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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한 삶 Mar 01. 2021

마녀가 나타났다.

순두부 같은 마음

"떴다, 대표원장"
"조심"
"잔소리 마녀, 짜증 나"

“미녀가 아니다. 마녀이다”



마녀가 등장했다.  

어느 날 하늘이 맑았다.
좋은 날씨 덕분에 룰루랄라 콧노래가 나오던 날이었다.
오랜만에 출근이다. 양 손엔 다양한 빵들이 들려있었다. 빵 냄새가 비닐봉지 사이로 나와 내 코끝으로 다가온다.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간식으로 줄 참이었다. 코로나 19로 매출도 줄고 이익도 줄었으나 어느 학원 강사보다 고생한 그들이었다. 코로나 19가 언제 끝날지 누구도 알 수 없으니 앞으로 기약 없는 고생을 더 해야 하겠지만, 일 년 넘게 마스크를 쓰고 수업한 그들이 참 대견스러웠다. 잘도 버티었다.



고마운 마음을 10 가지고 있다 해도 100으로 표현하는 원장이 있는 반면에 100을 고마워해도 10도 겨우 표현하는 원장이 있다. 매일 출근은 하지 않지만, 며칠에 한 번 들러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기가 막히게 파악하는 능력자이자 자수성가해서 가장 역할을 20년째 하고 있는 억척 인생을 사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이리저리 학원을 둘러보다 바닥에 떨어진 볼펜을 보았다.

주워 선생님의 책상에 올려주려 하는 순간 한 선생님이 열어두고 간 카톡을 봐버린 것이다. 보지 말았어야 했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예전 같으면 얼굴이 울그락 붉으락 하며 그 선생님에게 꼬치꼬치 이유를 따지겠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변명을 했겠지만, 지금의 난 여유가 생겼다. 강사들의 뒷담화도 귀여워 보이는 부드러운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나 또한 첫 직장에서는 이것저것 불만 사항이 많았다. 그들도 예전 언젠가의 나처럼 나를 오징어처럼 씹으며 스트레스를 풀었으리라.



지난 20년. 난 과외강사, 학원강사, 관리자, 공부방 원장, 어학원 원장, 어학원 대표원장으로 자리를 바꿔가며,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듯 살았다. 난 대단하지도 뛰어나지도 않았기에 남들보다 더 노력해서 성과를 내며 살아왔다. 그래서 남들이 말하는 성공을 이루어 냈다.



그렇게 발 밑만 보며 살다가  어느 날 불혹이 되고 지천명을 바라보게 되었다. 밤을 새도 끄덕 없었던 체력은 이미 바닥났고, 밀린 일을 하려 책상에 앉으면 잠이 쏟아진다.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내가 아닌 내 모습에 깜짝 놀랐다. 난 그렇게 근엄한 표정으로 다니지 않았다. 무미건조한 표정의 싸늘한 여성이 보였다.



“남들이 보는 나”와 “진짜 나”사이에  간극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를 내려놓고 싶었다. 대학 때에도 술 먹고 길바닥에 한 번 쓰러지지 못했다.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건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 내가 두꺼운 화장을 지우고 맨얼굴로 거리를 활보하고 싶었다.



나를 내려놓는 연습 중 가장 효과적인 건 “글쓰기”이다.  하얀 백지위에서는 글쓰기를 시작한 초보 작가일 뿐이고, 겸허한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야 글이 비로소 써진다. 글쓰기가 삶에 대해 주는 교훈이다.

글쓰기를 통해 성공한 경영자의 가면을 잠시 내려놓고 본연의 장은아를 마주하고 있다. 날카롭고 항상 날이 서있는 내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한 나로 바뀐다. 그러면서 저 카톡 사건처럼 신경질이 날 수 있는 사건도 순두부처럼 웃으며 넘어간다. 글쓰기는  마녀를 미녀까지는 아니더라도 순한 사람으로 바뀌게 했다.



카톡 사건 이후 며칠 후 그 선생님과 우연히 눈을 마주쳤다.
“선생님, 고생이 많아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선생님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때의 진심은 분명 열심히 해서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거라 믿는다.



오늘은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닦는 하루를  보내야겠다.
고요한 장은아와 직면할 시간이 다가왔다. 순두부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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