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가장 먼저 핫 팩을 왕창 쟁여둔다. 마우스와 핸드폰을 오래 써 온 죄로 이미 오래전 나가버린 오른쪽 손목에, 이따금씩 통증이 느껴질 때 미니 찜질방을 개장해 주기 위함이다. 그동안은 충격파를 비롯하여 현대 의학으로 겨우 연명해 왔으나, 용산에 이사 갔다는 핑계로 미루면서 계속 다니던 뚝섬의 정형외과 원장님을 안 뵌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작년부터는 통증대열에 왼쪽 손목과 오른쪽 무릎이 합세하여 핫 팩을 집에 벌크로 들여놓았다. 원래는 추위를 그다지 타지 않는 나라 핫 팩이 그리 필요하진 않았으나 이제는 어딜 갈 때마다 시린 관절을 위해 두 개씩은 족히 들고 다녀야 하게 되었다.
만약 누군가 신체나이와 몇 년생이 비례하지 않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면 단연 나를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 뜨끈하게 지지는 걸 좋아하게 되는 건 나이가 아니라 연차이다. 언젠가 ‘사람 몸은 유한해서 젊을 때 체력을 너무 끌어 쓰면 이 닳아버린 몸을 가지고 남은 생애를 살아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말을 20대에 진작 알았으면, 그럼 조금이라도 아껴 썼을까?
사실 고백하자면, 내가 쟁이는 것이 비단 핫 팩뿐만은 아니다. 이를 테면 언젠가 먹겠거니 하며 사온 영양제 무더기들, 읽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다며 쌓아둔 책장의 책 등도 대충 방안에 방치해 두었다. 그러다 새해가 다가오는 이맘때가 되어서야 겨울 옷도 꺼낼 겸, 겸사겸사 집을 갈아엎으면서 정리하는 것을 연말 리츄얼로 삼으며 지내곤 하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이 휑 하면 자꾸 무언가를 사게 되고, 마음이 충만하면 다 버리게 된다는 데 나는 항상 겨울에 와서야 휑함을 덜고 온기를 되찾는 것 같다. 꼭 추워져 봐야 온기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리하여 올해는 마음에도 작은 찜질방을 들이기로 했다. 춥다 하면 핫 팩도 대어주고 아프다고 하면 약도 발라주는 일련의 행위들을 마음에도 한 번씩 해보기로 한다. 코로나 전 반짝이던 글 대신 한껏 탁 해진 글을 내보이던 나를, 어딘가 모르게 타협과 체념이 빨라지고 욕심이 없어진 나를, 올 한 해 동안도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으로 방황하던 나를 돌아보며,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어르고 달래 보기로 했다. 더 이상 버티는 게 답이 아님을 인정하고 내가 나를 챙기는 것을 우선으로 해보기로 한다.
그 이후 어김없이 돌아온 새 겨울방학, 이번엔 제주로 떠나왔다. 서울보다 따뜻한 남쪽 섬에서의 2박 3일. 바다를 바라보며 이 글을 쓰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여행 동안엔 나의 작은 찜질방에 온기를 때워줄 땔감을 여러 개 찾고, 또 챙겨 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엔 많이 말고 적당히 갖고 가야겠다. 언제나 욕심은 화를 부르기에, 맞지 않는 그릇으로 키우려 하기보단 작은 걸 인정하는 편이 낫겠다.
활활이 아니라 따뜻을 위한 연습이 필요한 순간이다. 나의 작은 찜질방을 오래 운영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