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초기에는 착한 사장이 되고 싶었다. 직원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지냈다.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될 때에도 상처를 주진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전날부터 잠을 뒤척이는 성향이었다.
오래전 어느 날 때문일지 모른다. 나 또한 상사의 뾰족한 피드백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으니까. 직원의 성격이 눈물이 많고 마음이 연약한 성향이면 마치 나의 일처럼 가슴이 다 울렁거리곤 했다. 내가 얘기를 할 때 눈물을 쏟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대화를 하기도 이전에 먼저 내면에서 고민이 생기는 것이다.
초기에는 직원들이 보는 눈이 가장 두려웠다. 그들의 평가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 생활했을 때의 원장처럼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고, 그러려면 난 착한 원장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다 정신이 바짝 차리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 도시락을 매일 준비하는 원장이 되었다. ‘식구’의 개념을 살려서 같이 밥을 먹으며 소소한 즐거움을 나누는 가족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반찬에 대해 불평을 하는 직원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게 되긴 했지만. 나의 호의가 누군가에게는 호의가 아닐 수 있다는 걸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만드는 도시락이라는 정성이 그렇게 말 몇 마디로 평가된다는 것이 영 마음이 안 좋았다. 결국은 중간에 도시락 싸는 것을 멈추고 간식으로 대신했다. 그때 누가 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서 한 후 인정받기를 원하는 마음은 어리석다는 생각을 했다. 무리를 했었다. 내가 한 그 무리 때문에 몇 마디의 말로 상처를 받았다. 먼저 잘해주고 상처 받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B 선생은 말 그대로 노력파였다. 학원에 제일 일찍 나오고 제일 늦게 갔으며 공손한 데다가 아이들을 너무 예뻐한 선생이었다. 아이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음에도 선생의 노력에 감화되어 기회를 한번, 또 한 번 주게 되었다. 왠지 조금만 노력하면 될 것 같았고, 그 노력이 이제 성과로 나타날 것이라 믿었다. 그럼에도 결국 그 선생은 아이들을 이끄는데 실패했고, 학원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떠났다. 사실, 노력은 많이 했지만, 강사로는 발성에서 많이 부족한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저렇게 노력을 하면 다 채워지겠구나 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처참히 무너졌다. 아니, 사실은 너무 노력했기에 독한 피드백을 주기 힘들었다.
두 가지 일을 겪고 나서 난 결심했다. 착한 원장을 그만 두기로. 직원들은 착한 원장을 얻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그제야 할 수 있게 된 것이기도 했다. 직원들은 나름대로의 목표, 의미를 달성하고 찾기 위해서 일을 한다. 그저 사람 좋은 착한 원장은 직원이 바라는 직장 상사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다.
착한 원장 대신 ‘좋은’ 원장이 되기로 결심했다.
착하다는 평가는 받지 못하더라도 정확하고 치밀한 평가를 정제된 언어로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도록 주며 모든 기준을 조직의 성장에 맞추기로 한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피드백이나 해고를 하는 것이 조금은 편해졌다. 아니다. 해고는 아직도 어렵다. 눈물 한 방울이 푹 숙인 직원의 흐느끼는 어깨 아래로 떨어질 땐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스럽다. 더 이상의 기회를 줄 수 없음을 그도 나도 알고 있으면서도 아쉬워서 마무리 못하는 모습. 그것은 아무리 결심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모든 기준을 조직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한 직원에게 착하지 않다고 평가를 받는다 해도 나머지 직원들과 남아서 조직을 잘 이끌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아는 것이다. 그것이 ‘리더’의 본분일 테니까.
그걸 알기까지 약 1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 어떻게 보면 이제야 조금은 무거운 짐을 벗고,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다. 그러고 나니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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