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둘에 만날 사람들

by 지희로운

26년이 되었다. 그리고 만 31살, 서른둘이 되었다.

(주변인에겐 아직 생일 안 지났으니 만 30으로 해달라고 조르는(우기는) 중이다)


빠른 년생의 단점은 그 지난한 아홉수가 장장 3년에 걸쳐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는 친구들이 스물아홉이 될 때,

두 번째는 내가 스물아홉이 될 때,

세 번째는 내 만 나이가 스물아홉이 될 때.


하필 윤석열나이니 뭐니 한동안 떠들썩 한 덕에

주변인들과 함께 다 같이 어려지자느니의 얘기를 해둔 터라

나의 사회적 나이는 3년간 스물아홉에 머물러있었다.

그렇게 지나고 나니 서른과 서른 하나를 건너뛰고, 어느 순간 서른둘이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지금.

서른도 아니고 서른 하나도 아니게 되니 더 이상 20대라고 우길 수는 없었다.

'뭐든 빠르게 흡수하는 젊은 20대 친구'라는 명함에는 이제 기댈 수 없게 되었고,

그렇다고 '어른스럽고 척척 잘 해내는 30대 선배'라는 명함도 딱 맞는 것 같진 않았다.

사실 나도 잘 모르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직업인으로서의 역할을 해가며 내 몫을 버티고 있다.


30대에 와서 가장 많이 달라진 건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의 20대에선 "일단 해봐!"라는 게 내 좌우명이었는데

요즘은 생각을 더 깊게, 그리고 현실성 있게,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일단 해보기엔 남은 체력이 그리 좋지 않고, 잃을 리스크가 너무 크고,

되돌아오기엔 지금까지 온 길이 너무 멀다.

열심히 산만큼 힘들게 쌓아 올라온 이 높이에서 밑바닥으로 내려가면 다시 올라올 수나 있을까?

내가 이만큼 올라올 때까지 이렇게나 급변하는 이번 시대가 따라 줄지도 의문이다.


비슷하게 이번 연말에 친구들과 여행 계획에 대해 한 얘기가 있다.

파워 J인 나는 여행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에게 묻는다.

"돈 많아?"


진정한 부자는 여행계획을 세우지 않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P로 산다는 건, 그건 살 수 있다는 거고, 곧 많이 가졌다는 거라고.

길을 잃어도 짜증 내지 않고 빙빙 돌아도 더 걸어도 될 정도로 체력이 있는 거고

그렇게 헤매어도 쫓기지 않도록 시간이 많이 있는 거고

굳이 어쩔 수 없이 기차표쯤 놓쳐도 괜찮은, 시간 안에 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재력이 있는 거라고.


이곳의 모든 관광지를 다 돌아보지 않아도, 유명한 몇 대 맛집을 가보지 않아도

언젠가 또 오면 되는 거니 아쉬울 게 없고, 또 굳이 안 와도 아쉬울 게 없는, 그런 사람들.


부러웠다.

나는 재력도 없고 체력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이제는 그냥 막 지를 수가 없었다.

이제는 일단 지른 것에 대해 수습할 만큼의 남은 비용이 없다.

부족하기에 더 수집하고 더 생각하고 더 계획해야 했다, 그게 여행이든 사업이든.

한정적인 자원 안에서 더 많은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테트리스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잃을 게 없을 땐 참 불안해서 싫었는데

열심히 일해서 잃을만한 걸 만들어둬도 여전히 불안해서 싫다.

역시 달라지는 건 없지만, 그게 참 많은 걸 만들어낸다.


20대 때 좋은 멘토를 만나는 건 매우 중요하지만

30대 때 좋은 멘토를 만나는 것은 더욱 중요한 듯 싶다.

인생의 큰 씨를 뿌리고 자라내야할 여름의 지금,

누구의 옆에 있느냐가 내 밭을 결정한다는 걸 점점 뼈저리게 겪는다.


나는 뒷모습을 보고 따라갈 수 있는 어른이 있는가?

나는 나의 고민에 대해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런 사람들이 나와 교류할만한 나의 효용이 있는가?

그럼 내가 가져야 하는 건 뭘까?

내가 뭐 하나 어필할 만한 건 뭘까?

나의 이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쓸것인가?


서른둘, 나는 누굴 만나야 할까?


서른둘의 2월, 아주 구체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을 그려보려고 한다.

나의 가장 귀한 이 시점의 자원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을 그 어떤 사람들.

그리고 눈앞에 생생할때, 그때 두드려보려고 한다.

앞으로 한참 또 열어가야할 30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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