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점이나 사주팔자에 관심이 많다.
나는 점이나 사주를 보는 타입은 아니다.
물론, 명리학의 데이터적인 측면은 어느 정도 그 신뢰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의 입을 통한 데이터 전달이 그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야기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이 그 데이터를 많이 변질시키진 않을까. 게다가 해석하기 나름이라던데.
그래서 단순 재미로 보는 타로카드나 색깔 사주를 보는 정도였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금액을 내고 사주를 본 건 결혼하고 낳은 첫째 아이가 3살 됐을 때쯤이다. 같은 아파트에 동갑내기 친구가 사주를 보러 가야겠다며 손을 끌었다. 3만 원의 금액을 내고 전체적인 사주를 봐준다고 했다. 사실 그 또한 재미로 보는 사주의 금액스케일이 커진 것뿐이었다. 친구가 자꾸 조르기도 했고.
"남편은 개미같이 일하는 성실한 사람이야. 남편한테 잔소리하지 마. 너랑 남편은 달라. 네가 포부가 큰 거지."
나이가 있으신 할머니는 안경 너머로 매섭게 날 쏘아보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넌 사주에 연필밖에 없어. 넌 죽을 때까지 뭐든 할 거야. 네가 가만히 있질 못해."
타로 카드든 사주든 색깔 사주든 뭐든 내 사주에 절대 빠지지 않는 이야기를 또 한 번 들었다.
연필. 죽을 때까지 스스로 일을 만든다는.
그 이후로는 사주를 보거나 할 기회도 없었고 생각도 없었다.
어느덧 3살이었던 첫째가 9살인 12월이다.
남편과 함께 아들의 패딩을 구입하기 위해 코엑스를 다 뒤지던 중 타로. 사주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 더 믿지 않고 재미조차 못 느끼는 남편에게 동의를 구했다.
11월부터 교통사고에 아이의 잦은 열로 입원, 이번엔 폐렴까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래도 사주를 믿지는 않는 다.
이에 남편이 되물었다.
"대체 그럼 왜 보는 거야?"
"듣고 싶은 말이 있어서."
사주를 믿지 않는 나는 줄곧 내 사주에 확신이 있었다.
적어도 내 사주는 좋은 사주 쪽이라는 것.
좋은 사주의 기준은 모르겠다.
그냥 남부럽지 않은 외모(이건 조금 자존감 허세를 이용했다. 실은 부러운 적 많다. 바꿀 엄두는 없고.), 좋은 환경에서 좋은 부모님과 자랐고 남편 또한 내게 가장 적절한 남자로 엄청난 뽑기 운에, 시부모님 복은 한국에서 확실히 최상위권이다.
여기에 좋은 사주라고 하는 가장 결정적인 것은 나는 운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 간혹 엄청 간절해서 모든 걸 걸었지만 뜻하지 않은 하늘의 장난으로 빙빙 둘러가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도착하겠지만 빙빙 도는 그때, 그 사람들이 지치는 것도 사실일 것. 인내심이 적은 나는 그 과정에서 단단해지기보다 나가떨어졌을 수도 있다. 나는 그런 하늘의 장난이 없었다. 운이 좋았다면 나는 매번 새로운 운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운에 기대는 미련한 사람으로 성장했겠지. 그러니 내 사주는 말 그대로 변수가 가장 적은 내 입력값대로 출력되는 아주 좋은 사주라 확신해 왔다.
곧 공동저서를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빠르면 올해가 지나기 전, 늦어도 2024년의 1월엔 볼 수 있겠지.
거기다 현재 개인에세이를 최종 퇴고 중이다. 이 또한 곧 투고예정이고.
막연하게 앞을 향해 달릴 때의 근심은 막연했고 그보다는 노력에 신경 쓰기로 했다. 그런데 하나씩 마무리되어 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구체적인 걱정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누군가의 최면이 필요했다.
내가 잘 해낼 수 있다는 건 내 자신에게 세뇌시켜 왔는 데 나를 전혀 모르는, 제삼자의 말도 안 되는 확신을 듣고 싶었다.
지인들은 그저 내편이 되어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팩트폭행이라는 글자가 적힌 사주집에 들어가는 순간, 내 기대와 다른 답변이 나온다면 노력으로 더 채워야겠다며 해결책까지 품고 자리에 앉았다.
