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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한손수레 Dec 29. 2023

6살 딸아이에게 가래떡 조청 맛을 배웠다.


"오랜만에 시장으로 가보자!"

"좋아."


매번 마트에서 장을 봐왔다.

오늘은 왠지 바깥바람을 쐬며 장을 보고 싶었다.


유치원에 가지않고 옆에서 놀던 딸 아이에게 말했더니

시장을 좋아하는 딸아이가 신이 나서 대답했다.


시장의 가장 큰 단점은 주차가 어렵다는 것.

우여곡절 끝에 조금은 걸어야하는 구석에 주차했다.


고사리같은 딸아이 손을 잡고 시장을 향해 걸었다.


"나는 유치원 가지않고 맨날 엄마랑 시장가고 싶어."

지금 그만큼 기분이 좋다는 표현이리라.


시장 초입에 들어서자 급격히 사람이 붐비기 시작했다.

평일이라도 시장에 사람이 많다. 특히 초입은.


"엄마 손 꽉 잡아."


조그만 아이가 보이지않아 다른 사람에게 행여 치일세라 일부러 목소리 높히며 손을 꽉 잡았다.


그런 내맘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딸 아이가 갑자기 우뚝 멈춰섰다.


"세아야, 얼르 가자. 저쪽까지만 가면 사람 별로 없어."

"..."

"세아야! 여기 사람들 지나가야해."

"..."


"죄송합니다."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를 사과를 연신하며 아이를 옆쪽으로 비켜세웠다.


"세아야, 왜그래. 여기 너무 복잡해. 얼른가자."

"엄마, 나 ..."

"뭐?"


주변의 시끌시끌함에 아이의 코딱지같은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근데 아이는 한쪽에 시선을 고정한채 얼어있었다.


"왜그래? 어디아파? 왜?"

갑자기 왜이러나 싶은 생각에 순간적으로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 저 떡 먹고싶다고!!!"

아이는 내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를 꽥 질렀다.

주변 상인은 물론 지나가는 사람까지 일제히 멈췄다.

1초가 지났을까.


"자, 하나 집어라."

떡집 아저씨가 기분좋게 웃으며 떡을 내밀고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화끈한 열기가 찬 바람도 밀어내고 내 얼굴에서 화닥거렸다.


"그럼 말을 하지. 어떤거?"

황급히 돈을 꺼내며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수줍어하면서도 기다렸다는 듯 냉큼 가래떡을 집었다.


"그거 말고 다른 거 사지?"

"난 이거 먹을 거야."

"아니, 그거 말고 다른 거 사자."

"난! 이거! 먹!을!거!라!고!"


또 내가 못듣는 다 생각한건지 아이는 끊어가며 소리쳤다.


"알겠어, 알겠어."

황급히 지폐를 내밀며 떡을 아이 손에 쥐어줬다.


사실 가래떡은 특별할 거 없어보여서 다른 떡을 집길 바랬다. 들어간 재료도 쌀밖에 없고. 지금 생각해보면 돈 아깝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맛있는 냄새가 연신 풍기는 시장에서 아이는 그 가래떡만 꼬옥 안고 다녔다. 어서 집에 가자며.


집에 오자마자 아이는 식탁에 앉았다.

그러더니 내게 떡을 전자렌지에 돌려달라했다.

자기는 조청을 트겠다며.


가래떡을 살때 옆에 있던 조청까지 샀다.

조청은 또 어디서 들었는 지 꿀이랑 똑같은 거라는 내 말에 다른 거라며 꼭 사야된다면서. 가래떡은 조청이라는 말을 연신 하면서 말이다.


전자렌지 대신 후라이팬에 살짝 구운 떡은 겉이 노릇 노릇해졌다. 아이가 먹기쉽게 나름 어슷 썰었다.


"음, 맛있다. 그래 이거지. 엄마도 먹어봐."

떡 하나 집어먹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권했다.


가래떡을 그닥 좋아하지않아 너나 많이 먹으라는 데 맛있는 건 나눠먹는 거라는 말을 한다.

결국 한입 찍어먹었다.


바삭한 겉과 달리 속이 촉촉하고 쫀득한 것이 식감이 좋다.

아무맛도 없을 줄 알았는 데 조청의 지나치지않은 단맛에 자꾸 손이 갔다.


"그것봐, 맛있지?"

"세아야. 이거 니말대로 맛있네. 근데 넌 이런 걸 어떻게 알았어?"

"이모할머니들이랑 먹었었지롱."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시할머니의 자매들.

나와 남편에게 이모할머니이고 아이에겐 '왕할머니'다.

이모 할머니들은 시댁에 자주 방문하신다.


연세가 많으시지만 오시면 고구마도 캐시고 고사리도 끊으러 다니신다. 쑥도 캐고 죽순도. 농사의 분기별로 취미생활 하러 신달까.


그리고 이모할머니들은 유독 세아를 이뻐하신다.

주는 족족 가리지 않고 오물거리며 잘 먹기도 하고 딸 아이라 애교있는 말로 할머니들의 심쿵어택을 하기도 하니까. 춤과 노래는 덤이다. 그렇다보니 이모할머니들은 연신 '여우'는 어딧냐며 찾으신다.


이번에 이런저런 서울일정으로 아이들을 시댁에 맡겼었는 데 그때 이모할머니들도 계셨다. 그때 가래떡을 먹었나보다.


무슨 6살 아이가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먹자고 하나했더니.

아이에게 편식은 내가 가르치고 있었다보다.


부끄럽게도 딸 아이말대로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먹어보니 참 맛있더라.


나는 오늘 가래떡의 맛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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