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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Jul 15. 2022

내가 만난 사람들

08.





  책은 여러모로 나를 구한다.          



  나의 책 사랑은 유별나다. 나는 언제나 궁금한 것이 있거나 흥미가 생기는 것이 생기면 부리나케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 키워드를 검색해보곤 했다. 최근을 예로 들자면, 업무를 하며 발생한 큰 실수의 타격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 날, 나는 당장에 ‘회복 탄력성’을 검색했다. 가장 판매량이 높은 순으로 정렬해 마음에 드는 책으로 골라 구매했고, 늘 그런 식이었다. 지인들은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르냐고 묻지만, 남들이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 다섯 문장으로 얻는 정보 혹은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는 5분짜리 꿀팁 영상 대신에 나는 책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롱블랙에서 읽은 ‘버질 아블로’가 궁금하면, 알라딘에 들어가 무작정 ‘버질 아블로’를 검색해 본 오늘만 해도 그랬다. 책은 나에게 있어 구글이자 네이버이자 유튜브였고, 친구이자 멘토였으며, 무엇보다 위안이자 도망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독서모임에 가입하게 된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러쉬에서 J와 일하는 동안 우리는 다른 지점에 있었다. 우리 매장에 특정 제품이 부족하면, 가까운 매장 중 재고가 많은 매장이 있으면 직접 빌리러 가곤 했는데 우리의 매장은 서로 꽤 멀었지만 또 못 갈 거리는 아니어서 아주 급한 경우 종종 빌리러 가곤 했었다. 모임을 시작한 H를 알게 된 건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녀를 실제로 처음 본 건 제품을 빌리러 갔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H를 알 게 된 것은 당시 J가 근무하고 있던 매장의 SNS 계정을 통해서였다. 그녀는 당시 해당 매장의 부매니저였는데,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머리가 잘 어울리는 그녀는 개성 넘치는 러쉬 직원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내가 바로 그녀의 개인 계정을 팔로우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인식하고 얼마 되지 않아 팔로우했던 기억은 있다. 나는 멋진 사람을 좋아했고, SNS 속 그녀의 밝은 미소와 매장의 모든 팀원이 그녀를 따르는 것을 본 나는 그것이 그저 SNS 속 모습에 불과할지언정 그녀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J와 함께 일하면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이유로 그 매장에서 일해보고 싶었지만, H와 함께 일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제야 밝히는 거지만···. 그 매장은 특유의 밝고 활기찬 분위기가 있었는데, 같은 백화점 입점 매장에서 일하면서도 우리 매장과는 다른 분위기가 나는 것이 궁금하고 또 부러웠다. ‘아마도 그녀의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시점에 새로운 독서모임 회원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J와 같은 매장에서 일하지 않았고, 나와 부쩍 가까운 매장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 매장의 직원들과 함께 하는 독서모임인 것 같았다.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당시 그녀가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것은 아무 상관없었다. 워낙에 낯을 가리면서도 또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은 재미있어서 나는 덜컥 지원을 했다. 그때의 기억으론 그녀가 이미 나를 알고 있었는데, 그럼 아마도 이전에 몇 번 대화를 나누긴 한 모양이다. 내 지금 기억엔 J네 매장에 놀러 갔을 때,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로 남아 있는데 말이다. 어쩜 기억력이 이 모양인지···. 아무튼 난 바로 그녀와 그녀의 매장 직원들이 주축이던 독서모임에 첫 이방인으로 가입하게 되었고,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A.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취향이 다채롭다. 모임 내에서도 구글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사람과 사물에 관한 질문에 언제나 가장 빠르게 대답해 주곤 했다. 매사 좋아하는 것만 꾸준히 좋아하는 나로서는 세상을 향한 그녀의 지대한 관심이 신기하고 또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저토록 많은 것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언제나 환멸을 이야기하는 A지만 사실 그녀는 많은 것들을 낙관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다만 세상이 그녀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뿐이다. 나는 그녀가 흥미를 잃지 않기를 바랐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 일일이 생각할 수 없는 의식 저편의 무엇인가가 그녀를 통해 기사로, 영상으로, 트위터의 타래로 모임에 공유되곤 했다. 나는 그녀의 관심이 좋았고, 그녀의 취향이 좋았고, 자주 그녀의 환멸도 좋았다. 낯을 가리는 것 같았던 첫인상의 A였지만, 알고 보니 대화의 주제에 한계가 없어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 사람이었다. 

