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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혜ㅣ Grey Mar 29. 2023

위를 보고 체리를 떠올려주세요

팀장님, 잘 지내셨어요. 2014년에 인턴했던 다혜예요. 팀장님은 절 잊으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때를 잊지 못하고 있어요. 물론 제 주변인들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지만요. 매일같이 일 못하는 신입들의 손바닥을 때리셨잖아요. 아니 정말 오후 4시 30분만 되면 30cm자로 반대쪽 손바닥을 딱딱 때리며 의자와 의자 사이를 가르셨어요. 운 좋게도 저는 한 대도 맞지 않고 무사히 인턴십을 끝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편지도 쓸 수 있겠죠. 


매일을 떨며 겨우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을 마치고 모 기업의 정직원으로 입사했을 때였어요. 거기서는 또 신입을 금이야 옥이야 다루더라고요. ‘아니, 실수했는데 이렇게 넘어간다고?’ 또는 ‘두 번째 물어봤는데 친절하게 알려주네?’ 이런 충격을 받는 촌스러운 사원이었죠. 알고 보니 이게 보통의 회사생활이었더라고요. 


그래도 ‘팀장님도 팀장이 처음이라서.’라는 진부한 말로 용서해드리고 싶어요. 팀장님은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라는 가르침을 ‘사랑의 매’를 맞으며 배우신 세대잖아요. 때려서 가르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상상하지 못한 거죠. 하지만 지금은 그러시면 안돼요. 그때는 야근수당 없이도 인턴을 호령할 수 있던 야만의 시대였어요. 


그때의 우리 팀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가 빨빨거리며 열심히 돌아다니는 팩맨이었던 것 같아요. 왜, 어렸을 때 오락실에 가면 있던 게임 캐릭터요. 걔는 오로지 앞만 보고 죽을 때까지 열심히 살잖아요.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를 읽으면 비슷한 이야기가 있거든요. 그곳에는 2차원의 세계인 플랫 랜드(flat land)가 있어요. 그 세계관에서 모든 존재들은 자신의 발바닥으로만 자신이 서있는 걸 느낄 수 있대요. 그러니까 그들을 플랫 랜더(flat lander)라고 부르는 거겠죠. 넓고 외로운 2차원 우주에서 그 존재들은 위를 볼 수 없어요. 하지만 앤 드루얀은 그 상황에서도 위를 상상하려 하는 일을 과학이라고 말했어요. 


회사가 곧 플랫랜드라고 생각해요. 말도 안 되는 상식 속에 파묻혀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위를 상상하는 법을 까먹게 되잖아요. 저것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체리였다가, 체리일지도 모르겠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니, 저게 체리일 리가 없잖아.’, 그리고는 천천히 체리를 잊게 되는 거죠. 슬프지도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잊는다는 사실도 잊어가면서요. 새내기가 들어와서 체리를 말할라치면 ‘무엄하도다, 이게 감히 우리의 매너리즘을 깨려고 해!’라고 제법 위엄 있게 호통 칠 수 있게 되고요. 


하지만 팀장님 다시 체리를 생각해주세요. 팀장님을 통해서 팀원들이 체리를 기억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소설에 보면 무서운 유령이 나오거든요. 구두쇠였던 스크루지를 이대로 죽게 내버려둔다면 아마 그 무덤에는 풀 한 포기 안 자라겠다 싶었나봐요. 그런 유령이 스크루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 보여주는 두 아이가 있어요. 한 명의 이름은 무지(Ignorance)이고, 다른 아이의 이름은 궁핍(Want)이에요. 그런데 무지라는 아이의 이마에는 파멸(Doom)이 쓰여있어요. 제 마음대로 ‘무지’를 상상력의 부재라고 해석해도 될까요. 부재 혹은 게으름이라고요. 위를 보는 상상력이 부족한 조직은 파멸한다고요. 


인정할게요. 사실 위를 보라는 낭만적인 이야기는 그렇게 강조하시던 ‘성과’와는 거리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속편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가끔은 성과에서 멀어져, 계산되지 않는 일을 해봐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회사 앞 단골 카페 만들기, 점심시간 20분에 맞는 산책루트 개척하기, 예쁘고 비싼 문구로 일하기.. 같은 일을 할 때 저는 그제서야 제가 자기 검열에서 해방되었단걸 느끼거든요. 그렇게 종종 체리가 있다면 어떨까, 상상하는 거죠. 


작년 10월에 발사된 로켓 누리호는 700km나 날아올랐지만 우주궤도에는 안착하지 못했어요. 어떤 사람은 누리호를 실패라고 했어요.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날을 이렇게 묘사했어요. ‘무한 우주에 순간의 빛일지라도’(연합뉴스, 2021.10.21.) 그래요. 제가 유난히 이런 사람들을 사랑해서 그럴 수 있어요. 모두가 ‘대체 저게 뭐길래?’라고 하는 일에 빠져있는 사람들이요. 그것이 정말 ‘무한 우주에 순간의 빛일지라도’요. 


이렇게 불쑥 편지를 드려 죄송해요. 저도 이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라떼’라는 이야기를 들을 나이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팀장님한테 어리광을 부리나봐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그때 30cm자가 부러지길 빌고 빌었어요. 그런데 부러지려면 누구 하나가 세게 맞아야 하는 거 아니예요? 생각하니 답도 없이 슬픈 거 있죠. 그런데요 팀장님, 제가 퇴사하고나서도 후배들은 계속 순순히 양 손바닥을 내놓았나요?


출처 : deli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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