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날갯짓이 도서관에 태풍을 일으킬 수도
공립 작은도서관에서 근무할 때였다.
오전 근무를 끝내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액정을 보니 발신자가 도서관이었다.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 선생님, 저 ○○인데요. 식사 중에 죄송해요."
전화를 건 사람은 최근 입사한 계약직 직원이었다.
"아~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아.. 그게.. 이용자분이 상호대차를 신청하셨는데요. 그 책이 어제 도착해서 지금 대출 대기 중이에요. 근데 이용자분이 이따가 A도서관에 갈 일이 있다고, 그쪽으로 책을 다시 보내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책이 이미 저희 도서관에 도착했고, 지금은 수령도서관을 바꿀 수가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동안 다른 직원들은 다 해줬는데 무슨 소리냐면서 화를 내시더니 확인하고 다시 전화하라면서 끊으셨어요..."
계약직 직원의 목소리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에이~ 그건 말도 안 되죠! 제가 근무하면서 그렇게 해 준 적이 없어요."
"아~ 정말요? 그 이용자분은 그동안 다른 사서들은 어떻게 해줬겠냐면서 되는 거 다 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더라고요..."
"네?? 그 이용자분 참 이상하시네요~ 근데 해주고 싶어도 프로그램상 수령도서관을 이제 와서 바꿀 수가 없어요. 그 책을 어찌해서 A도서관으로 보낸다고 해도 A도서관에서 대출 처리도 안되구요. 그리고 그분이 그 책을 이따가 빌리시려면, 저희가 뭐 그분 가시기 전에 A도서관으로 직접 갖다 드려야 돼요? 상호대차 차량은 오전에 이미 떠났잖아요~"
"그럼 어떻게 말씀드리면 돼요?"
"지금은 시스템 상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A도서관으로 보내드릴 수 없다고 하세요~"
"근데.. 제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돼서 자기를 잘 모르는 거 같다면서, 자기가 이 지역에서 몇 년째 동아리 회장까지 해서 사서들이랑 친하다고 하시던데 괜찮을까요?"
"동아리 회장이요??? 동아리 회장이 무슨 프리패스인 줄 아시나... 그래서 이름이 뭐래요?"
"강줄리요..."
"강줄리...? 어..? 아앗!!!! 강줄리!!!!!!"
"누군지 아세요?"
"아... 알긴 알죠. 직접 말을 섞어 본 적은 없는데 A도서관 행사할 때 멀리서 보고 하도 열심히 하시길래, 누구냐고 A도서관 담당자한테 물어봤었거든요. 이 지역에서 독서동아리 사업을 굉장히 열심히 하시는 분이라고만 들었어요! 이 분 성함이 또 이국적이라 한번 들으면 잘 안 까먹게 되잖아요~"
"그분이 자기 이름만 대면 직원들이 다 안다고 하시더니, 진짜 그렇네요.."
"그런 말까지 했어요? 참나... 특이하시네... 겉으로 보기에는 인상 참 순하고 좋아 보이셨는데... 암튼 누가 해줬는지 모르지만 그건 그거고 원칙은 원칙이죠 뭐. 독서동아리 회장까지 하시면 책도 많이 읽으실 텐데, 왜 그러실까요? 암튼 안된다고 잘 말씀해 주세요."
"네~ 그럼 제가 전화해서 다시 안내할게요."
"혹시라도 또 이상한 말로 따지시면 제가 이따가 전화드린다고 해주세요~ 제가 처리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도서관으로 복귀했다.
아까 통화한 직원에게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그 직원은 안내하다가 안될 거 같아서
결국 내 자리번호를 알려 주었다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잘했어요!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가서 얼른 점심 먹어요~ 맛있는 거 먹어요. 맛있는 거!"
직원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이더니 나갔다.
직원이 떠나고 30분쯤 지나서 내 자리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작은도서관 입니다"
"네. 강줄리입니다."
당황스러웠다.
통성명을 나눈 사이도 아닌데 다짜고짜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이 당참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 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제가 상호대차로 신청한 책을 A도서관으로 보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안된다고 하셨다면서요?"
상대의 목소리는 거의 칼에 가까웠다.
그 날카로움에 내 몸 어딘가가 살짝 베인 듯 심장이 팔딱거렸다.
"아~ 그 도서는 원칙적으로 저희 도서관에 이미 도착했기 때문에 다른 도서관으로 변경해 드릴 수가 없어요."
"안된다고요? 저는 전에도 이렇게 전화로 말씀드려서 받은 적이 있는데요!!"
"글쎄요.. 이미 도착한 도서를 지금 와서 변경하는 거 자체가 프로그램상 안 돼요~"
"이 부분, 제가 A도서관측에 물어보겠습니다!!!"
그녀의 단호한 말투에서
내 말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의심하고 있다는 인상을 한껏 느꼈다.
"그럼 그 책 반납처리 해주세요!!"
이번에는 책을 아예 반납해 달라고 요청했다.
"네? 그 책은 대출된 도서가 아니기 때문에 반납처리를 할 수가 없어요."
"지금 대출했다가 반납처리 하시면 되잖아요!!!"
그녀는 버럭 신경질을 냈다.
"이용자분께서 직접 오셔서 대출하시고 반납하셔야 저희가 처리해 드리는 거죠. 이렇게 유선으로는 처리해 드릴 수는 없어요~"
"당신 이름이 뭐예요?"
상대는 자신이 원하는 뜻대로 되지 않으니
최후의 수단인 '너 이름이 뭐야, 사장 나오라고 해!'를 꺼내 들었다.
나는 내 이름 석자를 또박또박 말했다.
내 이름을 들은 그녀는
자신이 상급 도서관에 전화해서 이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상대 입으로 듣지 않았을 뿐,
'내가 너 이거 확인해서 아니면 가만 안 둘 테니까 각오해'였다.
눈치 없는 내 심장은 더 빠르게 팔딱거렸지만,
다행히 내 머리는 이성을 잃지 않았다.
두려웠지만 두렵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라는 내 대답을 끝으로,
통화는 끝이 났다.
이런 전화를 점심이라도 먹고 받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빈 속에 받았으면
안 그래도 배 고픈 내 위장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1분도 채 되지 않는 통화였는데,
마치 1시간을 시달린 것처럼 온몸에 힘이 쭈욱 빠졌다.
잠시 후,
A도서관 사서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이용자와 통화를 했느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대뜸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도서관 일에 협조를 잘해주시는 분이라
자신이 몇 번 편의를 봐줬더니
그거를 그쪽 도서관에도 요구한 거 같다고.
다해주는 직원이 누군가 했더니 이 사람이었다!
한편으론 '최소한 그 이용자가 거짓말을 하진 않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한 직원은 앞으로는 조심할 테니 이번만 좀 이해해 달라고 했다.
양해를 안 하면 달라질 게 없으니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