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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살이 Oct 24. 2024

폐암 걸린 아빠에게 담배를 사다 드렸다.


아빠가 폐암에 걸렸을 때 일이다.


 아빠는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서둘러 강남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신청을 했다. 하지만 병원에는 아빠가 누울 여유 베드가 없었다. 일단 기다리라고 했다. 다행히 일주일 후, 베드 하나가 생겼으니 오늘 안으로 입원 수속을 밟으라는 연락이 왔다. 아빠는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만 가지고 지방에서 서울로 급히 올라왔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나는 아빠의 연락을 받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을 가는 동안 아빠를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질까 봐 걱정이 됐다. 예상과 달리 병원에서 만난 아빠와 나는 덤덤했다. 아빠는 겉으로 봤을 때 말짱해 보였다. 다만 살이 좀 빠지고 평소보다 목소리가 작았을 뿐이었다. 어쩌면 아빠는 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덤덤한 척한 건지 모르겠다. 혹은 고작 23살이었던 나는 사람 얼굴에서 감정을 읽어낼 줄 몰라 아빠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담당 의사로부터 앞으로 살 날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빠는 여전히 담담해 보였다. 그러더니 내게 병원에서 쓸 생필품이 필요하다며 대신 사다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담배 한 갑도 같이 사 올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빠 눈빛에서 어떤 간절함을 읽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봐왔다. 내가 초등 저학년이었을 때는 집이나 식당에서 담배 피우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빠 재떨이에는 늘 담배꽁초가 가득했다. 나는 아빠가 담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고작 몇 개월밖에 못 산다는 사람에게 담배마저 앗아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비흡연자라 담배 피우는 이유나 매력 같은 건 전혀 모른다. 심지어 아빠가 폐암에 걸린 원인이 담배라고 확신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한테 담배는 ‘담배 그 이상의 의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어렴풋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고 담배를 사 오겠다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도 않았다. 의사는 살 날이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예견했지만 사람 일을 어떻게 아는가. 혹시라도 기적이 일어날지.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담배를 끊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이 모든 걸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아빠가 오죽하면 내게 ‘담배 한 갑’을 부탁했겠는가.


 나는 아빠에게 ‘괜찮겠어?’ 물었다. 아빠는 주저하지 않고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나는 병원 편의점에 들러 치약, 칫솔, 비누, 휴지, 약간의 간식과 함께 담배 한 갑을 샀다. 담배를 산 게 마치 위법을 저지른 것 같아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서 땀이 났다. 초초하고 불안했다. 과연 내가 잘한 걸까?


 그때 스스로의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나를 원망할까 싶어 다른 가족들에게 말도 못 했다. 스스로 잘한 일이라는 확신이 없으니 가족들이 나를 이해해 줄는지 자신이 없었다. 엄마나 언니가 내게 정신 나간 짓이라고 하면 ‘아빠 눈빛이 간절해 보여서’라는 변명 따위는 아무 쓸모가 없을 것 같았다.


  아빠가 입원한 지 3주 정도 됐을 때, 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료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집으로 환자를 데려가거나 집 근처 병원에서 연명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결국 가족들이 있는 지역 의료원으로 아빠의 거처를 옮겼다. 옮긴 지 한 주만에 아빠는 숨을 거두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고작 한 달만이었다. 가족들과 떨어져 서울에 살았던 나는 아빠의 임종을 함께 하지 못했다.


 나는 부고를 받고 서울에서 지역 의료원을 가는 동안, ‘담배 한 갑’을 떠올렸다. 내가 그때 그 담배를 사다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달랐을까? 아빠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한 건데 내가 덜컥 사다 준건 아닐까? 아빠는 ‘괜찮아’라는 말에 군말 없이 담배를 사다 준 딸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이 엇나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것처럼 혹시 아빠의 행동을 내가 바로잡아 주길 바랐을까?


 나는 아빠가 그 ‘담배 한 갑’을 다 피웠는지 혹은 한두 개비 피우다 버렸는지, 그것도 아니면 뜯지도 않고 버렸는지 전혀 모른다. 내 결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어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이 두려웠던 만큼 아빠가 그 담배를 어떻게 했는지 알게 되는 것도 두려웠다. 그 담배가 아빠에게 위로를 주었다고 해도 내게 위로가 되지 않았을 거고, 그 담배를 버렸다 해도 위로가 되지 않았을 거다. 고작 담배로 아빠를 위로하려 했던 것도, 결국 버려질 담배를 사다 드린 것도, 어느 것도 부끄럽지 않은 쪽이 없기에.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내가 어떻게 했으면 더 좋았을지

쉽사리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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