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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현 Jun 09. 2024

기자생활과 물생활의 시작


지금으로 이어지는 물생활을 시작한 때는 2019년 5월이다. 20살 시절 잠시 기른 베타의 추억을 떠올리며 문득 물생활을 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아쿠아스케이핑(Aquascaping) 대회 작품 같이 근사한 수조를 갖고 싶었지만 당시 나는 여과기와 기포기의 차이도 잘 몰랐다. 초보는 초보답게 초보 세트를 사면 될 일이지만 죽어도 허접한 어항은 또 갖기 싫었다. 그래서 꾀를 냈다. 여과기니 히터니 하는 것들은 모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초보자 어항 세트의 구성을 그대로 베끼고 안을 채울 꾸밈 용품을 내 맘대로 대중 없이 샀다. 그렇게 수초항 하나를 얼레벌레 만들았다. 이어 하루 정도 정보를 탐색해 베타를 입양하기 위해 숍을 찾았고, 어느 날 퇴근 후 한 시간여 차를 타고 가선 수많은 베타들 중 유독 눈길을 잡아끈 한 마리를 소중히 품에 안고 왔다. 이름은 코코로 지었다. 어느 날 갑자기 얼레벌레 시작한 물생활답게, 수초들 중 대부분이 오래 가질 못 했다.


코코는 셀로판 테일을 가지고 있었다. 붉은 점도 있었지만 떠나는 해 코코는 새파란 물고기가 됐다.


물생활 시작에 대한 이야긴 이게 전부다. 정말로 어느 날 갑자기 결심 탓이다. 다만 갑자기 시작했다고 해서 계기가 아주 없진 않았다.. 코코를 데려온 그때, 나는 사회부에서 좌충우돌하고 있던 새끼 기자였다. 이제 막 아, 기자란 이런 건가? 취재는 이렇게 하는 건가? 긴가민가 한 하루하루를 보낼 때였다. 그러다 '버닝썬 게이트'가 터졌다. 분명히 시작은 강남경찰서의 시민 과잉 진압이었던 것 같은데 정신 차려 보니 연예인들이 줄줄이 마약에 집단강간이니 불법촬영이니 하고 있었다. 기자 생활 적응도 채 못 한 때 버닝썬 게이트에 휩쓸리고 나자 5월의 나는 너덜거렸다. 직 어려서 더욱 그랬다.


버닝썬 게이트는 그간 본 취재 현장과 전혀 달랐다. 버닝썬 게이트 전 취재거리들은 #미투(#Metoo) 사건들이었다. 판결 후 실신하는 피해 생존자와 판사에 항의하는 연대인들의 고성이 내가 본 가장 거친 취재 현장이었다. 나는 슬퍼하는 피해자를 때론 안아주고 위로했다. 버닝썬 게이트는 달랐다. '버닝썬 사건'으로 불리다 어느 날부턴가 버닝썬  게이트(Gate)로 불리기 시작했고, 취재경쟁은 광기가 느껴질 만큼 날로 치열해졌다. 정준영의 귀국현장이나 승리의 첫 경찰청 출석 현장 등은 아수라장이었다. 연예인 정준영을 취재하기 위해 온 연예부와 그와 연결된 YG 엔터테인먼트 등을 취재하려는 경제부, 강력범죄니 당연히 내꺼라며 달려온 사회부 등 기자들도 난장판이 따로 없어서 내가 어디에 어떻게 휩쓸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매일 단독 뉴스가 나왔고, 상상도 못한 특종거리가 쏟아졌다. 목요일부터 문을 여는 아레나 앞은 신문사가 내보낸 어린 기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나도 한밤중 꽃단장을 하고는 아레나에 뺀(입장 거절)을 당할까봐 노심초사했다. 어느 날은 아레나 힙존에서 흐느적거리고 있는데 아니, 여기도 기자 저기도 기자 죄다 기자였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쯤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2019년 2월부터 4월까지는 취재하러 다닌 기억 외엔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귀로 밥을 먹었을 수도 있다.


