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서살이 Jan 05. 2021

작은도서관 순회사서

9개월 비정규직

  사서자격증을 신청하고 기다리며 '사서이마을(네이버 카페)' 채용공고 게시판을 매일매일 확인했습니다. 관련 경력이 전혀 없다 보니 과거의 경험과 이력을 어떻게든 도서관과 연결 지어 자기소개서를 완성했는데 거의 소설 수준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창작의 고통을 맛본 것 같습니다. 지금 읽어보면 도서관 현실을 전혀 모른 채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가득한데 어떻게 통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자격증이 발급되고 3-4개 공공도서관에 기간제 사서직을 지원했는데 두 곳에서 1차 서류합격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하필이면 연락받은 두 곳의 면접일자와 시간이 겹쳤습니다. 당시 면접 기회조차 소중했던 터라 어떻게 하면 두 개의 면접을 모두 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A도서관에 전화해 '운전면허 시험 때문에 30분 정도 늦을 거 같은데 면접을 꼭 보고싶다'고 간절히 말씀(이라 쓰고 읽는 건 거짓말을)드렸더니 흔쾌히 양해해 주셨습니다.


  면접 당일 날, B도서관의 면접이 끝나자마자 택시를 타고 가 A도서관의 면접을 봤습니다. (그날 탔던 택시 기사님께서 저의 사정을 듣고 취준생인 자기 아들 같다며 정말 총알같이 저를 데려다 주셨습니다. 내릴 때는 면접 잘 보라고 화이팅까지 외쳐주셨는데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함을 전합니다!) B도서관에서 면접을 보고 이동하는 시간까지 해서 거의 1시간 정도 늦었는데 면접관들의 자비로 다행히 면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면접을 치르고 그 날 바로 A도서관의 합격 연락을 받았습니다. (B도서관도 순회사서 면접이었는데 면접 중에 경력이 없어서 채용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대놓고 해주셨습니다ㅋㅋ그럼 왜 면접을 부른 걸까요??ㅋㅋ) 이렇게 저의 사서 근무가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9개월짜리 비정규직이었지만 사서로 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날이었습니다.(물론 그 감사가 오래가지 못했지만요.. ㅠ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는 순회사서는 '작은도서관 운영 내실화'를 위해 사서를 뽑아 작은도서관에 파견하는 사업입니다. 서울을 예시로 들자면, 25개 각 자치구에 순회사서를 1~2명 정도 파견해 1명의 순회사서가 해당 자치구의 4-5개 작은도서관 업무를 지원하는 형태죠. (예를 들어, 마포구에 파견된 1명의 순회사서가 마포구 작은도서관 4개소를 돌아가며 근무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9시까지 A도서관으로 출근하고, 할당된 작은도서관 4개소를 하루에 한 곳씩 돌아가며 근무했습니다. 주 업무는 대출반납, 회원카드 발급, 배가(책 정리), 훼손도서 보수, 상호대차(다른 도서관의 책을 원하는 도서관에서 받는 자료공동 이용서비스) 등 기본 업무였습니다. 그 외에도 작은도서관의 실무자인 봉사자들에게 업무를 알려드리거나, 장서점검을 보조하기도 했습니다.


  순회사서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작은도서관 실무자(자원봉사자 또는 상주 직원)들이 저에게 보인 냉담함이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지역은 대부분 새마을문고로 시작된 작은도서관이라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됐고, 자원봉사자들의 자부심 또한 강한 편이었습니다. 주로 주부였던 자원봉사자들은 저보다 나이가 많았고, 최소 몇 년씩은 도서관 봉사를 해오신 분들이라 텃새(?)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서른이었는데 그분들이 보기엔 제가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없으니 신뢰가 없었던 모양이었습니다 . 심지어 자신들을 감시하러 온 것 같아 불편하다고 대놓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분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괜찮은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에게 인생을 먼저 산 선배로서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한 가지 힘들었던 점은 급여였습니다. 3월 중순부터 시작한 순회사서 첫 달 월급(세후)은 777,777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작은도서관을 오가며 발생하는 교통비 명목으로 활동비가 130,500원 지급되어 총 908,277원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만근한 달에 받은 월급(세후)은 1,307,460원이었습니다. 그리고 활동비 명목으로 20만원에서 30만원 사이를 받아 평균 월급이 150~160만원 정도였죠! (활동비는 그 달에 작은도서관을 몇 번 가느냐에 따라 금액이 산정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4년 전 급여이긴 하지만 다시 봐도 전문직 급여치고는 참담한 수준입니다.. 심지어 순회사서는 9개월 기간제라 퇴직금도 없었습니다.     


통장에 찍힌 순회사서 첫 달 월급 내역



  그러다 근무기간이 절반정도 지난 시점부터 마음 한구석이 초조하더니 막바지에는 굉장히 불안했습니다. 고용의 안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낀 시기였습니다. 월차는 한 달에 하나씩만 사용할 수 있었고, 면접을 보러 가려면 갑자기 휴가를 써야 하는데 작은도서관 근무에 차질이 생겨 약간의 눈치가 보였습니다. 게다가 어중간한 경력으로 다른 곳을 지원하기도 애매한 상태였죠. 경력을 쌓기 위해 이런 조건(9개월, 160만원)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 조금은 씁쓸했습니다. (제가 사회초년생이 아닌, 다른 직종에서 어느 정도 일을 하고 와서 그런지 활동비를 제외한 기본 월급이 130만원이라는 현실이 매달 충격이었습니다. 사서 직전에 했던 경리사무보조도 이 백만원정도 받았는데 사서 급여가 이 정도라니.. 참으로 미스터리했습니다. 전문직으로 분류되지만 급여 수준이 최저임금을 받는 알바와 거의 다를 바 없었죠.)


  현재는 순회사서로 첫 발을 디딘 것이 사서로서의 저에게 아주 좋은 시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저는 그런 열악한 근무조건을 감사히 받아들일 자신이 없거든요! 그리고 정말 좋은 점은 공공도서관에 비하면 관리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작은도서관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되었습니다. 간혹 작은도서관 관계자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작은도서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불만이 많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사서들이 있는데 저는 그분들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공공도서관에서 지역의 작은도서관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을 때, 작은도서관 실무자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해나갈 수 있었고 이후에 만난 순회사서들의 고충도 잘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다시 또 하라고 하면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순회사서지만, 저의 첫 번째 사서직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도서관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다른 구 순회사서를 만나면 굉장히 반갑고, 그분들이 얼마나 외롭고 힘드실지 아니까 꼭 잘 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국에 있는 순회사서 선생님들! 화이팅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서자격증 취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