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은 사라졌고, 은퇴는 사치가 됐다

죽을 때까지 일할 준비 되셨습니까?

by Simon park

한때 '정년'은 사회가 노동자에게 준 마지막 약속이었다.

60세까지 일하고, 퇴직금과 연금으로 노후를 보내라는 설계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과 함께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약속이 무너졌다.

정년은 남아있지만, 자리는 없다.

은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위기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이미 18%를 넘었고, 2029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그런데 노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국민연금 수령액은 평균 60만 원대, 그것도 충분히 납입한 경우에만 해당한다.

국민연금으로는 기본적인 주거, 의료, 식비조차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면 퇴직 이후 삶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다시 일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문턱은 나이를 기준으로 닫혀 있다.

50대 이후의 재취업은 편의점, 배달, 경비 등 초단기·저임금 노동에 집중되어 있다.

체력은 줄고, 기술은 시대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중고다.

은퇴는 준비되지 않은 채 닥치고, 일은 준비되었음에도 기회를 주지 않는다.


정부는 고령 노동을 장려하면서도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

‘100세 시대’라는 말은 기초의학의 성과이지, 고용정책의 결과가 아니다.

노동연령을 늘리자는 담론은 늘어나지만, 노동의 질이나 존엄성에 대한 논의는 없다.

말하자면, 죽을 때까지 일하라는 사회적 압박은 있지만, 그 노동이 어떤 조건에서 수행되어야 하는지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다.


고령 노동자의 삶은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은 GDP에도, 고용률에도 포함되지 않는 일들을 한다.

마트에서 시식행사를 하고, 청소 용역을 돌고, 폐지를 주운다.

이 문제를 개인의 노력이나 태도로 환원시키는 건 착각이다.

근면성실한 개인이 구조적 무관심을 이길 수는 없다.

은퇴 이후의 삶은 성실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국가가 안전망을 제공하지 않으면, 성실은 자산이 아니라 착취된다.


중년은 말한다. "우리 땐 60 넘으면 편하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니었나?"

청년은 말한다. "지금도 벅찬데, 나중은 상상도 못하겠다."

노년은 침묵한다.

그들은 이미 구조의 맨 아래에서 말없이 견디고 있다.


정년은 사라졌다.

은퇴는 사치가 됐다.

당신은 죽을 때까지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이거다.

왜 우리는 그런 준비를 당연하다고 느끼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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