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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현 Jun 16. 2024

달팽이, 모순의 연속

(거머리 사진 없음)


나의 물생활은 모순과 역설의 연속이다. 숙성회는 먹지만 열대어는 사랑하고, 생먹이를 먹이면서도 또 다른 열대어를 먹는 육식어들에는 놀라고, 용궁으로 떠난 물고기는 물이 아닌 화분에 묻었다. 정말 모순(盾)이다. 어떤 창으로도 못 뚫는 방패와 어떤 방패로도 못 막는 창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둘이 만나면 아마 내 물생활이 파노라마가 돼 펼쳐질 것이다.


최근 나는 달팽이귀신이라는 이름의 거머리를 키우고 있다. 달팽이귀신의 정확한 명칭은 조개넙적거머리인데, 물생활판에서는 달귀로 불린다. 딱 보기에 거머리처럼 생겨 불쾌한 외모지만 토종 생태동물 중 하나로 환경에 꼭 필요한 녀석 중 하나라고 한다. 특징은 이름 그대로 '달팽이귀신'이라는 점인데, 다슬기, 달팽이와 같은 연체동물만 먹는다. 이빨로 파먹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디서 효소를 내뿜어 녹여 먹는단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 아무튼 먹는다.  이하 명칭은 달귀. 키워보니 사료는 안 먹는 듯 하다. 급기야 달귀 키우기에 이르게 된 데에는 내가 수초 검역을 게을리 하다가 결국 또 모든 수조가 달팽이로 초토화 했기 때문이다.


아누비아스 나나 SP.에서 발견 된 민물삿갓조개. 민물삿갓조개는 한 면만 껍데기가 있어서 이름은 일단 조개지만 실제로는 조개가 아닌 달팽이과다.
별 해를 안 끼치니 두고 싶지만 수초 잎 전면에 붙어 관상을 방해할 뿐더러, 체감상 여느 달팽이 보다도 번식력이 좋다.
나를 가장 분노케 하는 또아리물달팽이. 이 녀석들의 가장 거지같은 점은 수초를 긁어서 먹는다는 점이다. 이 녀석들이 지나고 나면 여린 수초잎엔 구멍이 뻥뻥 난다.
번식 속도는 왜 이리 빠른지, 한 마리를 발견하기 무섭게 박멸 작업에 들어가지 않으면 이 녀석들은 수조를 작살 낸다.

 

달팽이는 물생활, 특히 수초를 기르는 이들에게는 재앙과 같다. 수조에 평범한 상황에서 생길 수 있는 달팽이들은 삿갓납작조개, 또아리물달팽이, 램즈혼 세 종류다. 보통 수초 검역을 꼼꼼하게 하지 않았을 때 난입하기 때문에 사실 수초를 기르지 않는다면 볼 일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달팽이 각 한 마리는 사실 흉측하지 않다. 램즈혼은 현재 생태계 유해종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예쁜 색깔 때문에 관상용으로 길러지기도 했던 이력이 있다. 문제는 이들의 어마어마한 번식력과 생명력이다. 방치했다가는 수초는 죄다 구멍이 뻥뻥 뚫려 고사하고 수조 벽에 가득가득 들러붙어서는 도대체 내가 키우는 게 뭔가 싶어지게 만들어 버린다. 자웅동체인 탓에 번식 속도는 제곱.


