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보다 프리랜서가 많은 나라
통계청은 말한다.
고용률은 높아졌고, 실업률은 낮아졌다고.
정부는 말한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이루어졌고, 청년들의 창의성이 살아나고 있다고.
그런데 묻자.
“그 일자리는 누군가의 생계를 지탱해줄 만큼 안정적인가?”
“그 일은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
정규직보다 프리랜서가 많아진다는 건,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고용의 책임이 사라진다.
둘째, 노동의 리스크가 개인에게 전가된다.
이제 고용은 선택이 아니라 계약이다.
회사와 개인이 대등한 주체로 계약을 맺는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조건 없는 수용을 강요받는 구조다.
우리는 ‘자유로운 노동자’라 불리지만, 진짜 자유는 노동을 거부할 수 있을 때 주어지는 법이다.
지금의 노동시장은 선택지가 아니라 도피처다.
정규직이 너무 좁아졌기 때문에, 모두가 대안처럼 프리랜서·계약직·플랫폼 노동으로 밀려난다.
누구도 자발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
다만 불안정하지 않은 삶이 사라졌을 뿐이다.
기업은 더 이상 정년을 보장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산이 아니라 비용으로 취급된다.
고용은 점점 더 프로젝트화되고, 사람은 점점 더 부품처럼 교체 가능한 존재가 된다.
그 결과, 경력은 단절되고, 기술은 낙후되고, 미래는 불확실해진다.
좋은 일자리는 어떤 일자리인가?
당장의 수입이 아니라, 내일의 생계를 담보하는 일자리다.
가치 있는 일자리란, 일을 마친 뒤에 쉴 권리가 있는 구조다.
하지만 우리는 쉴 틈 없이 일하고, 일하면서도 불안을 느낀다.
고용은 유연해졌지만, 삶은 경직되었다.
더 이상 '직업'은 정체성이 아니다.
이력서에 채우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플랫폼은 우리를 노동자의 이름이 아니라, 점수와 수치로 분류한다.
이력은 사라지고, 평점이 남는다.
그래서 지금의 노동은 고통스럽다.
일을 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하고 있지만, 고용되지 않은 채로 일하고 있다.
‘노동’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국가도, 기업도 더는 책임지지 않는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모두가 일하지만 아무도 안심하지 못하는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