  아침에 출근해 카카오톡에 로그인하면 가장 먼저 메시지를 보내게 되는 사람도 바로 A다. 우리는 그렇게 퇴근 직전까지 대화를 나눈다. 대체로 일상적인 대화지만 지루하다고 느낀 적은 없는데, 그녀가 언제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주기 때문이다. 시시덕거리면서 그녀와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고,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된다. -지금도 그녀에게 ‘집에 가서 저녁은 밥 먹어?’라는 카톡이 와 있다. 이 글을 쓰느라 아직 답장은 하지 못했지만.- 그녀가 내 퇴근을 향한 타임 터너(마법 정부에 속하는 미스터리부(Department of Mysteries)에서 만든 시간을 되돌리는 물건)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녀는 자주 그리고 쉽게 지치곤 했지만, 나는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사랑을 주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는데, 그녀는 언제나 그 한계치를 넘은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A의 회사 사람들은 그녀가 회사에서 때때로 휴대폰만 본다고 해도, 자주 옥상을 향하고, 우체국에서 늦게 돌아온다고 해도 그저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그녀는 그녀 나름의 충전 중이니까. 그녀는 취향으로 먹고사는 유형이다. 그녀만의 작은 충전은 그녀의 취향을 한 뼘씩 늘려주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들도 안다면 그녀를 그저 내버려 둘 텐데 참 아쉬운 마음이다. 

  참!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그녀의 회사가 그녀에게 주 4일 출근을 보장하거나, 월 300만 원 이상의 월급을 보장하길! 혹은 그녀의 로또라도 당첨되길 바라본다!    

 

  D. 그녀와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은 모임에서 단체로 대화를 나눌 때를 제외하고는 함께 집으로 가던 버스 안이 아니었을까 싶다. 버스 정거장 거리로 2-3 정거장 거리에 살았던 우리는 독서모임이 끝나면 나란히 같은 버스에 타곤 했다. 먼저 내리는 쪽은 그녀였는데, 꼭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즈음에 그녀가 먼저 내려야 했기에 아쉬웠던 기억이다. 그 버스 안에서 그녀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많다. 러쉬에서 일하기 전에 일했던 곳,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만두게 된 이유 같은 것들. 개인적인 대화에서 내가 자주 느끼는 것은 그녀와 나의 취향이 정말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나와 친한 사람 중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사진을 보며 나를 떠올리는 유일한 사람이고, 생일 선물로 ‘제이 콜’의 LP를 건네는 단 한 명의 사람이다. ‘해리 스타일스’를 사랑하는 그녀와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백이면 팔십은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게 된다. 생각보다 같은 취향의 사람을 찾기 힘들었던 나는 그녀와 취향을 공유하는 것이 몹시 즐겁다. 내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같은 버스를 타지 않지만, 이사 가기 직전 그녀와 단둘이 만난 곱창집에서의 기억이 있어 나는 그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보곤 한다. 또, 우리가 공통으로 좋아하는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이슈가 대화 주제로 오르면 우리가 어디에 있건 원하는 만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이사쯤은 괜찮다는 생각도 든다.

  맥줏집에서 내 이야기를 들으며 울었던 그녀는 단연코 공감 능력의 최강자라고 볼 수 있다. 모임에서도 책을 읽으며 울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 그녀지만 비단 눈물만이 아니라 그녀는 자주 웃었다.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힘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게 없기에 더 강력하다. 감정적인 공감에 서툴러 내 이야기를 하면서도 울지 않았던 나는 그녀의 눈물이나 미소를 보며 사람이 각자 다르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한 일인지를 여실히 느낀다. 그녀에게 우는 순간보다 웃는 순간이 더 많았으면 싶지만, 다정하고 따뜻한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마음을 녹인다. 언제나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우리를 달래주는 사람. D에게 위로가 될 때면 그녀에게 받은 만큼 나도 줄 수 있는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안심이 되곤 한다. 그녀가 오래도록 그 능력의 왕좌에서 내려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고로 그녀는 잘 웃는 동시에 잘 웃기는 사람이다.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그녀는 밈 없이는 가오나시가 되는 여성이라 함께 하는 대화에서 나는 자주 킥킥거리곤 한다.)     


