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금방이라도 다 무너져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고

by 냉정과 열정 사이


삶은 지독하리만치 무겁게 나를 덮쳐옵니다. 그에 반해 죽음은 너무나 가볍고 달콤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나의 죽음에 대한 열정, 파멸과 소멸을 실현하기 위해 나아가는 근성은 그 무엇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진중한 발걸음입니다. 나는 비로소 실격자가 되었습니다.


걸을 수 없을 때까지 걸어봅니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곧 내게서 시선을 거둘 테지요. 저 별 볼 일 없는 놈은 뭐지, 비웃으며. 옷을 벗어 개어두고. 아아, 저 차가운 강물에 몸을 던져보면 어떠한 기분일까. 살갗은 냉기를 겸연쩍게 맞이할 테고, 오장육부는 얼어붙는다. 아니지, 오히려 여기보다 따뜻하지 않겠나. 결국 세상은 송곳보다 더 날카로운 냉기로 천지를 감싸고 있으니까.


보잘것없고 누구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나 같은 유약한 인간이 그 어떤 기백이라도 내어 보일 수가 있겠어. 그저 죽는 거야. 죽으면 다 끝이다. 시작이지, 나는 해방되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온몸을 죄어오는 곳보다 그럴 필요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지 않나요.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실격을 인정한 지금으로선 무슨 기준을 갖다 붙여도 그것에 부합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모두가 혀를 끌끌 찰 테지요. 아주 부잣집 아들이라지? 여자는 저런 놈하고 왜 같이 죽었대? 쯧쯧, 불쌍할 가치도 없구먼 그래. 아아, 나는 고작 그 정도 놈입니까. 왜 나를 잡아주지 않습니까. 왜 나의 머리를 헤집습니까. 나에게 바라는 것은 또 왜 이렇게 많은가요. 나는 평범할 수 없습니까. 없습니다, 있어도 그렇게 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렇군요, 폐를 끼치겠군요. 약을 끊지 말 걸 그랬어. 그보다 한 줄만 더 쓰고 가고 싶었는데. 이미 늦었나. 아차, 오늘은 참으로 추운 날이구나. 아쉬울 건 없다. 그런데… 나는 이 여자 손을 잡고. 황망하다. 결국은 이렇게 될 거였구나. 옳다구나, 잘 되었어. 이제 집으로 가는 거야. 어디든 문을 열고. 나는 눈을 감고. 떨리는 바람의 살결을 매끄럽게 더듬으며, 차곡차곡 개어둔 눈물이 흐른다. 이 세상에 정이라도 남은양. 사실 그랬을지도 모른다. 술을 잔뜩 퍼마시고 가더라도 내 이름 상냥히 불러줄 이가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지금이 아니어도 된다. 두 생각이 계속 맞부딪치고 있다. 갈팡질팡과 옴짝달싹의 사이. 스르륵, 하고 몸의 힘을 풀자 새가 된 듯 펄럭이며 발 딛던 땅을 놓친다. 떨어지는 것을 뒤집고 보면 결국 날아가는 형상이 된다. 그런 모습으로 남고 싶다. 아마도 오늘이 아니었다면, 나는 무슨 이야기를 더 써두었을까. 완성하지 않은 채로 두는 것이 더 현명할지 모르겠다. 영원히, 짧은 작별 인사를 남기며.


풀썩이던 수면은 금세 고요했다. 아주 짧은 순간에 누구를, 혹은 무엇을 삼켰는지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어느 겨울에



103_인간실격-500x852.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