"지하님은 하고 싶은 걸 하고 사세요. 당신은 재미없으면 못살아요. 당신은 여러 가지를 다 잘할 수 없지만 당신이 좋아하고 재미있으면 거기엔 정말 특화돼요. 백종원이 다른 건 다 어설프고 부족하지만 장사만큼은 신인 것처럼. 그것만큼은 기가 막혀요. 엄청나, 분명.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가족들이 힘들어. 당신이 행복하고 즐거우면 가족들도 행복하고 즐거운데 당신이 하고 싶은 걸 못하면 예민하고 날카로워. 가족들이 지하님 눈치를 보게 돼있어. 가족의 행복을 당신이 쥐고 있다고."
더불어 남편의 이야기까지 나왔는 데 꽤나 동의했다.
코와 입, 귀가 예민한 남편이 나를 너그러이 받아주고 받쳐준다는 것. 뭐, 나보다 더 사주 같은 거 안 믿을 테지만.
여기까지 들었을 때 듣고 싶은 말을 충분히 들었다고 생각했다. 역시, 나는 내가 노력하는 만큼 출력하게 되는구나. 됐다. 충분하다.
"당신 사주의 키워드는 재미라는 것만 기억하면 돼요. 재밌는 걸 하면 그게 뭐가 됐건 성공해요. 당신은 돈이 어쨌고 겉으로 보이는 게 멋있고 그런 거 어차피 관심도 없잖아요. 당신이 재밌는 것만 하면 자기 알아서 다 해내버리니까 그냥 당신이 재밌는 거, 하고 싶은 거 해요. 남편한테만 좀 잘하고."
이 얘기에 뒤에 앉은 남편을 돌아보며 웃었다. 남편은 여전히 관심 없는 듯 저녁 장소만 검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뜸 들이는 목소리에 절로 긴장됐다.
분명, 나는 사주를 믿지 않는 데 말이다.
"신기한 사주네요. 우선 아까 물어본 전성기는 33살부터였는 데, 지금 35살이죠? 이게 20년을 가네."
"음... 지금처럼 20년이요?"
내가 욕심쟁이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33살 그쯔음부터 본격적인 내 사업이 안정적으로 자릴 잡은 건 맞다. 사업이라 해봐야 1인 원장 학원이지만. 근데 나는 더 올라가길 바라고 올라갈 거라 믿어서 전성기 시기를 물었던 것인데... 새로이 도전하는 것들도 있고. 20년이나 유지된다 하니 기쁘기도 하지만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20년을 가는 것도 가는 건데, 신기하네. 이게 신기한 게 지금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진짜 많이 받아요. 사람한테 투자를 참 잘하나 보네. 그러니까 뒤로 갈수록 명예가 살아나요. 존경은 스스로가 만드는 게 아니라 주변인이 만드는 거죠. 아까 학원 한 다했죠? 예를 들면 지금 가르치는 애들이 십 년이 지나 성공했는 데 나를 가르쳤던 이런 선생님이 있었다 뭐 이런 식으로 인터뷰를 한다던가 그래서 지하님의 명예가 빛나게 된다고 할까. 뒤로 갈수록 그런 게 크네요. 노년엔 명예가 가득하네요."
와... 그 말을 듣는 순간 사주는 믿어야 하는 것이라고 다짐할 뻔했다.
세상에 이런 사주가 어딨나.
너는 재밌게 살아라. 재밌게 살면 성공한다니.
내가 재밌을수록 가족이 행복하다니.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다니.
무엇보다 내 꿈이 이루어질거라는 이야기다.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원대하지만 소박한 나의 꿈은 그들이 살아가다 언젠가 한 번 뒤돌아봤을 때 나를 떠올리며 내게도 괜찮은 스승이 있었다 생각해 주는 것이었다.
사주가 정확한지 아닌지 오늘의 내겐 중요치 않다.
그 분의 립서비스가 좋은 건지도 궁금하지 않다.
그냥 지금 이 순간 나는 사기캐 사주를 쥐고 있다.
이제 거침없이 재미를 즐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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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과 나이들어서 여행을 다니며 여행에세이를 쓰는 노년을 꿈꾸고 있다. 남편에게 늘 애들키워놓고 둘이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글도 쓰고 여유를 즐기자했다. 그럼 남편은 마치 드라마 얘길 듣는 듯 영혼없이 그래그래만 앵무새같이 말해왔다. 사주 봐주시는 분이 노년에 명예말고 덧붙인 말이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듯 이야기했다.
"해외로 좀 왔다갔다 할 듯한데, 또 사주가 해외랑 더 잘 맞네?해외갈 일이 뭐가 있지. 입맛까다로운 남편은 또 이거 맞춰준다고 벅차겠네."
이정도면 나... 사주 맹신하나...?