  H. 우리 두목. 말했듯이 나는 처음부터 그녀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 봤자 인사나 나눴을 우리였지만, 나는 멀리서 레인보우 샤베트 색깔의 땋은 머리를 한 그녀를 보며, ‘저분이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좋겠다’라는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너무 음침한가···.

  사랑스러운 고양이 세 마리의 집사인 H는 내가 그녀에게 느꼈던 첫인상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러니까 멋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정말 편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정말 뒤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정말 망설임이 없는 사람이었다. 다정함, 따뜻함, 예의와 양심, 사랑과 관심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없으면 좋은 것은 없고, 많으면 좋은 것은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하고 따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녀는 자연스러웠다. 자연스럽게 나를 이 모임에 흡수시켰고,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에게 문을 열어두었다. 돌아가며 H의 집에 놀러 가 그녀의 집 큰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계절을 감상하며 그녀와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들의 따뜻한 배를 쓰다듬을 때면 다들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곤히 잠이 들곤 했다. 그녀와 관련된 기억들은 오감이 모두 작용해서 순간에 불과할지라도 대체로 선명하게 남아 있는 편이다. 눈이 내리던 성수동에서 지나치던 가게의 음악이 좋아 우물쭈물거리고 있던 나를 위해 성큼성큼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사장님께 무슨 음악인지 물어봐 주던 H. 나는 솔직하게 남을 사랑하는 그녀의 모습을 사랑했다. 솔직하게 자신을 사랑하는 그녀의 모습을 존경했다. 어쩌면 내가 오래도록 가지지 못할 것만 같은 점이어서 그럴지도···. 그녀는 ‘한심하게 느껴지는 자신을 미워하지 마’라고 말했다. 나는 그 한 문장을 붙잡고 천천히 늪에서 기어 나왔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모든 것이 전날보다 괜찮아져 있었다. 그녀가 내게 해 준 말은 그녀 스스로 지키고 있는 말이어서 더욱 신뢰가 갔다. 미워하지 말자, 미워하지 말자, 미워하지 말자. 세 번쯤 되뇌다 그날의 일을 마쳤을 때, 어제의 늪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가뿐한 바람만 상쾌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같은 날 선물해준 레몬 사탕을 먹으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녀가 올렸던 독서모임 새 회원 모집 글을 발견한 것이 내게 있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첫날부터 모임에 참여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편견 없는 태도 덕에 올해 가을로 4주년을 맞이하는 이 멋진 모임에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나는 그녀가 내게 해 준 말들을 앞으로도 기억할 작정이고, 또 그녀가 허락한다면 언제나 그녀와의 다음을 기약하고만 싶다.      


  J. 내가 그녀를 다른 누구보다 반가워했던 건 사회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동갑내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모임에 나갔던 첫날 그녀는 사정상 나오지 못했고,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모임에서 그녀를 처음 보게 되었다. 밝고 유쾌했던 그녀의 에너지는 그녀의 상징과도 같아서, 풀 죽은 그녀의 모습을 보면 나도 속상해지곤 했다. 왜 세상은 저토록 희귀한 사람이 그 모습을 간직할 수 있도록 지켜주지 않을까. 한참 회사를 다니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그녀를 봤을 때, 그 밝은 빛이 점차 희미해지는 것 같은 느낌에 조마조마해지곤 했다. 힘들면 그만둬, 라는 말을 쉽게 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퇴직의 날을 고르면서도 자주 불안해했다.

