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S는 말이 없다.
나는 S를 고등학생 때 만났다. 그녀와의 만남은 내 학창 시절의 경로 이탈로부터 시작한다.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유구하게 이어졌던 지루한 내 학창 시절.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싫었던 나는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를 지망했다.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라지만 버스 타고 오르내리는 등하굣길이 색다르기는 했다. 학구열이 높은만큼 사교육률이 높기로 유명했던 지역의 학교였던지라 오빠는 ‘바닥이나 깔아주러 가냐’고 비아냥거렸지만 그때의 나는 작고 오래된 나의 동네를 벗어나고 싶었다.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질 거라는 기대 따위는 없다고 시큰둥하게 말했지만 그래 봤자 나 역시 그저 그런 열일곱 살이었다. 나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질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편입해서 1년간 공부했던 예술원과 대학교를 제외하고 비교적 가장 가까운 학창 시절의 기억은 고등학교인데도 왜일까? 고등학교의 기억은 내 학창 시절 폴더의 아주 작은 용량만을 차지한다. 그런데 그 미미한 용량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S다.
늘 그렇듯이 S와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마 무슨 특별활동부서를 같이 했던 것 같다. 기억이라는 건 정말 어떻게 머릿속에 새겨지는 걸까 싶다. 학생 때 S와의 기억은 백남준아트센터에 갔던 것, 코엑스에서 밥을 먹었던 것, 또··· 모르겠다. 굳이 머릿속에 새겨지지 않아도 될 기억들이 그것도 아주 희미하게 남겨져 있다. 심지어 그 희미한 기억마저도 몇 없다.
S가 미술을 공부하던, 흔히 말하던 예체능 준비 학생이었던 것도 크다. 그때는 친했던 친구들과 석식을 거르고 중앙 현관 계단에 앉아 배도 부르지 않고, 맛도 없고, 영양가도 없는 매점 불량식품들을 사서 먹으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솔직히 고등학생 때의 가장 선명하고 가치 있는 기억들은 그런 무수한 시간 낭비의 기록과 동일하다. 세 명밖에 남지 않은 야간 자율학습 교실에서 자기는 없는 척하며 자겠다던 친구가 선생님께 걸려 깔깔거리며 웃던 그런 기억들 말이다. 아무 곳이나 걸터앉아서 스무 살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지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 각자 떠오르는 수천 개의 유치한 꿈들과 한심한 망상들을 품고 그저 굴러가는 낙엽이나 가리키며 크게 웃고 떠드는 것. 그냥 한참 그런 것들이 재미있을 때였다.
S는 그 시간을 오롯이 자신의 미래에 양보했다. 갑자기 S의 학창 시절을 내 멋대로 안쓰럽게 여기는 것 같은 뉘앙스이지만, 전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언제나 S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꼭 그것이 하고 싶다는 마음. 그것‘만’ 하고 싶다는 마음. 나에게는 오기도 있고, 끈기도 있고, 계획력과 실행력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심’이 없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그로부터 근 10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깨달은 사실이긴 하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다고 확신했었다. 이거 하다 그만하고 저거 하다 멈추는 시간이 10년쯤 흘러서야 내가 깨달은 것은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고 유일한 ‘중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욕심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이것이 나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지만, 결론이 안 섰을 때는 내가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말만 앞서고 노력은 하지 않는, 결과를 위해 과정을 인내하지 않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이 바로 나인가 하는 생각. 아니니까 말이지만, 그때는 미처 인지하지 못한 S를 향한 부러움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꼭 그렇게 살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S는 정말 말이 없었다. 그래서 정작 학교를 함께 다니는 동안에는 지금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내향적이고 낯을 가리는 나는 S가 나를 어색해하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그걸 의식하면 나도 어색해져서 매번 먼저 말을 붙이곤 했다. S가 특별히 나에게만 그랬던 것 같지는 않지만, 그다지 사교적이지 않은 나로서는 ‘S도 나를 참 재미없다고 생각하겠구나.’ 싶었다.
내 생각에 우리는 졸업하고 더 가까워졌다. 왜인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잘 지냈다. 싸우지 않았다거나 둘도 없는 사이로 딱 붙어 지냈다거나 그런 의미의 ‘잘’이 아니라 정말 안정적이고 평화롭고 꾸준하게 지냈다. 모르겠다. 서로의 방식에 익숙해진 걸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고등학교 3년의 시간 동안 나는 S가 나를 들어주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말이 없는 사람만의 대화 방식은 들어주기라는 것을 S를 통해 배웠다. S는 늘 내게 쓰는 편지에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재미없는데’라는 문장으로 스스로를 수식하곤 했지만 나는 S와 나의 대화에서 늘 즐거움을 느꼈다. 그건 아무 하고나 가질 수 없는 부류의 즐거움, 그러니까 ‘편안함’이었다.
S와는 영국에서의 시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당시 대학을 졸업하고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바리스타를 하고 있던 나는 모은 돈을 모두 털어 맥북과 영국행 티켓을 산다. 믿을 구석이 있어서 편한 마음으로 떠났다. S가 그곳에 있었으니까. S는 런던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고 있었다. 이전에 이미 3주간의 짧은 유럽 여행을 하고 돌아온 나는 그때 가보지 못한 영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꼭 영국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S가 그곳에 있었기에 빠르게 마음을 결정했을 뿐이다.
히드로 공항에서 S를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반갑게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한국이 아닌 곳에 있는 S를 보자 정말 반가웠다. 튜브 안에 앉아 우리만 다른 말로 대화를 나누는 게 재밌었다. 분명 그녀가 더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내가 떠나온 그곳과 같은 곳인데도 어쩐지 S가 낯설었다. 영국에서의 생활로 녹아든 어떤 분위기 때문인가 싶었다.
