울에서 비행기를 최소한 두 번 갈아타야 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항에서 아르헨티나항공 국내선을 타고 이구아수 공항에 내려서 택시를 타면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여기부터는 이구아수 밀림 속을 덜컹거리는 낡은 기차를 타고 30분 넘게 계곡 위로 올라야 한다. 기차에서 내려 폭포수를 만나려면 다시 2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데, 저 멀리 물보라가 보이고 웅장한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하면, 한 걸음씩 다가서며 폭포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악마의 목구멍'이라고 불리는 이구아수의 한가운데로 바로 들어간다. 얼마나 많은 물이 동시에 떨어지는지 그 공포감에 사람들은 이곳을 '악마의 목구멍'이라고 부른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보다 먼저 위대한 대자연이 만든 엄청난 에너지에 감탄한다. 웅장한 물기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다가, 실수로 그 속에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리겠다는 두려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뼈도 못 추리겠다"는 말은 상대방과 대적하면 패배할 것인 뻔한데 그 패배의 정도가 심각하여 뼈를 수습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박살이 난다는 표현이다. 지진이나 화산 폭발과 같이 어마어마한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하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일 것이다. 이구아수는 대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동시에 그런 두려움을 느끼게 한 곳이었다. 끝없는 우주에 먼지와 같은 존재인 지구가 45억 살이라고 하는데, 그 먼지 속에서 겨우 100년을 살아야 잘 사는 인간의 나약함마저 연상되어 소름 돋게 했던 순간, 위대한 대자연을 경험하면서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는 시간임을 직감했다. 국제선,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택시, 기차를 탔으며 밀림 속을 걸어서 지구 반대편까지 왔다는 생각과 그곳에서 만난 대자연 앞에서, 백두산 천지를 찾았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던 적극적인 터닝포인트.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자는 거창한 질문에 행복을 찾자는 소소한 답을 얻어오긴 하였다.
실패를 맛보고 만난 수동적인 터닝포인트에서 쓴 'to do list'에 꼭 해야 하는 '할 일'들로 채웠었다면, 대자연을 경험한 터닝포인트에서는 행복을 찾기 위해 버려야 할 것, 비워야 할 것으로 쓰는 'to delete list'를 떠올려 본다. 생각해보면 할 일을 꼼꼼히 잘하면서 사는 것만큼이나 나쁜 습관과 지나친 욕심을 버리는 것도 중요한 것임을 배웠다. 책을 통해서 강연을 통해서 버리고 비우는 연습도 해보았다. 일상 속에서 꼭 필요한 일들을 적으며 'to do list'를 채웠다면, 여행에서는 버리고 비워야 하는 것으로 'to delete list'를 채워보았다.
실패의 쓴 맛을 보고 떠밀려 작성하는 'to do list'와, 이구아수 폭포 앞에서 채웠던 'to delete list'는 태생적으로 다른 성질이 있다. 모두 터닝포인트에서 앞으로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한 결심과 닿아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위대한 대자연을 느끼고 여행에서 얻은 '쉼'으로 작성했던 'to delete list'의 뒷면에는 지우고 버리면서 선제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적극성과 자기주도성이 숨어있다.
먼저, 'to delete list'는 pro-active 한 힘이 있다.
좋아하는 표현인 'pro-active'는 '상황을 앞서서 주도하다'라는 의미인데, 외국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비즈니스를 할 때 즐겨 사용하였다. 경쟁에서 스마트하게 선제적으로 영업 활동을 해야 할 때, 침체된 시장에서 마켓 상황을 탓하지 않고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할 때 사용하였다. 문제 상황에 떠밀려 쓰는 'to do list'와는 다르게 'to delete list'는 'pro-active, 상황을 앞서서 주도하며' 작성하게 되는데, 무한경쟁 비즈니스 현장에서 승리하겠다는 긍정적으로 살벌한 감성도 녹아있다.
그리고, 'to delete list'에 사용하는 단어는 짧지만 구체적이며 강한 자극을 준다.
'to do list'에 흔히 '내일부터 다이어트'라고 쓰지만, 'to delete list'에는 '뱃살, 팔뚝살'이라고 쓴다. 훨씬 구체적이다. 'to do list'에 '금연'이라고 쓰는 것보다 'to delete list'에 '내 건강의 적'이라고 쓰는 편이 더 강한 자극을 일으킨다.
'to delete list'를 작성하는 것은 익숙하지 못하다. 연초에, 학기초에, 월요일 오전에 책상에서 수많은 'to do list'를 만들었던 경험과는 반대이다. 익숙하지 않지만 효과에 대한 의심은 줄었으니 앞으로는 'to delete list'를 작성하기로 했다. 언젠가 또 다른 위대한 자연 '아이슬랜드 화산', '히말라야', '백두산 천지'로 여행을 하고 새로운 'to delete list'를 작성할 때, 이구아수에서 작성한 'to delete list'의 버림과 비움을 모두 실천하며 살았는지 확인할 것이다.
종종 찾는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하는데, 다음번 백두산 천지를 찾아 위대한 대자연을 경험하는 그의 'to delete list'에는 단 한 글자 '핵'이 포함되어 있기를 바라며. 그래도 잘 안되면 미국인 베프와 이구아수에 한번 다녀오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