끝은 어느 날 갑자기 왔다. 정준영 등이 경찰에 구속되고 경찰청 광역수사대(광수대가 아닐 수도 있다)가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모든 것이 뚝! 끝났다. 눈을 뜨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사람들의 관심도 사라졌다. 네이버 포털로 송고한 버닝썬 기사의 조회수는 네 자릿수를 넘지 못하더니 세 자릿수에 멈췄다. 정준영 등의 휴대폰을 포랜식 하고서 발견된 극단적으로 자극적인 범죄 아니고선 더 이상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아레나 뒤에서 떨 냄새(대마초)가 진동을 해왔는지, GHB로 인한 약물 강간을 시도하는 남성이 얼마나 많은지 등은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정준영이 몇 명을 어디서 강간했는지, 피해자는 몇 살이며 최종훈과 어떻게 알게 됐는지가 더 중요했다.


 



5월 어느 날 출근하며 어안이 벙벙했다. 버닝썬 게이트는 더 이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고 법 수사 영역으로 넘어가며 새끼 기자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졌다. 새벽에 신사동을 어슬렁 거리질 않고 집에서 잠을 자려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버닝썬 게이트는 꿈인가? 이렇게 갑자기 평화가 찾아온다고? 분명히 나의 일상은 평화로워졌는데 머릿속 꼬리에 꼬리를 잇는 질문과 생각은 더욱 엉망진창 꼬여만 갔다. 아직 안 끝났는데? 왜 벌써? 범죄를 향한 분노와 치기 어린 정의감은 사람들을 향하기 시작했고 나는 급기야 속이 답답하고 미치겠어서 내 손으로 머릴 뽑기 시작했다.


갑자기 코코를 데려오고 물생활을 시작한 건 그 즈음 무의식이 지른 비명이었다. '물멍'을 시작하자 버닝썬 게이트 후 풀 수 없이 꼬였던 실타래가 풀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분히 생각할 수 있었고,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가라앉힌 분노는 새롭게 분노할 거리가 나타났을 때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돼줬다.

 

코코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친구였다. 다른 베타들보다 좀 더 심술궂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투명했던 꼬리는 새파란 색으로 변하더니 전신이 푸르렀다. 많은 베타들이 수초잎 위에 기대는데, 코코는 아래에 기대는 특이한 버릇도 있었다. 얼레벌레 만든 수조에서 수초들은 몇몇을 빼곤 빛이 부족해 녹아내렸다. 그나마 남은 음성수초 나나는 코코에게 좋은 침대가 됐다.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코코를 반려하며 어의사의 존재를 알았다. 어느 날 코코의 오른쪽 뺨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보이는 아주 작은 양성종양이 하나 생겼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커지기 시작하던 종양은 2년 차에 이르자 얼굴을 덮고, 마침내 뺨에서 터졌다. 수의사에게 애원해서 항생제를 받고 수술은 할 방법이 없나 찾아보며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코코는 별일 아니라는 듯 종양이 터지고 기력을 잃긴 했어도 좋은 자리 찾아 부지런히 헤엄쳤다. 수조를 보고 있으면 눈을 떼굴떼굴 굴리며 날 봤다. 그리고 떠나는 날까지도 사료를 쩝쩝 잘 먹곤 잠자듯 평온히 떠났다.


코코의 죽음에 어찌할 바 모르고 속절없이 울었다. 내 마음 진정시킬 도구로 데려왔는데 더 이상 도구가 아닌 내 우주가 돼있었다. 코코가 떠난 어항엔 코코가 외롭지 않길 바라며 합사 한 테트라가 있었다. 테트라를 이어 반려하며 물생활이 그렇게 오늘까지 이어졌다. 우주 없는 지구가 존재할 수 없듯 나는 물생활 없인 못 살게 됐다. 그래서 오늘도 물멍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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