S는 정말 이타적이었다. S가 빌려준 테이트 회원카드 덕분에 나는 테이트 모던과 테이트 브리튼을 원할 때마다 오고 갔다. 특히 테이트 모던은 S가 지내던 집과 멀지 않아서 한국으로 돌아갈 즈음에는 지도를 켜지 않고도 오고 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집에서 지내는 동안 S는 자기가 누리는 모든 것을 내게 누리게 해 줬다. S는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과분했다. 테이트에서 만났던 내 인생 화가 마크 로스코와 데이비드 호크니 때문만은 아니다. 그냥··· 그냥 그녀가 나에게 들여준 시간 전부가 과분했다. 그녀는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 같지만··· 그건 정말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S를 닮은 조용한 기억들.
기억은 침묵하면서도 선명할 수 있다. S와의 기억이 그렇다. S와의 기억은 S와 닮았다. 과묵하다. S와 또 다른 S가 있던 브라이튼에도 가고, 바스와 노팅힐, 옥스퍼드와 코츠월드 그리고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에도 갔지만, 그 모든 기억을 다 합쳐도 따라올 수 없는 멋진 기억이 있다.
일을 마친 피곤한 S를 이끌고 향했던 프림 로즈 힐에서의 낮잠. 냉동 피자와 함께 보았던 영화 《마미》와 혹평을 퍼부었던 영화 《노트북》. 쪽지와 함께 건네받은 사과파이. 끼니마다 만들던 맛있는 저녁과 서로의 생일을 챙기던 카나비 스트리트. 비를 쫄딱 맞으며 뛰었던 런던 브릿지와 머리를 털며 들어갔던 작은 펍. 이곳저곳 쏘다녔던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 정류장에 앉아 먹던 하트 모양 파이와 한강의 『채식주의자』 영문판을 샀던 낡은 서점. S가 일하던 일본식 찻집과 종종 포장해서 먹던 비싸고 적은 양의 초밥. 집주인이 만들어준 식사와 아이들의 수줍은 인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났던 세련된 잡지 가게와 친화력 좋은 고양이.
크고 화려하고 좋은 것들을 뒤로하고 나는 S를 닮은 잔잔한 바람 같은 기억만을 새기고 있다.
생각해보면 S와의 모든 기억은 그녀를 닮았다. 그녀 자체로도 그렇다. S가 하는 말과 행동, 표정과 눈빛 그녀가 가진 직업과 삶의 태도는 정확히 한 방향을 향한다. ‘중심’이 있는 학생이었던 십 년 전의 그녀는 그대로 ‘중심’이 있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함께 했다는 사실이, 그녀가 묵묵하게 스스로를 일궈나갔던 길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퍽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물론 나도 그런 어른이 되었다. 중구난방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으로.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녀 역시 나와 함께해주었다. 내 ‘중심’이 그녀와 같이 올곧지 않다는 것을 내가 나 스스로를 공격하는 무기로 쓸 때 조차도 그녀는 함께해주었다. S가 매해 나의 생일마다 주는 두 장의 카드 중 한 장에는 나에게 주고 싶은 문장이 담겨 있다. 그 문장은 매번 다르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프리다 칼로의 문장이다.
“I used to think I was the strangest person in the world, but then I thought there are so many people in the world. There must be someone just like me who feels bizarre and flawed in the same ways I do. I would imagine her, and imagine that she must be out there thinking of me too. Well, I hope that if you’re out there and read this and know that, yes, it’s true I’m here, and I’m just as strange as you.”
하지만 다른 문장들도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 나는 알고 있다. 그 문장들을 통해 그녀가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너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야. 특별한 사람이지.’라는 것을. 그녀는 그렇게 내 무기를 거둬가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무디게 갈아주었다. 무기를 빼앗지 않고도 그 무기로 나를 상처 입힐 수 없도록. 이것 또한 몹시 그녀와 닮은 방식이었다.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던 테이트 모던의 상설 전시들을 보며 나는 S의 작품이 그곳에 걸리는 상상을 했었다. RA에 다니는 S를 상상했었다. 그 앞을 바삐 걸어 다니는 학생 중 한 명이 S였으면 좋겠다고, 저들의 평범한 일상이 S의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S가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꿈꾸고 계획하고 있건 상관없이 나는 아직도 이 상상이나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차라리 이건 나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조용히 갤러리를 걷는 동안 나는 언젠가의 미래에 그녀의 작품이 이곳에 걸리는 장면을 끊임없이 그렸다. 그녀에게는 자격이 충분했으니까. 그 상상이 즐거워 몇 번이나 같은 층을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성실한 그녀가 좋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부지런히 타인과 세상을 눈에 담는 그녀의 태도가 좋았다. 속단하지 않는 느릿한 판단도, 속을 알 수 없는 고요함도 좋았다. 침묵을 지키는 그녀의 방식이,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그녀의 강인함이 좋았다. 내게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그것으로 나를 재단하지 않아서, 나와 다른 그녀가 그 다름을 특별함이라고 이야기해줘서 좋았다. 내 쓸모와 존재의 가치를 부정하는 내 말을 가만히 듣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함께 찍은 사진을 전송해주는 그녀가 좋았다.
그녀의 고요한 대답이, 침묵의 대화가 좋았다.
5월의 바람을 닮은 작은 바람 같은 그녀가 좋았다.
생일 축하해, S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