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다이소 플렉스
2024년을 시작하는 나의 자세 (1)
"엄마, 선생님이 사인펜 새 걸로 가져오래요."
이제 7살이라며 내년부터는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 들뜬 딸아이가 말했다.
"저기 있는 거 들고 가면 되지."
"아니야. 저거는 안돼. 싫어. 새거 사고 싶어."
내 손에 익은 걸 선호하는 어른과 다르게 아이들은 매번 새것을 원한다.
"엄마, 저는 실내화가 이제 작아요."
옆에 있던 아들이 꼬질꼬질한 실내화를 내밀며 말했다.
"그럼 좀 이따 사러 가자. 그건 쓰레기통 옆에 우선 놔둬."
애들 아빠가 홀로 한의원에 잠시 간 사이, 나는 대청소를 계획했다. 하지만 비우기는커녕 사야 할 목록만 늘어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각자의 방을 맡기고서 거실과 부엌, 안방까지 정리하고서 아이들을 보니 어설픈 고사리손으로 나름 이곳저곳 깨끗하게 치웠다.
"이제 우리 나가볼까?"
동네에 흰 실내화를 정말 저렴하게 파는 곳을 한 군데 알고 있었기에 그곳을 첫 타깃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1월 1일은 모두에게 중요한 시작의 날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있었다.
"실내화 없으면 놀이체육을 못해. 나 실내화 꼭 사야 돼."
초조함에 아들은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했다. 이미 짜증이 섞여있었다.
"실내화 살 곳은 많아. 걱정 마."
"엄마, 내 사인펜은?"
오빠마음도 모른채 둘째가 쏙 끼어들었다.
띠리 리리
"여보세요, 여보 끝났어?"
"곧 끝날 듯?"
"아. 거기 다이소 큰 데 있지. 우리가 그쪽으로 갈게. 다이소로와."
"알겠어."
생각해 보니 남편이 간 한의원 맞은편에는 3층짜리의 아주 큰 규모의 다이소가 있었다.
"다이소가는 거예요?"
"응. 거긴 실내화도, 사인펜도 다 있을 것 같아. 가보자."
"거기도 없으면 어떡해."
"그럼 마트 가면 되지.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든 내가 마음먹기 나름인 거야."
아이에겐 그리 얘기했지만 다이소가 문을 닫았거나 실내화가 없으면 아이가 실망할 게 당연했다. 그래서 건물이 보이는 길에 들어서자마자 초조하게 멀리서 다이소가 열려있는 지부터 살폈다. 다행히 밝은 하얀 조명이 반짝이며 건물을 밝히고 있었다.
다이소에 발을 들이자마자부터 아이들은 잔뜩 신이 났다.
우리는 2층의 문구코너부터 갔다. 나도 필요한 것들이 잔뜩 생각나기 시작했다. 진짜 필요한 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성공적인 2024년을 위해서라면.
그때부터 아이들의 소리를 잘 못 들었다.
글을 쓰면서 메모를 남기거나 하는 게 내 손에 익지 않아 늘 고민이었는 데 그를 위해 이 방법 저 방법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 독서모임의 리더가 되면서 확실하게 이거다 싶은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 이것저것 집었다. 이미 쿠팡에서 파일은 여러 개 사놨지만. 그를 위해 눈여겨봐 둔 쓰고 뜯는 노트를 집었다. 독서모임에서 성실한 멤버를 위한 상장 종이도 집고, 부모님들께 가끔 드릴 용돈봉투도 집었다. 그리고 왠지 자꾸 눈이 가는 펜도 집었다. 알고보니 나도 새걸 좋아하네. 애나 어른은 상관없는 거였구나.
'내 독서노트는 검은색, 파란색, 빨간색이 필요하니까 딱이네.'
역시 쇼핑의 기본은 합리화지.
필통 가득, 연필꽂이 가득 펜이 꽂혀있는 2023년의 내 필기구는 내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엄마, 엄마. 나 이것도 갖고 싶은 데 사주면 안돼요? 딱 하나!"
파란 축구공 모양의 탱탱볼을 아들이 내민다.
"그래, 세아 세현이도 갖고 싶은 거 딱 하나씩 사줄게!"
평소 계획에 없는 물품 구입을 거절하는 엄마가 흔쾌히 받아들이자 두 아이는 주변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소리를 질렀다.
내 거는 이렇게 많이 사놓고.
왠지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탓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첫 째의 축구공탱탱볼, 둘째의 파티풍선,
나의 많은 사치물품을 고르고 나니 남편이 도착했다.
아, 맞다. 우리 집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사람이 여깄었지.
남편은 내가 든 바구니를 물끄러미 보았다.
괜스레 말이 길어졌다.
"이건 부모님 용돈 담아드릴 봉투. 전에 사놓은 건 다 써서. 그리고 이건 나 독서모임 때문에... 세현이 세아도 하나씩만 원하는 거 사주려고..."
"그래 그래. 잘했어."
"여보 슬리퍼는 3층에 있더라."
족저근막염이 있는 남편은 집에서 뒤꿈치통증을 호소한다. 바닥이 말랑말랑한 슬리퍼를 신는 데 얼마 전 두부가 물어뜯어버렸다. 하지만 남편의 슬리퍼는 살 수 없었다. 뒤꿈치 통증 때문에 신중한 남편의 기준에 통과된 게 없었기때문. 그리고 남편은 사치하기 시작했다. 차 철제거제? 왁스 등? 차에 관련된 것만 몇 개를 샀는지.
그에게 자동차용품이란 나에게 문구용품 같은 의미일까.
돈 쓰는 걸 좋아하는 남편은 실내화를 신어보는 아들 옆에서 나도를 외치는 딸에게 시원하게 너도 사라 대답해 주고 두부장난감도 하나씩 고르라 했다.
그렇게 우리 네 식구는 다이소에서 거하게 플랙스를 했다.
다이소에서 4만 원 이상을 쓸지는 몰랐다.
2024년 한 해를 위한 우리의 투자, 요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태연하게 남편에게 외치며 46400원짜리 영수증을 받아 들었다.
다 투자지, 투자!
2024 년아, 잘 부탁한다.
그나저나.. 마트를 사랑하는 남편이 이마트 할인한다고 가자하니 슬그머니 걱정이다. 플랙스는 이미 한 거 알지,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