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Aussie Coffee
에스프레소나 더 진한 맛의 리스트레토에 라떼보다 더 부드러운 거품을 올리는 '플랫 화이트' 커피는 호주에서 태어났다. 1984~5년 경부터 카페 메뉴판에 올랐다고 하니, 플랫 화이트는 커피 중에서 요즘 90년생들 말로 아직 '뉴비'다. 공덕동 카페에서 처음 접한 것도 불과 3년 전 정도였던 것 같고, 곧 50살이 되는 스타벅스도 2015년에 처음 미국 매장에 출시했다고 한다.
거품이 부풀어 오른 그대로 마시는 카푸치노와 달리 평평하다고 해서 'flat', 우유로 마이크로 폼을 만드니 당연히 하얀 'white', 그래서 '플랫 화이트'라고 한다. 라떼와 비슷하고, 시나몬을 올리지 않으면 카푸치노와도 비슷하다. 거품 커피를 자주 즐기지 않는 사람이 라떼, 시나몬 없는 카푸치노, 그리고 플랫 화이트를 블라인드 테이스팅 한다면, 그 차이를 구분해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대신 머그잔이 아닌 유리잔에 담고 양이 적다는 것으로 구분은 가능하다.
커피는 사람 베프보다 더 자주 만나는 진짜 베프가 되었고, 플랫화이트 커피는 '뉴비'이기 때문에 아직은 좋은 호기심을 가지고 알아가는 중이다. 양이 적고 부드러운 맛이니, 하루 중에 두 잔, 세 잔째 커피가 부담스러운 늦은 오후나, 약은 약사에게 졸림은 바리스타에게 끌려갈 때, 그냥 거품 커피가 먹고 싶을 때 갈수록 카푸치노보다는 플랫화이트를 찾는다. 라떼나 카푸치노를 좋아하는 취향이라면 호불호 없이 만족시켜줄 맛이다. 사실은 아직 희소성이 조금은 살아있는 것 같아서 큰돈 안 들이고 '있어빌리티' 살려주는 "된장 아재, 된장 오빠" 아우라를 조성하고 싶을 때 주문하기도 한다. (솔직히......, 아님 말고 !)
호주에는 '아메리카노'와 같은데 '롱 블랙'이라는 커피도 있다. 아메리카노는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주둔한 미군들이 에스프레소에 물을 섞어 마시던 커피라고 해서 생긴 말인데, 옛날 말로 '아메리칸 스타일' 요즘은 '아메리카노'라고 부른다. 호주사람(=Aussie [오지])들은 에스프레소와 물, 딱 두 가지의 재료로 머그잔에 물을 먼저 넣으면 '롱 블랙', 에스프레소를 먼저 넣으면 '아메리카노'라고 부른다. 롱블랙은 조금 적은 양으로 물을 먼저 넣고, 그 위에 에스프레소를 올리기 때문에 아메리카노보다 크레마가 처음에 좀 더 많이 느껴진다.
크레마가 사라질 때까지 천천히 마시다 보면 아메리카노와 롱블랙의 차이는 더 작게 느껴지는데, 단 롱블랙이라는 이름이 더 직관적이라는 생각이다. 아메리카노는 이름의 유래를 알기 전까지 뭔가 미국맛(?)을 느껴보고 쓸데없이 미각을 예민하게 작동시키게 했지만, 롱블랙은 손에 쥐는 순간 그리고 맛보는 순간 이놈이 어떤 놈인지 딱 알려준다. 주문할 때도 롱블랙이 입에 더 착착 붙는 기분이다.
호주에 '롱 블랙'이 있으면 '숏 블랙'도 있다. 롱블랙 보다 입에 더 착착 붙고, 쉽게 연상되는데, '숏블랙'......, 당연히 '에스프레소'를 그렇게 부른다.
Specialty Coffee 중에 "% Coffee"라는 브랜드가 있는데, "퍼센트 커피"라고 부르지 않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응 커피"라고 부르는 언어천재 우리나라 사람의 커피 사랑도 대단하지만, 여기 호주 사람들은 진짜 '커피 광'이라고 불려도 될 것 같다. 커피 사랑이 유난히 대단한 나라라는 것은 여러번 들었지만, 좋은 크레마에 대한 집착, 좋은 쪽으로 과도한 라떼 아트와 네이밍(이름짓기) 기술까지 보면 여긴 '커피 광'을 넘어서 커피 천재가 된 것 같다.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시드니 여행이 끝났지만, 거품 커피 종류는 테이크 아웃 커피 뚜껑 아래에도 나뭇잎이나 하트를 그려놓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고 있을 만큼...
오래전 커피는 드립이나 모카포트를 사용했기 때문에 준비하는 시간이 길었는데, 이탈리아어로 '빠르다'라는 뜻의 에스프레소(Espresso,영어로는 express) 머신을 만들어 커피를 빠르고 맛있게 마실 수 있게 한 이탈리아는 커피를 커피답게 그리고 다채롭게 만들었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이 건너간 아르헨티나는 커피계의 숨은 고수가 되었고, 미국의 스타벅스는 말로 설명이 어려운 뭔가 고급진 감성을 듬뿍 담아 커피를 밥보다 중요하게 만들었다면, 커피의 미래에 젊은 나라 호주의 커피 천재들은 커피로 뭔가 재미있게 큰 일을 낼 것 같다. 바리스타 중에서 가장 유명한 '폴 바셋, Paul Bassett'님도 호주 사람이라고 하는데, 글로벌하게 'Aussie Specialty'라는 영역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며, 서울에서 이탈리아 커피, 미국 커피 대신 호주 커피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른다.
재미있게 지켜봐주겠~어. 젊은 나라 호주트레일리아 Aussie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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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질 리가 없는 마포대교 아래 하우스에서,
'에스프레소 도피오'를 마시며 밤새 화투 치던 '달건이계의 전설' 곽철용 님이,
20년 후에 '에스프레소 도피오'를 이렇게 시키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숏블랙 !! 묻고 더블로 가 !! "
시드니 핫플거리 Surry Hills, 파라마운트 영화사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