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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로운 Oct 20. 2021

모자라고 부지런한 사랑에 대하여

외로움에 사무치던 지난날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하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된다고 했던가, 이슬아는 글쓰기 스승을 사랑하여 글쓰기 스승이 되었다. 부지런히 수업을 이어가며 부지런한 사랑을 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여 보컬로 활동했다. 글이 좋아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내 전공을 좋아하여 내 지식을 활용하여 이해한 정보를 널리 알리는 일을 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이게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는 일이 많으니 주변에 사람은 늘 있었다. 그러나 항상 풍요 속의 빈곤을 느끼며 사랑을 받으면서도 사랑에 눈이 멀어 사랑을 볼 줄 몰랐다. 받는 사랑보다 더 크고 자극적인 사랑만을 찾아 헤맸다. 우리 조카에게 사랑에 대해 물으면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라고 답해주었다. 왜 이제와 단순히 맛있는 것 하나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그저 맛있는 거 많이 계속 오래 먹으려고 하는 것이 사랑인 것을. 사랑받기 위해 바삐 노력한 시간들이 사랑을 잃게 만드는 지름길 같았다.


좋아하는 것도 항상 많았다. 지나가는 고양이와 선선한 날씨를 모두 사랑한다. 잔잔한 재즈가 흐르는 따스한 조명의 카페와 그곳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을 사랑한다. 잘 말린 빨래에서 나는 포근한 섬유유연제 향과 우연히 문득 들어간 팝업스토어에서 산 취향저격의 향수를 사랑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선물을 통해 번져가는 웃음을 보는 일을 사랑한다.


이처럼 사랑이 많은 사람은 되고 싶었으나 그 사랑을 하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그럼에 이 모든 게 그저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도 처음부턴 알지 못했다. 돌려받는 것에 급급해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며 채워지지 않음에 개탄하고 있었다. 언제든 부족했고 어디에도 못 미치는 부족한 재능의 나에게 괴로워서 남에게서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노력했다. 나의 모든 잣대는 남에게 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원하는 만큼 받지 못하면 쉴 새 없이 괴로웠다. 꾸준히 하는 것이 재능을 이기는 것이라는 생각까지도, 부지런히 할 생각도 못 했다. 그저 매일 질투하고 매일 시기하며 그것이 나의 힘이라 자만하여 나아가기에 바빴다. 모자란 난 더 뛰어야 한다며 매일 나를 채찍 하며 스스로에게 사랑 대신 미움을 주는 삶을 이어갔다.


사랑이란 항상 갖고 싶으면서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지난 연애는 달고 또 씁쓸했으며 상처 주었고 또 치유했다. 매번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도 밤을 캐먹는 동물처럼 찔리면서도 열매를 찾아 헤맸다. 저녁에 어스름히 어둠이 깔리면 나에 대한 자괴감으로 가득 찼다. 난 왜 이렇게 사랑을 갈구하기만 할까. 왜 이렇게 혼자 이대로 만족하지 못할까. 왜 뭐든 잘 하지 못할까.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곱씹으며 몇 번의 실패를 반복하다 알게 되었다. 문장 속에 답이 있었다. 사랑은 받기를 바랄 땐 얻을 수 없었다. 갈구하니까 얻을 수 없었다. 흔히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이해할 때 그리고 곧 내가 될 때 지속할 수 있다고 한다. 난 어느 것도 하고 있지 않으니까 얻을 수 없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라는 구절에서, 내가 하는 그 어느 것도 사랑은 아니었다.     


언제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내 편, 나를 온전히 나로 있게 하는 나의 쉼터에서 느껴지는 소중함이 이제는 사랑임을 안다. 섬유유연제도 음악도 커피도 날씨도 고양이도 딱 내 맘에 들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것들이 좋아 가까이했을 뿐이고 내가 일방적으로 사랑을 줬을 뿐인데, 주는 내가 그저 더 행복했을 뿐이다. 그런 게 대중적인지에 대한 생각은 그만 하기로 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은 그만 입기로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인정하기로 했다.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런 걸 좋아하는구나, 인정하니 맘이 편해졌다. 내가 나로서 그저 좋아하는 것과 존재할 수 있음에 만족하는 그 순간, 상대와 사물이 그 자체로 존재함을 인정하고 기꺼이 어여삐 여길 수 있는 마음, 사랑은 그런 게 아닐까. 사실 대단하지 않다는 맘에 인정할 수 없었을 뿐, 나는 내 주변을 둘러싼 것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것들로 주변을 채워왔었다. 이제와 사랑은 가지려고 하면 잃을 것이요, 잃으리라 하면 가지게 되는 것 같다.

.      

연휴엔 하루쯤 혼자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책을 읽는 여유를 사랑한다.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외로움에 너무 잠식당하지 않도록 누가 따로 없어도 충분하게 만족하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곁에 머무는 모든 것들이 머무는 시간 동안 후회 없이 지내기를 바라고, 영원하다는 것에 집착하지 않기도 했다. 영원을 약속하지 않냐며 우리 모두를 옭아매는 짓은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가 나에게 와주지 않는 것으로 나쁘다 말할 수 없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사랑이 비단 연인과의 사랑만이 사랑이리라 짧은 견문으로 정의하지 않기로도 했다. 부지런히 글을 쓰고 부지런히 감상하고 자주 사람을 만나 얘기하는 순간의 교류, 이 모든 것이 사랑임을 인정한다.


나의 불안함으로 상대를 괴롭히지 말아야지.

나로서 여전히 또 열심히 부지런히 사랑해야지.

사랑을 잃지 않도록 꾸준하게 움직이며 살아가야지.     


모자라지만 착하고

넓고 부지런한 나의 사랑,

오늘도 여전히 사랑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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