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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한 삶 Mar 01. 2021

돈이 나에게 해준 일

1-2

우리 집은  당시 칼국수집을 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외할머니에게 맡겨두고 매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을 하러 나갔다. 가끔 잠결에 엄마가  이불을 덮어주고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땐  포근했다.그러나, 현실은 엄마 품이라는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1 아파트에 살았다. 맞벌이 부부인 부모님과 할머니까지 다섯 식구였다. 그 당시 나는 다른 또래 친구들에 비해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부족과 결핍을 느끼며 괜한 자격지심에 사로 잡혀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가 장떡과 감자전을 부쳐서 소쿠리에 담아놓으셨다. 그런 할머니의 살가운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부할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따.  이유는 동생과 은 방을 쓰고 있었을 뿐더러, 당시 그 방은 1층 아파트 복도와 붙어 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집중할 수 없는 환경, 표현하지 못하는 공허한 결핍감. 나만의 공간은 없었다. 내게는 좋지 않은 환경 탓을 할 수 밖에 없는 핑계거리들이 많았다.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그리  잘못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생계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했던 부모님의 다리는 언제나 부어 있었다. 그들을 보면 못내 미안한 마음도 들었으나 그 당시 나만 생각해도 힘들었을 어렸던 나는 동생과 함께 쓰는 이 싫기만 했다. 하다못해  이층침대 위에서 누가 잘지를 결정하는 데 온 에너지를 쓰느라 바쁘고 속상했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흘러서 동생과 나는 차차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환경 탓을 하기에는 몸도 마음도 자라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새 부모님의 노후을 생각하게 되는 나이게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교 4학년이었던 당시 동생은 갑자기 미국유학을 간다고 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자신만의 이유 때문이었다. 칼국수집에서 미국 유학이라니.  당시 졸업반이었던 나는 자연스레  가장이 어야 했다. 대학 때부터 하던 과외를 달고 살았다. 한달이면 6~7개 수준의 노동이었다. 쉴 틈 없이 공부하고 돈을 버는 그 시간들의 연속은 자연스레 졸업 후에도 이어져 나의 직업은 과외강사가 어버렸다. 졸업 무렵 가장이 되었기에 다른 동년배들과는 달리 회사에 입사를 준비하든가 아니면 동생 처럼 하고 싶었던 공부를 더 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돈을 벌어야 했고 돈이 필요했으니까.


졸업 후 과외강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일은 순탄치 않았다. 에코백에 전단지를 한가득 넣고 수시로 홍보하러 뛰고 걸었던 나날이었다. 과외 하나가 둘이 되고, 셋이 어 가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통장도 함께 움직여 주며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으로 늘어가고 있었다. 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보람은 나로 하여금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게 만들었다. 어느덧 가족을 책임질 수준의 돈을 벌게 되었비로소 진정한 가장이 되었다. 약 십 년 간 가장으로서의 살아왔던 이 때로 무겁고 벅차게만 느껴질 때는 오래 전 부모님의 표정과 목소리를 떠올린다. 어렸을 때는 천정 높이가 낮았던 작은 방에 매몰되어 누구의 탓을 하고 있었으나, 오랜 가장 노릇에 지친 나는 한참이 지난  이제야  버거운 가장이었던 그들을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녀도 아니었는데도)


지금 생각해보면  가족과 주위를 챙길  있을 만큼의 경제력이 생긴다는 건 유지하는 데 있어서는 여전히 버겁지만 한편으로는 비할 데 없는 엄청난 기쁨이기도 하다. 이라는 것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도록 소리 없이 도와주고 있었으니까.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지는 나이가 되었을 , 돈은 어느새 동생의 든든한 경제지원군이자 부모님의 짐을 덜어주게 만든 고마운 삶의 동반자였다. 예전에 엄마께 돌돌 말아 이벤트로 용돈박스를 두둑히 만들어 드렸던 그 돈을 바라보니  새삼 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생각들은 가장으로서의 고단 함일 수도 있고, 뿌듯함일 수도 있겠다. 올해 부모님 에는 무엇을 해드릴까? 마음만 전해드리기엔 너무 나이가  딸은 오늘도 고심하고 또 고심한다. 내가 돈에게 해준  없지만, 돈이 나에게 해준 일은   없다. 오늘도 지갑에 있는  원권 접힌 귀퉁이를 펼쳐 가지런히 넣어둔다. 그리고 돈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고마웠다고. 여전히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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