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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한 삶 Dec 29. 2020

반포 아파트를 보며 생겨난 꿈

1-3

나는 명실공히 유명한과외 강사였다.

내 담당 학생들은 대부분 온실 속에 자란 화초처럼 집이 부자였고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정신무장이 다소 필요한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종종 말하곤 했다.  “선생님은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것 같아요”라고.. 학생들에게는여전사 이미지의 내가 꽤 신선해 보였겠으니 믿고 따를 만한 사람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당시메가스터디 수업이 열풍이었고, 난 어쭙잖은 개똥철학으로 유명 강사를 따라 하고 싶어 했다.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 멋져 보였고,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러자 수업이 하나하나씩 늘어갔고, 수입도 쏠쏠히 불려나갔다.멈추지 않는 폭주전차처럼, 주말에도 과외를 끊임없이 했다.




비 오는 날의 과외 강사




 보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우연한 기회로 가르치는 학생들이  사는 아파트  시세를 보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과외를 하나라도 더하기 위해, 전단지를 붙이다가 언 손을 녹이려 들어간 커피숍 창문을 통해서였다. 세지도 못할 정도로 큰돈이었다. 내가 이런 집에 살려면 어느 정도의 세월이 필요한 것인가?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며칠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과외 강사로 비 오는 날 언제까지 남의 집에 들어갈 것인가? 항상 과외 하는 날에 비가 오면 걱정이 되었다. 혹시나 양말이 젖지 않았을까라는 걱정이 학생 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드는 것이다. 젖은 양말이 흠집 하나 없는 대리석 바닥에 얼룩 자국을 남기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매달 하얀 과외비 봉투를 양손으로 받고 감사인사를 하며 현관을 나오는 내 모습이 점점 초라하게 느껴졌다. 고민이 많던 20대였다.

과외를 하러 학생 집으로 가는 어느 날, 버스 안에는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나는 손목시계를 여러 번 만지작거리며 혹시나 과외시간에 늦지 않을까 안절부절못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학생이 컨디션이 안 좋아 오늘 수업이 어렵다는 전화였다. 수업 약속 거의 5분 전이었다.




기분이 언짢다든가 화가 난다든가 하는 그러한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켜켜이 쌓여있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엉겨 붙은 뜨거운 마음들이 훅 하고 올라왔다.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이후로 과외를 그만두었다.




 뭐 그런 것에 의미를 두냐는 선배도 있었다. 세상 밖은 정글인데, 과외하면서의 작은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면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느냐는 핀잔도 들었다. 안정적으로 과외가 유지되고, 대기업 초봉보다 더 벌면서 배가 불렀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난 한번 결심한 것을 되돌리기는 싫었다. 선생님 덕분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며 과외비를 더 줄 테니 수업을 이어갈 수 있느냐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으나, 난 쉽게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


내가 그 일을 하면서 마음이 계속 불편하고, 어깨를 쉽게 펼 수 없다면 그 일은 바로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항상 조바심이 나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일이라면 과감히 그만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중심에 두고 결정을 한다는 것이 이기적인 사람이나 실패자라는 것을 뜻하지도 않으며, 어떠한 경험이든 실패라고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국엔 내공으로 남는다고 믿었다. 한쪽 문이 닫히자, 다른 세상의 문이 열렸다. 학원강사로의 시작이었다. 과외 강사와는 달리 무대에 서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무대에 오른 나를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월급쟁이 시절이 시작되었다.




교육 비즈니스에 발을 내딛다



과외강사로 유명세를 떨치며 좋은 소문이 났기에 학원강사로의 성공은 당연한 것으로 철떡 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 자신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항상 자신만만했었던 것 같다. 과외강사 때도 아이들이 선생님 참 잘 가르친다고 했고, 내가 내준 숙제를 꼼꼼히 챙겨왔고, 눈에 띌 만큼 성적도 올랐다. 내가 조언을 해주면 아이들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변화를 거듭해서 성적 향상이라는 선물을 내게 건넸다. 내가 운이 좋아 그런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학원강사로 아이들에게 받은 나의 성적표는 형편없었다.

학원에서는 매달 선생님의 수업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곤 했는데, 그 피드백은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익명으로 이루어졌다. 선생님을 바꾸어 주었으면 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인정하고 싶지도, 인정해서도 안 되는 결과였다. 익명으로 쓴 피드백을 보며 아이들의 글씨를 유추해보기도 하고, 수업 중에는 평가지에 쓴 글씨와 아이들의 글씨를 대조해봤다.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라는 물음에 답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동료강사나 원장님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따갑다고 상상하며 혼자 마음을 졸였다. 결국, 타의로 중간에 선생님이 바뀌게 되었다. 그 후 고시생은 아니지만 고시생으로 지냈다. 원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이었다. 무대에 올라갔지만, 난 열정만 장착이 되어있었다. 치밀한 준비를 하지 않은 결과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학원강사로 일하며 아이들의 평가를 받기 전에는 누군가에게 그리 혹독한 평가를 받은 경험이 없었다.

칭찬만 받다가 지적을 받으며 어두운 터널에 처음 발을 내딛는 중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만만한 거나 그리 쉬운 일은 없었다. 모든 것을 만만하게 생각했던 나의 불찰이었다.



 
 다행히,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강의 평가는 조금씩 나아졌다.

가끔가다 과외비보다 적은 급여명세서를 보며 괜히 그만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아마추어라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경험은 자산으로 쌓일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버텼다. 난 결국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라는 자기 확언을 수 없이 했다. 점점 수업 평가가 좋아지고 조직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노력한 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씩 노력이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오고 있었다.




항상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난 강사들에게 눈총을 받았다.

유난스럽게 보이고 튀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 당시 원장님은 나와 다른 강사들을 회의 때 비교하곤 하셨는데, 난 칭찬을 받는 게 아니라 벌을 서는 기분이었다. 다른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보다는 학생들의 평가가 난 신경이 쓰였으며, 그에 대해 굉장히 예민했다. 강의 평가 전날은 잠이 안 오는 날이 많아졌다.




가르치는 일에 재미를 붙이다.



직장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을 때, 영락고에서 연락이 왔다.

메가스터디에서는 못 느낀 가슴 벅찬 보람을 누렸다.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는 대신 특강 형식으로 방과 후 수업을 참여하는 것이었는데, 수업 시간이 지나도 더 알려달라고 하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었다. 퇴근 시간도 잊고 그들이 빼곡히 써온 질문지를 답하는 건 엄청난 의미였다. 영자 신문을 함께 읽으며 그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즐겼다. 학원에서는 정해진 진도에 맞추어 교재를 끝내야 하기에 교재 외에 다른 자료를 공유할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또한 강의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아 항상 아이들의 평가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날들이었다. 밤이 늦어서 그만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경비아저씨의 얘기가 들릴 때까지 우리는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평가에서 벗어나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중에는 나에게 영감을 주는 한 학생이 있었다. 가슴 아픈 가족 이야기를 차분히 털어놓으며,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 그에게는 내가 멘토라는 한마디에  마음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 학생이 생각하는 탁월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특강 계약이 만료된 후에도 그 학생과는 연락을 하고 지냈다.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친다는 게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하나 더 깨달은 건 내가 누구의 지시나 틀의 범주에서 일하는 것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영락고에서 즐거웠던 이유는 내 뜻대로 수업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난 아이들과 온전히 소통하며, 그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일에 몰두하는 타입이었다. 그랬기에 막연하게나마 사업이라는 게 나에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지냈다. 그때부터 조금씩 나만의 사업을 꿈꾸기 시작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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