현재 수조에서 발견 불청객은 또아리물달팽이와 납작삿갓조개, 검물벼룩 셋이다. 아마 이들과 싸운지는 3년여 것이다. 왜냐면 수초를 사지 않아도 어느날 갑자기 녀석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곤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박멸이다! 하고 좀 지나면 뿅 튀어나와 좌절하길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다. 달팽이 없애기가 얼마나 힘들길래? 하고 놀랄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간단한 방법을 두고 억지로 다른 방법을 쓰려다 보니 이렇게 됐다. 나는 수조에 약품 쓰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생박테리아제나 액체 이산화탄소 정도가 아니라면 가급적 쓰지 않는다. 간단히 펜벤다졸(암 치료 효과 어쩌고 하던 강아지 구충제 맞다!)을 갈아서 뿌려버리면 애플스네일도 키우기야 해도 영원히 달팽이로부터 해방될 있다. 하지만 괜히 굳이 약품을 써야할까? 라는 마음으로 최소한의 약만 쓰며 달귀에 의존해 박멸하려 했더니 여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오늘 달귀를 키우려고 달팽이를 잔뜩 주고 사서 달귀에게 줬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달팽이를 없애기 위해 달귀를 키우려고 달팽이를 사서 먹이로 준다? ... 


달귀를 키우는 작은 아크릴 수조


달귀를 키우며 알게 된 많은 사실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달귀가 생각 보다 훨씬 귀엽다는 점이다. 나는 처음엔 달귀를 손으로 잡질 못했다. 징그러워서는 아니고, 달귀가 연한 젤리같은 몸이어서 바스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달귀를 옮기려는 중 알게 된 사실인데, 달귀는 만져보니 아주 딱딱한 녀석이었다. 5mm 쯤 되는 녀석이 몸을 기일게 늘리면 2cm까지도 늘어나길래 당연히 젤리 같은 몸인 줄 알았는데 마치 미스릴 갑옷을 입은 듯 한 희한한 표피를 갖고 있었다. 벽면에 붙어 있을 때 떼어내려 하면 주둥이로 들러붙어 안 떨어지는데, 어지간한 힘으로 밀어선 다치지도 밀리지도 않을 정도다. 그럴 때 손톱으로 살살 동글동글 말면 또 말리는데, 진짜 느낌이 콩벌레와 똑같다. 사람 피 빨아먹는 거머리도 그런진 안 찾아봐서 모르겠지만, 여하간 참 희한한 느낌이다. 새끼를 품에 안고 젖먹이며 다닌단 점도 무척 신기하다. 품에 안고 돌아다니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하다는 감각이 바로 이거구나 싶다.






사족.


물생활을 하는 동안 종종 느끼는 이상한 감각이 있다. 경외감이나 당혹감 등 일상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 물생활엔 늘 있다. 그 중 유독 이상한 감각은 '알아보는 순간'에 느끼는 감각이다. 물생활 중 무언가를 알아보는 순간, 사랑스러움과 신비로움이 느껴지는데,  동시에 공포와 비슷한 감정이 덜컥 들곤 한다. 비슷비슷한 외모를 하고 있는 물살이들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개체로 인식하면 더는 모르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누군지 모르던 어떤 생명이 죽었을 자연의 섭리로 넘어갈 있다. 그러나 어떤 개성을 지닌 '내가 아는 생명'이 죽으면 그건 더이상 그저 그런 자연의 섭리가 아니게 된다. 어느 순간부턴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베타 보다 얼핏 보면 몰개성한 녀석들을 들이게 되는 이유다. 그래서 기왕이면 못 알아보길 바라고 집착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무의미한 노력이다.  


달귀를 키우기 시작한 후 모순에 모순, 또 다시 모순을 맞닥뜨리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이 감각이 연속되고 있다. 나는 과거 명주달팽이를 기른 적 있다. 초등학교 때는 아주 작은 명주달팽이를 실수로 죽이게 되면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울기도 했다. 그런데 저 또아리달팽이들이 미워서 죽이기 위해 물달팽이까지 먹이로 희생시키고 있다. 달귀 사육 자체도 모순적이다. 달귀가 귀여워 보이지만, 절대로 달귀를 영원히 키울 생각은 없는 나의 이 이상한 계획은 무엇일까? 달귀는 달팽이 외에 먹지 않기 때문에 수조에 풀고 난 후 달팽이가 박멸 되면 자연히 굶어 죽어버린다. 그래서 최강의 생물병기란 말을 듣는다. 나는 이 귀여운 달귀들을 어쩌자는 건지?


괜히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사족을 단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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