  왤까? 나는 그녀의 능력이 언제나 부러웠는데···. 사람은 타인에게서 자신에게 없는 점을 과대평가한다지만, 글쎄··· 그런 건 모르겠고, 그녀와 같은 기운의 사람을 자주 볼 수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녀는 스스로의 능력을 실제보다 훨씬 아래로 두는 경향이 있었다. 능력이라는 것은 일을 효율적으로 잘하고, 툴을 만능으로 다루는 것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계절로 치면 여름같이, 음악으로 치면 재즈같이, 색깔로 치면 노랑같이, 꽃으로 치면 개망초같이 통통 튀고 활기찼다. 나는 시간이 흐르면 모두 평균적으로 적당하게 가질 수 있는 업무 효율성 혹은 툴 숙련도 같은 것들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한 사람이 자부심을 가질만한 가장 큰 능력이라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몹시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셈인데 꼭 방패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캡틴 아메리카처럼, 망치를 잃어버린 토르처럼 자신 없는 그녀의 모습에 슬펐다. 그녀의 생각이 나서 보내는 디자인 레퍼런스나 책들 –보라! 나는 언제나 책을 찾아 헤매고 있다!- 에 마음을 다해 고마움을 표현하던 J. 나는 그녀에게 말하고 싶다. J야, 개망초의 꽃은 화해래! 네가 가지고 있는 밝은 기운을 떠올리며, 진짜 너와 화해하길 바라! 너는 네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어! 나한테 너는 캡틴 아메리카고, 토르야!     


  W. 인내, 포용, 강단. W 하면 생각나는 세 가지 단어다. 그녀는 마치 헤르미온느 같다. 직업도 다양하지만 어떻게 그 많은 일정들을 소화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녀는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는 내가 성실하고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대체로 보여 주기 식인 나의 가짜 근면과 그녀의 삶은 애초에 비교가 안 된다. 그녀는 종종 번 아웃을 겪는 것 같았다. 대체로 기복이 없는 차분한 모습의 그녀였지만, 육안으로도 지쳐 보이는 몇몇 날들이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캐묻고 나서야 간신히 ‘요새 조금 피곤하네.’ 정도로만 자신의 상태를 일축하곤 했다. 

  정말 그게 다였을까? 그녀가 거짓말을 쳤을 거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녀는 참고 버티고 견디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 같았다. 작은 체구의 W였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거인 같이 느껴졌다. 나는 얼마나 많은 순간을 생색내고 징징거리는 데에 보냈는지 피부로 와닿았다. 꼭 참고 버티고 견디는 것만이 좋은 선택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녀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모습을 참 닮고 싶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감정적으로 뱉었던 모든 말은 인내하지 않은 결과였으니까. 종종 그녀가 울컥하는 모습은 오로지 약자와 동물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와 사람을 향해서만 나타났다. 그녀는 진심으로 모두를 포용하고자 노력하는 사람 같았다. 종국에는 이해할 수 없더라도 일단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늘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런 W가 좋았다. 흘려보내는 말 없이 언제나 꼿꼿하게 상대를 응시하는 그녀를 볼 때면 헛소리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최대한 문장을 고르게 된다. 그럼에도 자주 버벅거리는 나지만···. 부드럽고 유해 보이는 그녀지만 사실 그녀는 우리 모임 중 누구보다 강단 있는 사람에 속한다. 그녀는 본인의 일정을 절대적으로 지키고, 본인의 가치관을 좋은 의미로 고집했다. 한없이 가벼운 사람이 보면 절대 흉내도 내지 못할 만큼 그녀는 진득하고 진정성 있었다. 우리 중 가장 마지막으로 모임에 들어온 그녀지만 처음부터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책은 이토록 평생 동안 나를 구한다.   


       

  책이 아니었다면 이 모임에는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H를 좋아했다고 해도 그녀가 산악회 회원을 구하고 있었다면, 그녀가 그림 그리기 모임 회원을 구하고 있었다면, 그녀가 러쉬 스터디 회원을 구하고 있었다면 나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라고 입맛을 다시며 화면을 닫았을 것이다.   

   

  이제 책이라는 매게 없이도 그녀들은 나를 구한다. 


  내가 알고 지낸 사람 중 그녀들과의 역사는 가장 짧은 축에 속하지만, 일상에서의 지분율은 단순히 그녀들이 다섯 명이라서 높은 것이 아니다. 오감으로 느꼈던 그녀들과의 시간은 몇 가지 감각만으로 체험할 수 있는 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풍부한 경험을 내게 선사한다. 나는 그녀들을 알기 전과 똑같이 내 물음표를 책을 통해 느낌표로 바꾸곤 하지만, 나와 다른 생김새의 물음표와 느낌표를 찾아 그녀들에게 몸을 던진다.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다채로운 색의 무지갯빛 풀장에, 호수에, 바다에.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 더미 속으로 행복하게 또 기꺼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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